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홍수 개관
노아 홍수 개관
(창 6-8장)
창조와 격변 사건은 이 세계와 생명 및 물질의 기원을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찰스 라이엘의 동일과정론이라는 가설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적 조류가 아무리 팽배하며, 심지어는 그리스도교에까지 파고든다고 할지라도, 진정한 성서학도는 창세기의 문자적 창조와 격변에 관한 기록을 신봉한다. 라이엘의 “현재는 과거를 푸는 열쇠가 된다”는 이론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그것은 격변론으로 파산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 자료는 주로 창세기 홍수 기록과 이에 대한 EGW의 <부조와 선지자> 제7-8장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개요와 한국창조과학회의 자료 노아홍수의 증거들을 인용, 정리, 구성한 것이다.
홍수의 원인 및 목적
하나님께서는 홍수 전 인간들에게 풍요로운 선물들을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선물들을 이기적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방종하였다. 그리하여 죄악이 온 세상에 관영하게 되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내리시기 전에 법적 사실 조사를 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5-7).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 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 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11-13)'
노아 홍수는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노아 홍수 직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념이며 철학이 되었지만, 그런 신념과 철학은 자멸을 재촉할 뿐이다. 과일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것은 인간이 살아 갈 수 있는 길이다.
홍수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에는 두면이 있다. 그 하나는 부정적인 측면이다. 이는 타락한 인간에 대한 사형선고이면서도 부패한 지구를 멸하는 것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죄악이 온 세상에 관영하고,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고, 강포가 가득하게 되었다. 결혼관계는 무너졌고, 부절제와 강탈과 폭력이 난무하며 동물들 살상을 일삼았다. 인간은 경쟁적으로 만든 정교한 작품들을 숭배하며 우상숭배로 전락하였다. 이렇게 하여 창조의 본래 목적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묵과하실 수 없는 상태로 치달은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시기로 결심했다(창 6:7). 하나님의 영께서 계속적으로 죄악을 자행하는 인류에를 깨우치시고 돌이키는 일을 하실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아의 홍수는 타락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었다.
다른 측면은 노아를 통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구원의 은총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의인 노아를 통하여 새롭게 출발하시고자 은혜로운 결단을 내리셨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선지자로 부르시어 도래하는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구원의 메시지를 예언케 하셨다. 하나님께서 먼저 방주를 만들게 하셨다는 것은 당대의 인간들을 구원코자 하는 은혜를 베푸셨다는 뜻이다. 방주는 구원과 보호의 수단이었다. 방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을 믿고 헌신한다면 인간의 생존의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심판적 측면과 긍정적 은혜스러운 보존 구도가 교차구도에 잘 나타나 있다.
A 지면 파멸 (6:7)
B 하나님과 동행한 온전한 의인 노아 보존 (6:8-10)
A1 땅의 부패 (6:11-12)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의인이었다(7;1). 그의 의는 자기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의이었다. 그의 의는 또한 그가 살고 있던 “세대에서” 의로운 점으로 보아 상대적인 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전면적 심판을 종말론적인 심판 도래의 표본으로 삼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재림 직전 이 땅의 사람들이 죄악으로 멸망하여 버린 노아시대의 사람들처럼 주님의 심판의 경고를 조소하며, 무관심할 것임을 경고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人子의 臨함도 그러하리라 38 洪水 前에 노아가 方舟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媤집 가고 있으면서 39 洪水가 나서 그들을 다 滅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人子의 臨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 3-7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末世에 嘲弄하는 者들이 와서 自己의 情慾을 따라 行하며 嘲弄하여 4 이르되 主께서 降臨하신다는 約束이 어디 있느냐 祖上들이 잔 後로부터 萬物이 처음 創造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成立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世上은 물이 넘침으로 滅亡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同一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爲하여 保護하신 바 되어 敬虔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審判과 滅亡의 날까지 保存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3-7).
이렇게 노아의 홍수는 불의한 자들의 죄를 심판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한 자를 구원하시는 말세의 심판의 표본이 되어 마지막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과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당대 인간들의 신관 및 자연관
노아 당대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공언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우상들을 신의 대표물이며, 그것들을 통하여 백성이 거룩하신 존재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노아의 설교를 앞장서서 거절한 자들은 바로 이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물질적인 것으로 나타내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세를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이나 그분의 요구들의 신성하고 불변적인 성질을 깨닫지 못하였다.
