성령론에 관한 간추린 역사

 

1. 성령에 대한 무관심의 시대

 

성령론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교회의 권위가 우뚝 섰을 때 신학의 사생아처럼 취급 받았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전 그리스도교 역사 시대를 통하여 계속 일하여 오셨다.

 

2. 시대별 신학적 강조점 개요

 

(1) 초기교회--Greek 배경--기독론 중심

(2) 중세교회--Latin 교회--교회론 예전 중심, 성직자주의

(3) 종교개혁시대--Tuton--신앙의인, 성령론

(4) 에큐메니칼운동--미국--성령운동시대, 교파의 다양성

 

3. 교부시대

(1) 성령론 보다 기독론에 관심을 둔 시대

그리스도의 위격과 전통에 관한 관심의 고조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성령론의 경시하는 결과 야기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성령의 체험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 Ignatius--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성령 잉태한 사실을 지적

⦿ Polycarp--순교 시 성부, 성자, 성령 외침

⦿ Justin Martyr--성령에 관한 언급 다수

⦿ Theophilus--안티옥 교회(2세기 후반). 신학 역사상 최초로 삼위일체라는 말을 사용(trias)그러나 성령을 지혜라고 하여 그 고유 인격성에 관하여 확연하지 않는 측면도 보여 주었다.

⦿ Irenaeus--2세기 후반. 성부는 창조주와 주가 되시고, 성자와 성령은 항상 성부와 함께 계셨다(Haer. II.2.2; IV.20.1). 성령을 신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나 그가 신적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성부의 지혜자로서 영원 전부터 성부와 함께 계셨다(Haer. IV.20.3-4). 성령은 예언의 근본이며 각 개인의 마음속에서 사역한다. 신 인간을 연결시켜주고 사람의 삶을 성화시킨다. 성령이 없으면 신언이 보이지 않는다(Dem. 7).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손이다(Haer.IV, pref.4; V..6.1, 20,1). 이런 진술들에 비추어 보면 성령은 성부, 성자와 동위에 두는 독립된 존재로 명료화시켜 나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몬타누스주의(Montanism)135~175년 사이에 소아시아 프리기아(Phrygia) 지방의 장로였던 몬타누스(Montanus)는 교회의 목표를 박두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에 맞게 형성하고자 했던 운동을 전개했다. 초기교회의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약화되고 종말론적인 소망이 쇠퇴하고 교권이 강화되며 세속화 물결이 파고드는 상황에서 그의 사상은 움텄다. 그가 유대교와 기독교의 묵시적 관념들에 젖어서 자란 배경도 한몫했다(자로슬라브 펠리칸, 고대교회교리사, 138).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의 자료들을 폐기한 것 때문에 그 전모를 비판자들의 주장에 의거하여 살펴 볼 수 밖에 없는 한계점이 있지만, 그이 개혁사상은 영지주의 도전을 받고 있는 교회에 성령의 활력을 불어 넣는 개혁운동의 독특성을 지녔다.

비록 그의 성령운동에는 신학적인 문제점들이 들어 있었으나 그의 운동의 도덕적 열성은 심지어 테르툴리아누스에게도 매력적이어서 그의 제자가 되기까지 했다. 이 운동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훈련에 대한 고도의 엄격한 표준을 가르치는 것에 있었다. 금식, 금욕 등을 금욕주의를 지향하며 높은 도덕적 표준을 강조하였다.

몬타누스는 무아적 황홀경(ecstacy)상태에서 나타나는 영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보혜사 성령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여 제자 막시밀라 조차도 자기는 성령이며 권능이라고 하였다. 보혜사와 새로운 예언을 강조 하고 자기들의 신탁들이 공적인 성서를 보충해 준다고 보았다. 몬타누스는 막시밀라와 프리스킬라를 여 선지자로 두고 이들을 통해 페푸자에 새예루살렘이 임할 것이라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였다.

 

⦿ Tertullianus-- 군주신론 반대. 그러나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을 강조한 Montanus에 동조. 성령의 신적 본질을 성부의 신적 본질과 동일시. 이레내우스 신학 이상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발전시켰다.

⦿ Origenes--Alexandria 신학자, 교회의 신학총론인 <De Principiis> 저술로 명성을 얻다. 여기서 그는 성령의 본질과 삼위일체적인 신관을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어떤 때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동일 위격의 신으로, 다른 때에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 종속된 것으로 진술하였다. 당대의 신플라톤주의 신학 영향을 받아 유출설에 기울었다. 성부는 모든 것에, 성자는 이성적 존재에만, 성령은 성화에 있어서 각각 사역하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는 성령의 출처에 고심하여 아들과 함께 발출하였는지 또는 피조되었는지 불분명하다가 마지막에 도달한 결론은 성부가 성자를 통하여 성령을 만드셨다고 하는 종속론 입장을 피력하였다.

