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 기억절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재림교회의 종말론적 구도에서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핵심이 되는 이슈들 중의 하나가 되어 왔다. 이 주제가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각도에서 계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로 존재론적 차원에서 여러 주장들이 제기 되었으나 하나님의 품성을 지닌 백성이라고 하는 점에 그 강조점이 옮겨 갔다. 이는 바람직한 논의로 보인다.
I. 요한계시록 제 7장의 시대적 위상
일곱 인 중 처음 네 개의 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적인 혼수상태에서 깨우고 승리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징계의 도구들을 묘사한다.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복을 얻겠지만, 불신실한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음에 적대적인 세상에서 불의와 압제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여섯째 인을 뗄 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해롭게 했던 자들을 다룰 준비를 갖추신다.
계시록 7장은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 삽입된 막간과 같다. 여섯째 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안내한다. 심판을 맞이하여 ‘누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설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 악인들의 질문에 계시록 7장은 ‘하나님께 인을 받은 십사만 사천 인이다’라고 대답한다. 십사만 사천 인의 특징은 계 14:1~5에 요약되어 있다.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도 막간이 있다(계 10:1~11:14). 2차 대각성과 재림 운동의 태동으로 시작하는 이 막간은 계시록 7장이 그리는 장면들과 시대적으로 상응하며 마지막 때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험과 임무에 초점을 맞춘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계 1:7)할 때가 다가올 때 평상시에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산과 바위에게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절망하여 울부짖을 것이기 때문이다(계 6:16, 17).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요한계시록7장 전체에 걸쳐 제시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장은 우리를 가장 위로하여 주는 장들 중 한 장이다. 이 장은 요한의 “남은 자 신학”을 밝혀준다.
II. 종말론적 바람 억제와 인치는 일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바람들이 몰아쳐 불어오고 있다. 유행의 바람, 이념의 바람, 전쟁의 바람 등등이다. 요한계시록 제7장은 종말론적 전쟁, 심판과 파멸의 바람을 말하고 있다.
1. 바람을 억제하는 목적
[계7:1~3]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위 본문에서 바람은 전쟁의 바람이며 파괴적 힘의 작동이다. 구약성경에서 바람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심판을 집행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파괴적인 힘들을 상징한다(렘 23:19~20; 25:31-34; 단 7:2). 그것은 파괴와 살육을 일으킨다.
베드로는 주의 날이 이를 때 파괴적 힘이 수반되는 현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 3:10, 12).
진노의 일곱 번째 대접을 쏟을 때 엄청난 파괴 현상이 수반된다(계 16:17-21).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바람을 붙들고 있다. 땅 네 모퉁이는 범세계적인 규모를 말하고 있다. 천사들이 땅과 바다를 포함한 온 세상을 황폐케 하는 파괴적 바람이 몰려오려는 바람을 붙잡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천사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인치는 것이 마칠 때까지 땅 네 모퉁이 천사들에게 바람을 붙잡아 각종 나무(생명들)을 해하지 못하도록 억제케 하신다.
다른 천사가 해 돋는 곳, 즉, 그리스도로부터 파견 받는 곳으로부터 파견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 이마에 인치는 작업을 한다. 바람을 잡고 있는 것은 인을 치기 위한 목적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파괴적 재앙들을 억제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충성하는 남 은 백성들을 보호하심에 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간의 격정이라는 거센 바람을 막아주지 않으면 각종 투쟁의 요소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GC 614).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을 받는 동안에 이러한 파괴적인 힘들은 거룩한 개입에 따라 억제되고 있다. 마지막 때에 천사가 바람을 붙잡는 것은 하나님의 인 맞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분리하는 작업의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인치는 시기는 은혜의 시간대가 된다.
2. 인침의 의미와 목적
하나님께서 사탄의 세계를 무차별하게 멸망시키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섬기는 자들과 섬기지 않는 자들을 구분하신다. 그분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자와 속하지 않는 자를 결정하신다. 마지막 인치는 일은 이 결정에 따른 작업이 된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 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 하리라”(말 3:16-17).
영적 이스라엘을 비영적 이스라엘로 부터 분리하는 이 개념을 학자들은 ‘남은 자 신학’이라고 부른다. 인치는 일은 이 남은 자를 구분, 확증하는 일이다.