죄가 보편화됨에 따라 죄가 죄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은 더 이상 구속력이 없으며, 죄를 처벌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배치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의 심판이 지상에 임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였다. 그 세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였더라면, 그들은 그분의 종의 경고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빛을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너무도 어둡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진정으로 노아의 기별이 기만이라고 믿었다.
군중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그분의 율법에 일제히 반대하였으며, 노아를 광신자로 간주하였다. 사단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는 말을 반복하여 이 시대에도 사용하였다. 홍수 직전에 세속적이며 영광을 받은 위인들과 현인들도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협은 겁을 주려는 것뿐이며 결코 실제로 이행되지 않을 것이다. 놀랄 필요가 없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의한 세계의 파멸과 그분이 창조하신 존재에 대한 처벌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노아는 무모한 광신자다”라고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현혹당한 그 노인의 어리석음을 놀려 댔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마음을 겸비하게 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아무 경고도 받지 않은 것처럼 불순종과 사악함을 계속하였다.
홍수 이전 세상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자연 법칙은 변한 적이 없었다고 판단을 내렸다. 계절의 순환은 그 순서대로 이르러 왔었다. 지금까지 비가 내린 적은 결코 없었으며, 땅은 안개나 이슬로 물 공급을 받았다. 강들은 아직까지 그들의 경계선을 넘어 범람한 적이 없었고, 강물을 안전하게 바다까지 날랐다. 고정된 하나님의 명령은 물이 제방을 넘어 범람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논자(論者)들은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한”(욥 38:11)다고 말씀하시며 물들을 멈추게 하신 그분의 손길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당대의 사람들은 자연계는 자연계를 만드신 하나님 위에 있으며, 자연 법칙은 매우 확고하게 확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것들을 변경시키실 수 없다고 추론하였다. 노아의 기별이 옳다면, 자연은 그 궤도에서 이탈한 것이 될 것이라고 추론하면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노아의 기별을 일종의 기만 곧 일대 망상(一大妄想)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인간의 도덕적 타락과 부절제
자연계에 특별한 변화없이 시간이 흘러가자, 심판 박두 메시지 선포에 한 때 공포로 떨었던 자들이 안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추론하듯이 그들은 경고를 받기 전과 똑같이 행동함으로써 하나님의 경고에 대한 그들의 멸시를 나타냈다. 그들은 연락(宴樂)과 폭식의 잔치를 계속 열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색욕의 노예가 되었다. 그들은 심고 지으며, 장래에 얻기를 바라는 이득 추구에 관한 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추진하였다. 그들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더 한층 사악하게 행동하였고 하나님의 율법을 더욱더 도전적인 태도로 무시하였다. 그들은 노아가 말한 것에 조금이라도 참된 것이 있다면 세상에서 명성이 높은 사람들-현명한 이들, 사려 깊은 이들, 위인들-이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홍수전 사람들이 그 경고를 믿고 그들의 악한 행실을 회개하였더라면, 주께서 후세에 니느웨에서 행하신 것처럼 그분의 진노를 돌이키셨을 것이었다. 그러나 양심의 견책과 하나님의 예언자의 경고를 완강히 거절함으로 그 세대 사람들은 그들의 죄악의 잔을 채웠고, 멸망의 때는 무르익었다.
홍수의 범위
하나님께서 패괴와 강포가 가득한 땅 어느 일부만 심판하는 부분적 심판이 아닌 전면적 홍수를 통한 전면적 심판을 하셨다. 그리고 온 지구를 다 포괄하는 심판을 하신 것이다. 동물의 세계도 이 심판의 범주에 들어갔다.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 (창 6:7)',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창 6:17),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호흡을 기식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 (창7:21-23).
방주 제작
하나님께서는 타락과 부패가 만연한 세상을 돌이키게 하시려고 에녹, 므두셀라, 노아 등 셋 계열의 여러 부조들을 통하여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경고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120년 전에 노아에게 당신의 계획을 나타내 보이시며 방주 건축을 지시하셨다. 자애로우신 하나님께서는 120년 기간이라는 은혜의 기간을 주시므로 전 인류의 멸망을 막고자 하신 것이다. 경건한 에녹이 홍수에 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그의 아들 므두셀라와 그 아들들이 방주 건축에 조력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증거하였다. 당대 인간들은 경고의 이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잘 활용하여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의 사이즈와 세부사항들을 정확하게 알리셨다. 인간의 지혜로는 그토록 견고한 큰 선체를 고안해 낼 수 없었다. 하나님은 설계자이시고 노아는 건축가이었다. 성막과 방주의 구체적 설계 평행성이 독특하게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Westermann, Doukhan). 문은 옆에 하나밖에 없었다. 광선은 위에서 들어오게 하고, 여러 방도 다 빛이 들어오도록 만들어졌다.
