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생물학자들의 영혼 분석 비판을 보고
과학자들은 머리를 싸매고 인간의 뇌 안에서의 생화학적 반응을 연구하였다. 특히 인간 영혼이 별개의 분리된 실체인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파헤쳐보고자 하였다. 이는 영혼의 존재가 불멸의 생명을 보증하는 것으로 신봉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위협으로 의식되기까지 하였다.
1953년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혀 내 분자생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Francis Crick과 James Watson은 의식에 대한 조사연구를 하였다. 이들은 영혼의 존재를 논박하는 일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Crick과 다른 연구자들은 인간의 자의식을 생성하는 전두엽 피질 뒷 부분에 있는 세포군을 발견하였다. 크릭은 인간이 어느 날에는 영혼의 개념과 영생의 약속이 기만이라는 사실을 수긍할 것이라고 신봉하였다. 영생이나 영혼의 개념이란 마치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과 같이 기만이라는 것이다.
분자생물학자들의 주장에는 맞는 점도 있으나 틀린 점도 있다. 옳은 점이란 영혼의 개념이 기만이라는 평가이다. 육체와 분리된 영혼의 존재란 성서적 근거가 없는 허구일 뿐이다. 성경은 인간을 전인적으로 보고 있지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켜 말하고 있지 않다. 인간 창조의 첫 기사를 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아담이 영혼을 받은 것이 아니라 생기, 곧 생명의 숨을 받았다. 그래서 생령, 곧 살아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person)이 되었다는 뜻이다. 생명의 숨이 그치는 날 인간은 죽어 존재하지 않게 된다. Pederson이 말한 것처럼 몸이란 외적 형태의 영혼이다. J.A.T. Robinson이 인간이 몸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곧 몸이다.
틀린 점이란 영생의 약속을 기만으로 보는 시각이다. 영생의 약속을 영혼 불멸에 토대를 둔 것으로 보고 있는 점이 잘못 집은 것이다. 영혼불멸론이란 고대 헬라철학이 마련한 것을 그리스도교가 빌려 온 것에 불과하다. Oscar Cullmann은 이런 점을 잘 파헤쳤다. 영생은 죄와 사망의 정복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보증이다. “내가 살았기 때문에 너희도 또한 살겠음이라”(요 14:19, NIV).
부활 그 자체는 인간의 이성적 추론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신앙은 지식보다 깊다. 인간의 지식은 두뇌로 흡수되고 그 두뇌 안에 머문다. 신앙의 깨달음이 일어날 때는 모든 지체가 떨리고 온 몸이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과학적인 지식을 습득하였다고 해서 인간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자아를 에워쌀 때, 그 분의 말씀이 내 심령에 관통할 때는 자기중심적 판단이라는 껍질을 벗어나는 곤충과 같이 새로은 세계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언제나 하나의 역설(paradox)로 파악되는 분이다. 지성은 모순을 견디어 내지 못한다. 죄, 회개, 양심, 신앙 같은 주제들은 이성으로 다 파악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