(1) 인을 치는 주된 목적은 소유권 확인하고 신분을 확인시켜 준다.
(2) 신약에서 인침은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딤후 2:19)는 뜻이다.
(3) 자기 백성에게 성령으로 인을 치신다(엡 1:13~14, 4:30).
(4)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신실한 백성들은 이마에 인을 받는다(계 14:1, 12).
(5) 인침은 “지적으로 영적으로 진리 안에 안착함”을 뜻하는 상징이다. 그 결과 하나 님의 백성들은 요동하지 않게 된다(참고, 마지막 날의 사건들, 220).
(6) 인침은 하나님의 비준과 보호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인침 반대는 짐승의 표를 받 는 것이다.
3. 복음의 인과 묵시문학 천사의 인
Hans K. LaRondelle 박사는 복음적 인과 묵시문학적 인을 구분한다. 모든 수침자가 종말론적 천사의 인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구분은 타당해 보인다.
(1) 복음의 인
하나님의 인을 받은 백성들의 믿음은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인을 받아왔다. 신약시대에 수침자는 침례예식을 통하여 하나님과 혼인관계를 맺게 되며 인침을 받는 것이다. 거듭난 각 신자가 침례 받을 때에 구속의 인으로서 성령을 받는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품성을 자기 안에 복사, 재현한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기 백성에게 성령으로 인을 치신다. 이런 원리를 사도들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 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 14).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1, 22).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니라 하고”(행 2:38, 39).
사도들의 이 가르침에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모든 신자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에 그 마음에 하나님의 소유권을 표하는 인을 받는 것이 된다. 침례 모본을 보이신 그리스도께서 침례 받으셨을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리스도 위에 임하였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 위에 “권위의 인”(신영어성경: 요 6:27) 혹은 “시인의 인”(신국제역)을 치셨다. 하늘로 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이 들려왔다(눅 3:21, 2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관한 하나님의 보증은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다.
(2) 묵시문학 천사의 인
요한계시록 7:1-8의 예언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적그리스도에게 대항하여 죽기까지 충성하는 마지막 때의 시련을 공동으로 맞이하는 독특한 위기 상황과 직관되어 있다(계 13:15-17). 그들은 세계적 싸움과 유혈을 몰고 올 마지막 바람들 가운데서 보호를 받는 일과(계 7:1, 2)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에 설 힘(계 6:17)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종들은 이미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를 받았을 때에 받은 성령의 영적 인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종들이 짐승의 표에 대하여 시험을 받고 나서 죽기까지 그들이 충성할 것임이 밝혀진 다음에 가서야 그들은 사망과 멸망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과 방패의 표가 되는 독특한 묵시문서적 인을 받을 것이다.
마지막 위기의 때에 닥칠 믿음의 시험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느냐의 여부가 될 것이다(참고 계 12:17, 14:12). 특히 넷째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계 14:7). 성경 역사의 각 시대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표징이었기 때문에(겔 20:12, 20, 히 4:9~10) 마지막 위기의 때에도 그것은 하나님께 충성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징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모르고 범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논쟁적인 하나님의 주권의 표에 관한 메시지를 받고 율법을 고의로 거부할 때까지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 이 종말론적 믿음 테스트는 하나님 앞에서 참된 신자와 거짓 내지 유사 신자 사이의 최후의 경계선을 그을 것이다. 참 하나님의 표에 관한 메시지를 받지 못한 자들에게도 충분힌 빛의 증거를 준 후 이 구분을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은 144,000이 특별히 마지막 때의 인을 필요로 하는 이유를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늘 성소에서 바벨론화된 이 세상에 마지막 일곱 재앙들을 쏟으라고 위임한 일곱 천사들로 부터 그들이 보호받을 것을 보증하는 것이다(참조 계 6:17; 15:1, 5-8; 16:1, 2).
에스겔의 이상에서는 오직 제사장 같은 인물에 의해서 표를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였다. 마지막 심판 때에는 오직 하나님을 진실로 예배하는 자들만이 그들의 이마에 묵시문서의 인을 받게끔 선택되어질 것이다. 그들은 어린 양의 진노를 피할 것이다(계 6:16, 17). 일곱 마지막 재앙은 그들을 해치 못할 것이다. 이 하나님의 인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들이 불멸의 영광 중으로 변화될 것을 보증한다. 인침을 받은 자들만이 아마겟돈에서 살아 남을 것이다.