 

(2) 성령의 위격이 문제시 된 시대

⦿ Nicea 회의(325)--기독론적 신앙고백 중심. “우리가 성령을 믿습니다라는 간단한 고백을 하였다. 이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독립된 신적 존재로 본 것을 고백한 것이다.

⦿ Arius--성부와 성자-성령의 본성이 각기 다르다. 상호교류가 불가능하다.

⦿ Cyril(347-350)--예루살렘교회 주교. 처음에는 성령을 성서의 영감자와 신자의 성화자로 언급하였으나 아리우스파의 압력으로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피조물이라고 하다.

⦿ Augustinus--성령은 성부와 성령을 연결시키는 고리(bond). 성부와 성자가 주신 선물. 성령 사랑론 전개. 문제점-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다면 그 나온 방법에 있어서 성자와의 차이이점이 불명료.

⦿ Athanasius 신조--Augustinus 신학적 특성. 성부 성자 성령의 인격은 다르나 한 분. 모두 신성 소유(영원성, 전능성, 비피조성). 성자는 아버지에 의하여 탄생하나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이중 출원(double procession and filioque)

이중 출원설의 논란--서방 지지, 동방 반대. filioque 표현보다는 through the son 이라는 표현 선호자 등장(John Scotus Eriugena, 877)

 

⦿ Anselm(1109)--동방교회 성령론 비판. 삼위일체적 신의 모든 것은 같으나 성령의 출원만 다르다. 대립관계 해소책으로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왔다고 하였다. 성령과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원하였기에 아버지가 될 수 없다.

 

⦿ Abelard(1142)--성령의 전능성 부인, 성부와의 동체성부인.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동등성 부인.

⦿ Peter Lombard(1160)--삼위간의 동일 본체, 동등성 주장

 

3. Joachim of Fiore(1102)

요아킴은 인류 역사를 삼위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 전개하는 특징을 지녔다.

중세는 로마의 멸망(476)으로부터 루터의 종교개혁(1517)에 이르기까지 약 1,000여년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갈등과 분열이 이어졌다. 교회 밖에서는 이슬람의 위협이 이어졌다. 중세교회를 지배한 신학자들은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스콜라신학과 프랜시스와 베네딕트 수도원 운동이 중세신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상황 중에 등장한 사람이 이탈리아 피오레(Fiore)의 요아킴(c. 1135-1202) 이었다. 그의 생애는 은둔자적 생활로 이어진 수도원 생활로 점철되었다. 그런 중에 성경연구, 특히 요한계시록 연구에 집중하였다. 베네딕트수도원장도 역임한 바 있는 그는 후에 피오레에 있는 산 지오반니(San Giovanni)dp 수도원을 창립하였다. 1202년 그가 죽었을 때 성인으로 추앙 받았다.

요아킴은 삼위일체 각 위격을 역사의 세 단계로 적용하는 이론의 독특성을 보여주었다. 첫 단계는 성부의 시대로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까지로 (42 세대), 구약 율법의 지배가 그 특징을 이루고 있다. 둘째 단계는 성자의 시대로 그리스도로부터 1260년까지 (42 세대 추정)이다. 이 시대는 구약의 율법 시대와 분리되지 않고 겹쳐지고 있으며 신약 성자의 통치가 그 특징이 된다. 마지막 단계는 성령께서 지배하는 시대로 1260년으로부터 시간의 끝에 이르는 기간으로 설정하였다. , 첫째 구속의 상태는 성부로 표현되고, 그 다음 상태를 성자의 우선적 사역으로, 그리고 셋째 상태는 성령으로 표현되었으며 성 베네딕트의 출현을 중요하게 여긴다. 세 시대에서 이어지는 시대는 그 직전의 시대와 부분적으로 겹쳐진다. 각 시대는 원인 결과의 인과 관계를 지녀 성자의 시대는 성부의 시대의 열매로, 성령의 시대는 성자의 시대의 열매로 본 것이다.

그는 성경연구를 중심으로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새 시대의 예언을 풀어갔다. 자신을 성서시대의 예언자와 동일 반열에 놓지는 않았지만, 예언의 영을 예언자에게 주셨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성령 안에서 신비를 풀어갈 수 있도록 조명하셨다고 믿었다. 인간의 지성의 한계를 극복케 하는 성령의 조명은 그의 성경 연구의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이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신구약 성경의 통일성이 더욱 명료해졌다. 그는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밝혀진 성경 진리를 영원한 복음이라고 명명하였다. 요한계시록 14;6에 나오는 영원한 복음이란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전시켜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영원한 복음의 개념을 그리스도의 출현까지 유지되어 온 모세의 율법을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확대된 것이라고 하는 해석학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한 역사의 마지막 교회를 성 베네딕트를 따르는 수도원적 교회로 본 것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프레임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기도 하다.

