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과 품성

성령 : 2018. 11. 6. 00:15

성령 충만과 품성

 

성령 충만은 황홀경 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인 품성에 열매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성령 충만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것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나 봉사하는 것이 덜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침례로 시작한 삶이 그 연속선상에 있는 성령 충만 체험의 삶에 그리스도의 품성에 닮아가지 않으면 모든 신앙적 활동이 진실성을 결여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죄에서 깨끗하게 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사업에 즐겁게 봉사하는 일은 성령 충만의 삶이 가져오는 축복들이다. 품성 변화는 자연인으로서 삶 그대로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 훈련이나 교육 덕택으로 형성되어 지는 것도 아니다. 품성 변화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삶을 깊이 감동시키는 것이다.

다음에는 이른바 한 쪽의 의미가 다른 쪽의 뜻을 정의하는 (거의 동의어적으로 설명하는) 重言법적 메시지 사례들을 통하여 성령 충만의 진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성령 충만한 사람은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다.

사도행전 6:3에 나오는 칭찬 받는(μαρτυρέω, 마르튀레오)” 사람은 로 사실 그대로를 들어내는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을 의미한다(4:22; 딤전 5:10). 그런 사람은 항상, 사람들이 직접적 관찰에 근거하여 증명받을 수 있다. “聖靈智慧充滿하여 稱讚 받는 사람‘(6:3)이라는 표현에서 성령 충만과 좋은 평판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곧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다. 곧 비난 받을 여지가 없는 사람이다.

사도행전 11:24에 나오는 착한 사람이요 聖靈과 믿음이 充滿한 사람이라는 점에 비추어 성령 충만한 사람은 바나바처럼 착한 사람이다. 바나바의 착한 사람됨은 너그럽게 아량을 베풀어 자기 땅을 팔아 그 대금을 교회에 헌금한 점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자기 재산을 하나님으로부터 위탁 받았다는 깊은 청지기 의식을 지녔던 사람이었다. 더 나아가서 그의 착함이란 하나님의 일꾼을 분별할 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친히 나서서 그런 인물을 발굴하는 사람으로 이어진 점에 잘 나타나 있다. 바나바는 초기교회가 박해자인 바울을 기피할 때 회심한 바울을 안디옥 교회의 교사로 청빙 주선한 넓은 마음씨를 지녔다. 그리고 바울과 함께 외방 선교의 일원으로 나섰다.

 

2. 성령 충만한 사람은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다.

초기교회의 집사로 선택 받은 사람들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6:5). 바나바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11:24). 단순히 구원하는 믿음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 본문들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은 믿음의 은사(고전 12:9)를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뛰어난 위업을 이룰 수 있는 것과 같은 특별한 믿음이다(17:20; 21:21). 이 믿음은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의 은사(카리스마)이다(고전 13:2).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은 삶의 현장에 몰아치는 시련과 역경의 파도 속에서 또한 몰아치는 반대의 기류 속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 실수를 결코 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 아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고 하는 것은 완전하자는 뜻이 아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울과 바나바이었지만 마가 요한에 대한 선교 동반 여부 문제로 서로 다투었고 서로 분리하여 독자적 길을 걸었다. 그러나 실패하고 실수하였지만 하나님의 영의 책망을 받아 고침을 받고 용서받는 것으로 새롭게 성령으로 채움을 받았다.

3. 성령 충만한 사람은 기쁨이 충만한 사람이다.

弟子들은 기쁨과 聖靈充滿하니라”(13:52). 제자들은 성령께서 힘주심을 통해 핍박을 받을지라도 기쁨을 경험하였다. 박해가 복음의 승리적 진행을 정지시킬 수 없다(20:24). 8:8에서 보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고, 그들이 믿을 때, 그리고 이적이 나타날 때 거기에 해당된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성령은 무엇보다도 기쁨(희락)의 영이다(5:22; 14:17).

기쁨은 고통당하는 성도의 마음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은 놀랍다. 바울 서신에는 고난과 기쁨의 역설적 사례들이 나온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도들에게 너희는 많은 患難 가운데서 聖靈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받은 가 되었다고 한다(살전 1:6). 로마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은 사실상 기쁨의 서신이다. 기쁨이라는 단어가 16회나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기쁨은 즐거운 환경에서 나오는 행복감이 아니다. 그것은 역경 속에서 성령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쁨이다. 기쁨이 없는 교회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성령 침례는 단회적이고 직설법적 사건이지만,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명령에 속한다. 단번의 성령 충만으로 족하다는 주장은 허상에 불과하다. , 성령 충만은 반복되어야 할 명령법 체제로 주어졌다(5:18).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주실 것이라는 약속은 우리에게 용기를 북 돋는 약속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약속을 붙잡고 날마다 성령 충만의 삶으로 전진하는 사람이다.

'성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의 관계  (0) 2021.05.23
초기교회의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활동  (0) 2018.11.22
이승만의 성령 체험  (0) 2018.11.05
성령의 열매  (0) 2018.10.25
마라나타!  (0) 2018.10.23
Posted by KAHN0211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