복음적 인과 묵시문학적 천사의 인의 차이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복음의 인>
치는 장소 : 새 신자들의 마음
치는 자 : 성령
치는 시기 : 침례의 성례전 때
치는 목적 : 하나님의 아들됨과 미래 기업을 보증하고자
<묵시문서의 인>
치는 장소 :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
치는 자 : 거룩한 천사들
치는 시기 : 믿음의 마지막 시험 동안
치는 목적 : 재앙들과 아마겟돈 가운데서 보호함을 입을 것을 보증하고자
III. 144,000 정체에 관한 역사적 개관
1. 144,000과 큰 무리(Great Multitude, 이후 GM으로 표기)와의 관계 개관
(1) 동일설--144,000은 상징적, 144,000와 GM은 동일한 무리
(2) 相異설--144,000은 문자적, 마지막 세대, GM은 각 시대 구원 받은 성도들 포 괄
(3) 包括설--144,000이 GM의 일부로 포괄된 형국으로 전체적으로 한 실체
(4) 대표설--144,000은 문자적, 큰 무리의 대표자
2. 하나님의 인과의 관계
Joseph Bates는 소책자에서 최초로 144,000을 인치는 기별과 연계시키는 기여를 했다. 그렇지만 그는 144,000을 상징적으로, 문자적으로, 또는 은유적(figurative)으로 해석하는 혼란상을 보여주고, 땅 네 모퉁이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으로, 그리고 144,000가 당대에 살고 있는 것으로 푸는 한계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3. 첫 열매론(The first ripe fruits)
H.B. Woodcock의 1844년 12월 30일 자에 “The True Millennium"이라는 제하의 편지가 The Western Midnight Cry에 게재되었다. 여기서 그는 144,000을 the "first ripe fruits"으로 보고 그리스도를 위한 본격적인 추수가 아직 남아 있다고 하였다. 이 글은 향후 144,000의 정체 이해 방향에 대한 영향을 널리 미쳤다. 그 다음에 출간된 Western Midnight Cry (1845년 6월 10일 자)에는 144,000이 1844년 10월 22일 일어난 운동의 구속 받은 백성의 상징이라는 H. L Smith의 기사가 실렸다.
144,000에 관한 Uriah Smith가 Review and Herald지에 기고한 그들에 나타난 다양한 해석들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856년 144,000은 빌라델피아 교회와 동일시하는 견해 피력, 미래적, 승천한 자
1861년 144,000 미래, 마지막 세대론 등장, GM의 일부론
1865년 출 12장 및 겔 9장과 연계, GM은 각 시대 구원받은 자로 부활한 자
1880년 익명이지만 Smithe 글로 추정, 144,000을 특별부활과 연계시킴.
1886 그리스도 부활 시 요제단으로 보는 견해 반대
Smith는 대체로 선교론적 차원에서 문자적 144,000의 수가 차기를 고대한 면모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1900-1925년대에는 144,000에 관한 열띤 논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특히 누가 144,000를 구성하느냐에 관심을 둔 논란이 중심 이슈이었다. 죽음을 맛보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되는가, 아니면 죽은 후에 부활한 사람들도 포함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 되었다. 심지어 1914년 B. E. Fullmer는 144,000 미국인론을 제기하였다. 1916년 J. N. Loughborough는 특별부활 통한 셋째 천사 기별 듣고 잠든 성도의 144,000 참여 가능론을 제기하였다. Uriah Smith 도 이 같은 입장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후에 Arthur White은 EGW의 저술에 그 결정적 증거가 없다고 하였다(LS 110).
EGW은 제기되는 질의를 두고 곧 하늘에 가면 알게 될 것이라고 하며 (MS 26 1901), 1903년 4월 12일 자 오크랜드에서 설교를 통하여 누가 들어가느냐 등에 관한 관심보다도, 모든 신자들이 144,000에 들어가도록 힘쓰라는 권고를 하였다. 헤스겔 목사가 EGW에게 사별한 제임스 화잇이 144,000에 들어가느냐고도 물었다. 이에 대하여 EGW은 모른다고 응답했다(DF 164). C.C.Crisler가 동 주제에 관한 질의를 해 왔을 때 EGW은 “침묵이 웅변이다”고 응답하였다.