요아킴의 제1 시대(성부시대, 율법시대), 2시대 (성자시대, 복음시대), 3시대(성령시대, 영적 충만 시대) 구분은 삼신론적적이라고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어서 제4라테란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나 몬타누스와 더불어 근세 이후의 성령운동에 계보를 제공하는 기여를 했다.

 

⦿ Thomas Aquinas(1274)--인간 이성으로 신의 본성의 통일성에 관하여 어느 정도 이해 가능. 그러나 위의 차이에 대하여는 알 수 없다. 삼위일체란 인간 이성으로 다 알 수 없다. 삼위일체 신에는 두 가지 processions이 있다. 탄생과 출원이다.

성자탄생과 성령출원의 차이점 설명에서 탄생과 출원은 지성과 의지의 관계로 유비논리로 보았다. 탄생 안에는 출원에 없는 요소 들어 있다. 탄생은 동류 생산 행동이고 지성적인 행동이다. 반면에 출원은 기동생산행동으로 사랑의 의지적 행동에 속한다. 이런 유비 논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신의 영역을 추상화 유비 논리화시키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4. 동방교회의 성령에 관한 시각

 

AD 1세기 초기교회에서는 교회가 당면한 제 문제, 특히 교리적 문제나 그리스도인 삶에 관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사도들이 즉각적으로 계시와 영감에 토대를 둔 권위 있는 메시지를 줄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2세기로 접어들어서는 비록 사도 교부들이 있었지만 교회 내에 교리적 이해를 하는 일에 있어서 다른 견해들이 제기 되어 감에 따라 그 일치를 위한 여러 회의들이 열려야 했다. 니케아회의나 갈게돈 회의에서의 일치된 견해는 교회의 정통성의 판단기준이 되기까지 하였다.

이런 일치를 위한 교리적 논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가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에 그 초점이 있었다.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 거의 배타적이리만큼 지배하였다. 그리고 이 시각은 향후 서방 교회의 지성적 특징을 이루어 오늘 서구 신학의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다.

성령에 관한 논의는 거의 제2선으로 여러 세기의 무관심 속에 물러나 있거나 비켜갔다. 그러나 동방교회 신학에 있어서 핵심은 성령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신학의 핵심으로 여기는 경향을 띄었다. , 영성전통, 성령중심의 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방교회는 동방교회의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강조를 지나친 것으로 보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대립은 심화되어갔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서방교회에서도 성령의 본성과 하시는 일에 관한 이해의 눈이 열러가다가 이른바 제1, 2, 3파 운동의 확산으로 성령의 세기가 되어갔다.

 

(1) 삼위일체론

성령의 인격성이나 신적 본질을 부정한 주장들이 니케아 회의와 칼케돈 회의를 통하여 정리되었다. 그러나 삼위일체 주제에 관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는 삼위 내 초점에 관한 시각의 차이나 강조점의 차이가 있었다. 서방교회는 신적 본성과 본질의 통일성과 동질성을 강조하는 기류가 강하였다. 반면에 4세기 이래 바질, 니사의 그레고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같은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세 위격(hypostasis)들이 하나의 동일 본질(ousia)임을 강조하였다. 서방교회는 성령이 아버지 그리고 아들로부터 나온다고 보았다(filioque = “and from the Son").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선포된 이 삼위일체론은 모든 교회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결국 동방교회는 스페인 톨레도 공의회(589)에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원한다는 서방교회의 필리오케 교리의 삽입을 아타나시우스와 카파도키아 교부에 근거하여 배척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발현하여 아들로부터 받는다고 보았다. 동방교회는 아버지의 독재론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1054년 동방, 서방 교회의 분리는 필리오케 논쟁 여파였다. 로마 측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동방교회는 그리스도 중심의 서방교회의 필리오케 교리가 심위일체 교리를 위협한다고 본 것이다. 성령이 그리스도에 종속되어 그 위격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사역이 성자의 중재를 통하여 나오기도 하지만 성령의 사역 역시 성령의 중재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고 본 때문이다. 1964년 가톨릭의 교황과 동방 정교회의 총대주교가 화해의 만남을 통하여 과거의 파문을 철회하고 일치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 인간론

