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표를 받은 사람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이 시온 에 섰고 그와 함께 十四萬 四千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14:1).

 

역사의 마지막 국면에 등장하는 무리가 있다. 한 무리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고(13:17), 다른 한 무리는 하나님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 시온산에서 어린양과 함께 서 있게 될 것으로 말하고 있다. 시온산은 최후 구원의 장소와 최후 승리의 장소이며 살아가계신 하나님의 도성 곧 하늘의 예루살렘이다(12:22).

 

이 사람들은 女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純潔라 어린 이 어디로 引導하든지 따라가는 며 사람 가운데에서 贖良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에게 들이니” (14:4).

여자는 자주 교회를 표상한다. 순결한 여자는 참된 교회이며 부정한 여자는 배도한 교회이다.

배도한 교회에 속하는 무리들의 이마에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참된 교회에 속하는 자들의 이마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교회들은 이 무리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14:1에 나오는 이름을 두고 개정개역판은 GNT에 따라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NKJVBHSStp에 따라 그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번역하고 있다. 본문의 이름(onoma)은 어느 사본이든지 모두 단수로 나온다. 아버지의 이름이 곧 어린양의 이름이다.

 

7:3에서 144,000인은 이마에 인을 맞은 무리들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과 하나님의 이름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144,000인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계시 중에 요한이 본 인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고대의 인은 법적으로 그것을 인증하는 사람의 이름을 담고 있었다.

 

먼저 인은 소유권을 뜻한다. 그래서 144,000인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은 품성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144,000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는 무리들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때 등장할 짐승의 표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13;17은 이 짐승의 표가 그들의 이마나 손에 찍힌 것으로 말하고 있다. “짐승의 이름짐승의 표는 동격적 의미로 보인다. , “그 표, 곧 그 짐승의 그 이름으로 보아야 한다.

 

짐승의 표도 하나님의 표도 모두 사람들의 이마에 찍힌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띄고 있다. 짐승의 표는 문자적으로 문신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짐승의 표는 오늘날 대중들의 관심을 일깨우는 피부에 이식한 마이크로 칩 같은 것도 아니다. 물론 현대 과학의 발전에 따라 특정 집단 구성원에 입력되어 각자가 자기의 주체적 판단을 상실한 채 입력된 지시에 따라 움직여 가게 하는 칩이 등장할 위험성에 대하여는 경각심을 지녀야 할 것이다.

 

성경이 요한계시록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이렇다. 이마란 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판단력과 도덕적 결단을 내리는 최후 보루가 되는 마음을 가리킨다. , 이마는 마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이 이마에 표를 지녔다는 것은 짐승의 품성을 소유하고 있는 무리들이다. 그리고 짐승의 지시에 따르는 자들이다.

 

반면에 아버지의 이름이 이마에 새겨져 있는 무리들은 아버지의 품성이 그들의 마음판에 새겨져 있는 자들이다. “께서 이르시되 그 날 로는 그들과 맺을 言約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記錄하리라 ”(10:16). 최종적 판단과 결단을 내리는 곳인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법이 새겨져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분으로 여기면서 그 분의 품성을 들어내어 짐승을 따르는 무리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마음의 이마에서는 참 하나님을 경배키로 선택하고 결단을 내린다.

 

34:5-8에는 여호와께서 자기의 정체를 모세에게 선포하고 있다. , 이 본문에는 아버지의 품성의 내용이 집약되어 나오고 있다. 모세는 대담하게도 榮光을 내게 보이소서”(33:18)라고 요청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요청을 받아드리시고 자기의 품성을 밝히셨다(34:5-8). 그 품성의 내용을 본문에 스냅 사진처럼 선포된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하나님은 자비로우신(merciful) 분이시다. "자비롭고"로 나오는 라훔 rachum”의 어근은 자궁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궁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표현을 문자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머니 같이 자녀의 생명을 태동하시고 보살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2. 하나님은 은혜로우신(gracious) 분이시다. "은혜로우신으로 나오는 "한눈 channun"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한눈은 엎드려 절하는 것을 뜻한다. 본문이 말하고 있는 강조점은 높으신 하나님이 낮은 곳으로 내려오셔서 낮은 인간을 섬기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에 있다.

 

3.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slow to anger) 분이시다. “아프 aph”를 뜻한다. "더디 하고""아레크 arek"길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노하기를 더디 하고긴 코를 가졌고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짧은 코로 금방 씨근거리는 분이 아닌 어리석고, 방자하게 구는 백성들을 향하여 오래 참을성이 많은(longsuffering) 분이라는 뜻이다.

 

4. 하나님은 인자가 많은 분이시다. “仁慈로 나오는 헤세드 chesed”는 언약적인 견고한 사랑(steadfast love)“ 또는 넬슨 글루에크(Nelson Glueck)가 말한 대로 언약적 의무에 충성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언약을 파기하기 일쑤이지만, 하나님은 언약에 충성하시는 분이시다. ”많은라브 rab“로 바다처럼 광활하다는 뜻이다.

 

5. 하나님은 진실(faithfulness)"이 많은 분이시다. 진실"에메트 emeth"아멘, 곧 확고한, 확실한, 신실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진실한 것이 바다처럼 광활한 것을 의미한다. 진실견고한 사랑(steadfast love)“과 유사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항구성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진실이 아닌 것을 때로는 처벌도 하신다.

 

6. 하나님은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다. “용서나사 nasa”들어 올리다,” “가지고 가다,” “취하여 가다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죄책과 허물을 치워버리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표를 이마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품성으로 꼴 지어진 무리들이다. , 이 얼마나 고귀한 분들인가! 나는 과연 이런 품성 건축을 하면서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에 나는 속하는지 자문해 본다. 하나님의 품성은 북극성과도 같다. 우리는 북극성에는 도달할 수 없겠지만, 그 북극성을 방향 가늠자로 여기고 따라가는 순례자들이다. 이것이야 말로 2019년의 성도들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