1930 V.T. Houteff가 Shepherd's Rod 지를 통하여 살아 있는 자들의 첫 열매론 제기하였다. 그는 엘리야를 144,000의 표상으로, 에녹을 GM의 표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엘리야 표상론을 유대인 혈족에 연계시키면서 유대인 144,000을 주창하는 분파운동으로 전락하였다. 1900-1930년대 144,000에 관한 논의는 대체로 선교적 조망론으로부터 표상학적 시각으로 발전된 시각의 등장이 그 특징을 이루고 있다.
1948년 M. L. Andreasen이 The Book of Hebrews에서 144,000 대제사장론을 전개하였다. 성화와 완전의 시각에서 144,000을 죄로부터 정결케 된 자들과 구속의 경륜에 있어서 핵심 역할을 하는 무리로 보았다. 즉, 그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닌 144,000을 그리스도의 사역을 타인에게 효험 있게 하는 일하는 마지막 세대로 부각시켰다.
1950년대 이후에는 144,000의 존재론적 구성보다는 품성론적 특성 강조와 GM과 구분하는 방향의 연구들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로 나갔다. 1970년대에는 상징주의적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후 1980년대에 <견고한 토대> 류의 문자적 144,00 고수론이 교회에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4. EGW의 기본적 진술
1844년 12월 첫 계시 중 144,000이 모두 인 맞은 자로 묘사하였다. “이마에는 하나님, 새 예루살렘이라 씌여 있으며 예수님의 새 이름이 들어 있는 영광스러운 별이 새겨져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EW 15). EGW은 유리 바다에 144,000이 정사각형 모형으로 서 있는 모습도 보았다. The Day -Star지 1846년 3월 14일 자 호에는 EGW의 1845년 2월과 6월에 받은 계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게시에서 144,000은 미래에 있을 일로 규명하여 그동안 144,000에 관한 잘못된 추측들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
EGW의 1846년 4월 6일 계시에서는 144,000와 남은자(Remnant), 와 작은 무리를 동일시하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GC 648-649서는 144,000이 모세와 어린양의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 처음 익은 열매, 살아 있는 자 중 변화 받는 자, 야곱의 환난을 통과한 자, 7재앙에 중보자 없이 서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 더 나가서는 흰 옷 입은 GM에 관하여 입에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계 14:5)의 특성을 지닌 자들로, 그리고 7:14-17에 묘사한 큰 무리로 적용 묘사하고 있다.
지나간 세기 초 중엽에는 특별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144,000에 들어가는 여부가 자주 논란되었다. 그 근거로 다음 몇 진술들이 인용되어 왔다.
EGW은 GC 637에서 단 12:2을 인용한 후 특별부활 참여자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셋째 천사 기별 믿고 죽은 사람들은 모두 영화롭게 된 몸으로 무덤에서 나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평화의 언약을 듣는다.” EGW은 계시 중 천상의 세계에서 수종을 드는 천사에게 자기도 남아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너는 돌아가야 한다. 만일 네가 신실하게 행하면 144,000과 함께 모든 세계들을 방문할 ...특권을 누릴 것이다“고 하였다(EW 40). Mrs. Hastings가 144,000과 함께 있을 것을 보았다고도 했다(2SM 263). 이렇게 144,000명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진술이 144,000에 포함된 그 일부이냐는 여부는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Arthur White은 이들은 144,000의 일부가 아니라고 못 박은 바 있었다.