서방교회의 인간 이해는 테르툴리아누스와 아우구스투스 인간론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타락성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그 대행자 되신 성령에 의존하여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있다는 점으로부터 시작한다. 타락으로 그 형상이 훼손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원래의 완전한 형상으로 회복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시고 일하신다. 인간의 특성은 본성(nature) 보다는 인격(person)에 있다. 인간의 본성이 사단에게 굴복, 그에게 예속되어 있지만, 성령께서는 인간의 본성의 의존성으로부터 해방시키신다. 수도원적 전통에 따라 고요한 관상을 통하여 성령의 임재를 생생히 체험하며 그의 권능으로 인간이 하나님, 인간, 및 피조세계와의 관계가 참되고 자연적 관계로 회복된다. 이 변화를 재창조라고 한다. 성자와 성령의 사역이 연합될 뿐만 아니라 구분되어야 한다는 데 동방교회의 성령론의 특징이 있다.

 

(3) 창조, 재창조 및 신의 성품화

성령은 창조사역에 동참하셨다. 그 분은 구원사역에 있어서 재창조의 주가 되신다. 창조와 재창조는 하나이다. 성령은 생명을 품고(1:2), 그 생명을 주시는 주가 되신다. 그 분은 아담의 코에 거룩한 생기를 불어 넣었다. 루아흐가 호흡이나 숨도 되지만 또한 성령의 칭호도 되신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 회복시키시는 성령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신적 본성을 인간과 공유하기 원하신다. 동방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령을 통하여 theosis, 즉 신의 성품을 인간 안에 구현시켜 하나님 같이(Godlike) 되게 하는데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신적 본질을 공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 인간 안에 하나님의 윤리적 속성의 구현에 있다. 이 신적 속성의 공유는 영원을 향하여 확장되어 간다. 이런 신의 성품화 과정을 위한 성령의 활동이 곧 천국이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주의 기도문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어 우리를 정결케 하시며의 뜻으로 풀어야 한다.

 

참고:

Filioque (“and from the Son")

Western version of the Nicene creed-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출원한다. 원래의 니케아 신경에는 안 나온다. 589Toledo 회의에서 이 filioque가 삽입되었다.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이 문제로 균열이 야기되었다. 1274년 제2Lyon 회의-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출원하였으나 두 원천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원천에서다. 1439년 플로렌스회의에서 동서방 교회가 결렬되었다. 동방교회는 요 15:26에 집착,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를 강조하였다. 이에 대조적으로 서방교회는 아버지에게서만 나온다면 그리스도의 영(8:9; 4:9)”과 모순된다고 주장하였다.

 

5. 종교개혁시대

⦿ 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 강의>(1516)에서 외적 말씀과 내적 말씀으로 구분하면서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외적인 문자적인 말씀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는 문자적인 율법 조문의 묵은 것과 영의 새로운 것을 예리하게 구분하는 성경해석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외적 사람과 내적 사람을 나누는 기준을 성령의 임재 여부에 있는 것으로 삼았다. 성령이 임재하지 않는 사람은 육의 사람, 육신, 겉 사람일 뿐이다. 성령이 임재한 사람이 속사람이다. 속사람에게만 신적 속성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간은 영과 육의 분리된 두 인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상처와 육체가 하나인 것 같이 하나이다.” "동일한 한 사람이 영인 동시에 육이다“. 루터는 인간을 언제나 죄인이고 늘 회개하면서 항상 의롭다.“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임재가 회개케 하는 영의 사람으로 회복시키신다. ,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한다. 이 말씀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포함한다.

루터가 서방교회의 전승을 따라 성령의 사역이 성부와 성자의 사역에 종속된 것이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강조점은 성력의 사역을 성부와 성자의 사역을 연결시키는데 두고 있다.

 

⦿ 칼뱅

칼뱅은 성령의 신학자로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이다. 성령의 비인격적 힘이 아닌 고유한 인격성을 지닌 분으로 보고 있다. 성령은 창조사역과 구속사역을 통하여 그 자신의 신성을 입증한다. 성령 없이는 신적인 어떤 것도 실현되지 않는다. 그는 성령론은 구원론의 서론처럼 다루고 있다.

종교개혁의 원동력은 성경의 자명성의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칼뱅은 교회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고 본 그는 성경의 권위의 토대 중에서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onium internum Spiritus Sancti)"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증거에 의해서만 신적 권위를 지닌다. 성경은 성령의 학교가 된다. 이렇게 말씀과 성령이 결합되어 있다.

