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의 순례 스케치2
아브람의 순례 스케치2
옛길을 찾아서
아브라함은 애굽으로부터 탈출하여 네게브를 지나 벧엘에 이르러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펼쳤다(13:2-5). 벧엘은 예전에 제단을 쌓았던 곳이다. 그는 하나님께 헌신, 성별한 곳에 “거주하고자”(yashab) 다시 돌아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라(lek)”고 명하신(창 12:1) 지정된 거주할 곳을 향하여 “떠나가는”(13:3-halak) 것이 비전을 가진 순례자의 발걸음이 되어야 한다. “떠나”는 것은 창 12:10의 애굽으로 내려가는 일의 역순을 뜻한다. 13장에 6번이나 나오는 “거주(dwell)”라는 키 워드가 끝맺는 단어가 된다(18절). 창 13장은 하나님 백성이 떠나 정착할 곳이 어디라야 하느냐를 말하고 있다.
바로가 사라를 취한 대가로 아브라함은 “羊과 소와 奴婢와 암수 나귀와 駱駝를 얻었더라”(창 12:16)고 말하고 있다. 이 재산 증식에는 부끄러움이 배어 있었고 저주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나간 날의 궤도 이탈을 하나님께 회개 고백하고 재 헌신하므로 신앙 중심으로 나가는 일을 제일 과제로 삼았다. 애굽행이라는 잘 못된 선택을 청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옛길(렘 6:16)에 들어 선 것이다. 창세기 13장의 처음 부분과 끝나는 절에 나오는 여호와께 제단을 쌓는 교차 상응 진술은(참조, A 4절 - A' 18절) 아브라함의 믿음이 예전에 헌신의 제단을 쌓은 자리로 돌아 온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경건한 재 헌신의 예배는 예나 오늘이나 하나님 백성이 지향하는 생명의 길이 된다.
아브람과 롯의 분리
키우는 가축 떼가 많아지는 일로 인하여 아브람과 롯의 종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초장의 부족이 빚은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갈등 원인은 외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동거하기에 어려운 보다 근원적인 요인은 내적, 영적 시각 차이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아브람이 순례자로 나설 때의 초심을 회복하여 만사를 하나님과의 관계에 역점을 둔 경배 중심의 단순한 삶이 롯과 그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지루하였고 버거웠으며 세상적 풍요와 화려함이 더 매력적인 것으로 보였다.
이런 갈등은 이웃 토착민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주민들에게 주목거리가 되기도 했다(13:7). 참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저들 내부 분쟁의 귀추를 눈여겨보고 있는 중에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親族이라 나나 너나 내 牧者나 네 牧者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左하면 나는 右하고 네가 右하면 나는 左하리라”(13:8-9)고 제안하였다. 이 두 가문 사이에 평화를 회복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지리적인 분리에 있었다. 지리적인 거리가 반드시 모든 인연을 끊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은 이 다음에 소돔성 구원에 나선 아브라함의 행적이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분리는 분리로 되돌려 놓을 수 없는 비극적인 분리이었다.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분리”(parad)라는 단어는(13:9) 이미 홍수 사건 후와 바벨탑 사건에서도 사용된 단어이다(창 10;5, 32; 11:8). 동족이라고 할지라도 반신적인 무리와는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 의인이 사는 길이다.
아브람은 장차 삶의 터전을 롯이 먼저 선택하도록 양보하였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左하면 나는 右하고 네가 右하면 나는 左하리라”(13:9). 아브람의 이 관대한 제안은 롯을 동등하게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롯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선택케 하여 선민으로 복원해 올 수 있는 여지를 담고 있었다. 더구나 아브람은 하나님이 자기에 주신 약속의 땅인데 그 약속의 땅을 포기할 위험한 양보이기도 했다.
롯의 선택, 아브라함의 선택
롯은 약속의 땅 밖에 소재한 요단 평원 도시(성읍)를 선택, 거기에 묻혀 거주했다(13:12). 하나님은 이 땅을 장차 롯의 자손들의 거주지역으로 인정했다(신 2:9,19). 롯이 택한 땅은 에덴동산과도 같고, 애굽과도 같다고 한다(13:10). 그러나 그의 자기를 위한 선택은 마치 신기루를 선택한 것에 불과하였다. 풍요로운 곳은 영적으로 가난한 곳이며 그리고 죄악이 넘치는 곳이다. 롯이 자기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은 자기 파멸을 불러왔다.
죄악의 소굴을 선택한 롯과는 달리 아브람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선택을 하였다. 그의 선택은 언약을 확인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에 꽂혔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北쪽과 南쪽 그리고 東쪽과 西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子孫에게 주리니 永遠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子孫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能히 셀 수 있을진대 네 子孫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縱과 橫으로 두루 다녀 보라(halak, 가다, 걷다).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 13:15-17).
아브람의 자기 양보적 선택은 현재 뿐 만 아니라, 미래에 걸쳐 있는 축복의 약속 비전으로 이어졌다. 그 축복은 “네 자손”이라는 상속자(15-16절), 땅(15절), 그리고 자손의 수(16절)에 관한 세 가지 이었다. 특히 땅 약속은 어느 한 쪽 만 아니었고 눈에 보이는 동서남북 모든 땅이었다. 이 축복에 감동 받은 그는 예배를 올렸다. 일시적인 포기 제안은 그에게 기하급수적 축복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자기를 포기한 선택의 양보는 자기와 후손의 사는 길을 이어지는 비전의 길을 열었다!
'성경으로부터 풀어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브라함 순례 스케치 6 (0) | 2018.12.19 |
---|---|
웃음 (0) | 2018.12.14 |
아브라함 순례 스케치1 (0) | 2018.12.05 |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그리고 하나님의 근심 (0) | 2018.11.25 |
베드로의 후기 행적 (행 12장) (0) | 2018.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