IV. 하나님께 인을 받은 백성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4). 여기에서 12지파와 144,000은 일종의 메타포적 표현들이다.
1. 12 지파
[계7:4~8]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계시록 7장에 열거된 열두 지파는 확실히 문자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1) 북방과 남방 왕국을 포괄하는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방 이스라엘을 이루던 열 지파는 앗시리아의 지배 기간에 포로로 끌려가서 다른 민족들과 섞였다(왕하 17:6~23). 따라서 오늘날의 유대교는 열두 지파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2) 계시록 7장이 열거하는 열두 지파의 명단은 성경에서 제시하는 명단과 같지 않다(비교 민 1:5~15, 겔 48:1~29). 심지어 유다는 르우벤 대신 첫째 지파로 열거되었다(비교 민 1:5). 그리고 단과 에브라임 지파는 민수기 1장과 에스겔 48장에는 포함되었지만 계시록 7장의 목록에서는 누락되었고 반면 레위와 요셉이 포함되었다(계 7:7~8). 계시록 7장의 목록에서 에브라임과 단이 빠진 이유는 구약시대에 두 지파가 배도와 우상숭배를 자행했기 때문이다(왕상 12:29~30, 호 4:17).
12라는 숫자 안에 이스라엘 전체가 포함된 것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계시록 7장에 나열된 지파의 목록은 역사적이라기보다는 영적이다. 단과 에브라임의 배제는 이 두 지파와 같은 불충실함은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는 발붙일 곳이 없다는 뜻이다. 또한 3) 신약시대의 교회가 마치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처럼 언급되기도 한다(약 1:1).
2. 인 맞은 자들의 수
인 맞은 자들의 수가 144,000명이다. 인 맞은 자들의 숫자를 선포했다는 것은 인치는 사업의 완성을 의미한다. 요한은 그들의 숫자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따라 십사만 사천이라고 들었다. 144,000이 실제 수가 되려면 이스라엘 사람도 실제적으로 민족적 이스라엘이 되어야 합리적이다. 그런데 12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이스라엘 지파 이름을 일일이 열거한 것 자체가 상징적인 숫자임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12 지파가 상징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요한은 코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파도 수도 모두 상징적이다. 144,000이 가리키는 것은 문자적인 숫자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어떤 것이다. 144,000은 12×12×1,000이다. 열둘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였고, 교회도 열두 사도의 토대 위에 건설되었다(엡 2:20). 따라서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들의 총체성, 즉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며, 죽지 않고 변화를 입게 될 “모든 이스라엘”을 상징한다(롬 11:26, 고전 15:51~53). 계시록 7장에 등장하는 열두 지파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여 마지막까지 인내하는 하나님 백성 전체를 상징한다.
거룩한 도성에는 12 문이 있고, 12 기초석, 12 사도 이름이 나고 있다. 그 길이와 너비가 각각 12000스타디온, 성곽은 144 규빗(계 21:12-17)이어서 144,000의 수치가 나온다.
지난 세기 동안 뜨거웠던 문자적, 선교 구원론적 實數라는 주장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직 교회가 크게 발전하지 못한 초기 단계 때부터 제기된 상징론에 반대하는 자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V. 큰 무리
[계7:9,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 계시 문체 특성 - 1:10 <-> 1:12
144,000과 GM을 묘사한 계시 문체 구성에 있어서 요한은 앞의 “내가 들으니”의 진상을 그 다음에 오는 “내가 보니”라는 구가 밝히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1:10과 1:12과 6:5에도 나온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I heard)” 144,000명 (7:4), ..,“이 일 후에 내가 보니(I saw)” 큰 무리(7:9)이다. “들으니”와 “보니”의 때와 장소의 차이가 본문에 나온다. 144,000은 지상에서 환난 중 인을 맞고(7:13-14), GM은 환난 통과 후 하늘 보좌 앞이다(7:15; 14:4). 그리고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EGW은 GC 649 에서 큰 무리 경험을 144,000에 적용하고 있다. 이런 계시 문체 구조로 보아 두 무리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무리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요한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를 보았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계 7:14)다. 그들은 어떤 환난이 닥치더라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킨 특별한 백성의 무리이며 그들이 입은 옷은 어린 양의 완전한 의를 통해 나타난 그들의 신실함을 상징한다. ‘환난’이라는 단어는 신자들이 믿음 때문에 겪는 일들을 가리키기 위해 성경에서 매우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예, 출 4:31, 시 9:9, 마 24:9, 요 16:33, 롬 5:3). 따라서 어떤 재림교회 주석가들은 이 무리를 십사만 사천의 또 다른 표현으로 간주할지라도, 우리는 이 “큰 무리”를 각 시대에 믿음 때문에 고통을 당했지만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대표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했던 요한의 설명 가운데서 은혜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이라는 성경의 위대한 진리를 볼 수 있다. 구원을 받은 자들이 영생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은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의’뿐이다.