칼뱅은 그리스도 중심의 성령론과 성령론적 기독론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는 성령의 담지자가 되신다. 칼뱅신학의 중심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란 기류도 이 성령론과 밀착되어 있다. 인간 밖에서(갈보리) 이루어진 구속이 인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는 신비적 연합으로 나가야 한다. 이신칭의를 통한 구원의 확실성을 구원의 도덕성을 지향케 하는 역동적 성화의 주체로서 성령의 성화사역을 강조한다. 칼뱅은 칭의와 성화를 단계적 문제로 이해하지 않고 동시성으로 보았다. 칼뱅은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리성을 강조한 것이다. 칭의가 우리를 위해서 행한 것이라면, 성화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신다. 성령은 연합의 끈이 된다.

 

종교개혁자들의 성령관은 청교도 신앙으로 이어졌다.

 

⦿ 토마스 뮌처(Thomas Műntzer)

토마스 뮌처는 종교개혁 시대에 독일의 급진 종교 개혁가, 묵시적 설교자로 활동했다. 그는 재침례파 지도자이면서도 동시에 정치적으로 반 기독교적 권력에 압제 당하는 민중을 해방시켜 신정 정치를 구현하려고 농민 봉기를 이끌었다. 그는 성령을 말씀 위에 두었다. 성령운동을 중심으로 기독교 국가 건설을 추진했다.

 

6. 존 웨슬리(John Wesley)

 

웨슬리의 신학은 성령을 중심으로 하는 성령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성령체험의 믿음은 18세기의 영국을 개혁하고, 나아가서는 미국의 영적 대 각성운동으로 이어지게 되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1738524일 런던 올더스게이트가에서 극적인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였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올더스가에 있는 신도회에 갔다. 그 곳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45분 경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동안, 나는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이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 한분만을 믿는다고 느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내 것도 제거하셨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들었다.”

웨슬리는 이 경험을 성령의 두 번째 축복이라고 불렀다. 이 두 번째 부여는 사역을 위한 능력 부여와 성화의 완전성에 이르는 길로 인식하였다.

웨슬리는 성화를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보았다. 성령은 믿음과 성화의 근원, 구원의 실행자 또는 성취자로 보았다. 성령이 믿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는 성령의 신격성과 인격성을 신봉하였다. 그는 성령의 증거에 강조점을 두었다. 성령은 인간 안에서 직접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거하고, 그의 열매로 나타나게 하는 간접적 증거를 하신다. 이 두 증거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녔다. 웨슬리는 성령에 의한 내적 변화와 생활의 변화, 더 나가서는 완전을 강조하였다.

 

7. 20세기 오순절 운동

 

19세기 성결운동은 20세기 오순절 운동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찰스 팔함(Charles Parham)과 윌리암 시모아(William Seymour)의 주도로 제1파인 고전적 오순절주의가 발전되었다. 고전적 오순절주의 운동은 아주사 거리(Azusa Street)를 중심으로 한 방언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시무어는 성령세례를 중생 이후에 봉사와 증거를 위한 능력을 부여하는 결정적 체험으로 보았다. 이것은 웨슬리 운동의 연속성으로 보인다. 성령세례가 두 번째 경험이냐 아니면 중생과 성화 이후의 세 번째 단계로 보느냐에 관한 시각 차이가 있다. 포스퀘어 복음(Foursquare Gospel) 측은 성화를 칭의와 더불어 예수의 십자가 사역에서 완성된 것으로 보면서도 그 점진성을 인정하며 성령세례를 두 번째 단계로 받아들인다. 이들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령세례와 중생을 구분하는 점에서는 같은 입장이다.

포스퀘어의 기본적인 교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Savior), “성령의 세례를 주시는 분”(Baptizer with the Holy Spirit), “의사이며 치료자”(Physician and Healer), “다시 오시는 왕”(Second Coming King)이시다으로 본다

오순절 운동의 제2파는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 또는 신 오순절주의이다. 성령세례의 증거를 방언으로 보는 제1파의 한계점을 넘어 초교파적으로 일너난 영적인 삶에 대한 관심과 활력을 불어 넣는 운동으로 다양한 은사들을 강조한다. 이 은사 운동에서는 방언, 신유(기적) 및 예언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 은사운동에서는 사도 시대 이후 단회적 오순절을 강조한 전통적인 은사 중단론 기류를 배격하고 은사 게속론을 펼쳐 나간다.

 

8. SDA-신조 5

1. “영원하신 성령하나님은 창조, 성육신, 구속사업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로 더불어 활동 하셨다.”

2. “하나님의 자녀들과 항상 함께 하시도록 성부와 성자에 의해 파송되신 그분은 영적 은 사들을 교회에 부여 하시며, 교회에 능력을 베풀어 주셔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하 시고” --> 아버지와 아들에 의하여 파송되었다는 외교사절적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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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