“보좌 가장 가까이에는 한때 사탄의 사업에 열렬했으나 지금은…깊고 열렬한 헌신의 마음으로 구주를 따르는 자들이 있다. 그다음에는 거짓과 불신 가운데서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한 사람들과, 그리스도교계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폐기되었다고 주장할 때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한 사람들과, 각 시대를 통하여 믿음을 위하여 순교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각 시대의 대쟁투, 665).
VI. 인 맞은 자들의 특성
[계14:1~5]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1) 이마에 아버지와 어린 양의 이름이 기록된 자
이름은 아버지의 소유 및 아버지의 품성을 나타낸다(7:3; 14:1).
세상 역사가 마치는 즈음에 십사만 사천 인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반영할 것이다. 그들의 구원은 그들 자신의 경건이나 행위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그들 안에서 행하신 일들을 반영할 것이다(참고 엡 2:8~10). 십사만 사천 인은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의 두루마리를 씻어서 하얗게 빨았기 때문에(계 7:14) 하나님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벧후 3:14)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 구주의 형상을 반사하게 되기까지 모든 세속에서 정련되고 정결케 되어야 하며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생애의 투쟁이 끝날 때, 무기를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성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 그때에야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며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355~356).
(2)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품성이 순결한 자(계 17:5 참고)
성적인 부도덕함은 하나님께 대한 불충성의 상징이다. 계 17:5은 세상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간음을 저지르게 하는 종말 시대의 음녀 바벨론과 그 딸들에 대해 말한다(참고 계 18:3). 이 땅에 있는 교회 중에 정치적인 바벨론 교회가 있다. 그러나 인 맞은 자들은 그러나 십사만 사천 인은 바벨론 및 타락한 교회와의 부정한 관계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순수한 성경적 신앙을 지키는 자들이다. (***한동대 사건, 숭실대 사건)
(3)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계 7:14). 큰 환난은 그 환난이 단 12:1에서 말한 그리스도 재림 전에 있을 환난의 때로 보인다. 인생의 길에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던지 따라가는 자들이다.
(4)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받은 자들로 의의 옷을 입은 자들이다,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 중에서 구원을 받은 두드러진 백성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계시록에서 십사만 사천인은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를 입을 특별한 무리라고 할 수도 있다(고전 15:50~52 참고). 따라서 그들은 각 시대로부터 구원을 받은 거대한 수확 중에서 ‘가장 좋은’ 열매들이다(계 14:14~16 참고).
(5)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항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재림하실 때 아직도 살아있는 상태라면 그때 죽음을 보지 않고 재림을 맞을 것이다.
(6)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여기 나오는 흠이 없는 자들은 행위론적으로 보아 완전한 자들이지 존재론적으로 완전한 자들이 아니다. 홀연히 변화 되는 그날까지 아무도 죄없다고 말할 자는 없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입혀주신 의를 입고 있을 때 흠이 없는 자로 보신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1-24). 아브라함(창 17:1)과 욥(욥 1:1)은 흠 잡을 데가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하며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이 살라는 요구를 받는다(엡 5:27, 빌 2:15).
이 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요건이 된다(title).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적합성(fitness)이 필요하다. 그 적합성을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천국에 살기에 적합한 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삶의 현장에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신앙 인겨을 갖추어야 한다. 이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
(7)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일에 인내하는 성도(14;12)
L. F. 위어는 이 뚜렷한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지상 추수의 마지막 백성인 이 거룩한 집단은 마귀의 속임수가 그 극에 다다르는 때, 온 세상이 짐승을 기이히 여겨 따르는 때인 지상의 가장 암흑 시기를 헤쳐 나갈 것이다. 그들은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도 하나님의 어린 양께 계속 충성할 것이고, 그분과 함께 마지막 전쟁을 견디어 낼 것이다.“7
계 14:4~5에 나오는 144,000에 대한 진술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계 14:12) 자들의 노선과 같다. 비록 마지막 위기의 때에 사탄의 분노를 최대치까지 겪어야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굳세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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