방주(tebah)의 길이가 135m(300규빗), 너비가 22m(50규빗), 높이가 13m(30규빗)가 되는 물위에 뜰 수 있는 성소 모양을 생각나게 하는 3층 구조이었다(6:15-16). 인간과 동물들 승선 보호용도로 건축된 것이다. 이것은 배수량 약 2만 톤, 용적이 약 1만 4천 톤 크기이다.
방주를 건축하는 데 사용된 목재는 수백년 동안 부패하지 않는 일종의 삼나무나 산다릅나무였다. 이 굉장한 건조물의 건축 공정(工程)은 느리고 힘들었다. 나무들의 엄청난 크기와 그 재목의 특성 때문에 더 강한 체력을 가졌던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지금보다 목재를 준비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었다. 그 공사를 완전히 하기 위하여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지만 그 방주 자체만으로는 지상에 임할 큰 폭풍우를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만 맹렬한 물결 위에서 그분의 종들을 보전하실 수 있으셨다.
건축 목제 재료는 고페르 나무이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爲하여 方舟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瀝靑을 그 안팎에 칠하라”(6:14). 히브리어 고페르(goper)는 고대 수메르어 기파루(giparu)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고페르 나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NKJV에는 “gopher wood”번역). 고대 애굽인들은 큰 선박들을 삼(杉)나무로 건조했기 때문에 주석가들은 고페르(goper)가 삼나무나 히말라야 삼목(杉木)과 같은 침엽수 목재였을 것이라고 암시하였다. 그 수지 성분은 그런 용도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엘렌 G. 화잇은 노아가 사용한 목재는 삼나무였다고 진술한다(부조와 선지자, 95).
하나님께서는 “역청(kopher)을 그 안팎에 칠하라”(6:14)는 명령을 내리셨다. 나무의 진액 “kopher”는 카파르(H3722)에서 유래했다. 구약성경에서 17회 나오는 이 단어는 '몸값, 속전, 뇌물'의 뜻을 지녔다. 역청의 구속적 의미 즉, “생명의 값”이 돋보인다.
노아의 이 방주 건축은 그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구원선 역할을 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警告하심을 받아 敬畏함으로 方舟를 準備하여 그 집을 救援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世上을 定罪하고 믿음을 따르는 義의 相續者가 되었느니라”(히 11:7).노아는 자기 모든 소유를 이 방주 준비에 투자하였다.
방주 건축 전도와 신앙
노아가 마른 땅 위에 저 굉장한 배를 짓기 시작하였을 때에 많은 군중은 사방에서 그 이상스러운 광경을 보려고 또 그 비범한 설교자의 진지하고 열렬한 말을 들으려고 왔다. 그가 방주를 건축하는 망치 소리는 하나님의 경고의 기별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경고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들은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기 죄를 버릴 마음이 없었다. 홍수가 이르기 전 지나간 기간 동안에 그들의 믿음은 시험을 당하였으며, 그들은 그 시험을 견디지 못하였다. 널리 퍼진 불신에 압도되어 마침내 그들은 먼저 사귀던 동료들과 합세하여 엄숙한 기별을 거절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깊은 감명을 받고 경고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였으나 희롱과 조소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저들도 같은 정신에 감염되어, 얼마 안 있어 은혜의 초청을 거부하고 가장 담대하고 무례한 조소자들의 무리에 가담하였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한 때 빛을 받았었지만 죄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저항해 온 자들만큼 무모하며 그처럼 깊이 죄에 빠지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아는 폭풍우 가운데 반석같이 굳게 섰다. 대중의 멸시와 조롱에 둘러싸인 그는 거룩한 성실과 확고부동한 충성을 나타냈다. 그의 말은 그분의 종을 통하여 사람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능력이 있었다. 120년간 그의 엄숙한 음성이 인간의 지혜로 판단해 볼 때 불가능한 사건들에 관하여 저 세대의 사람들의 귀를 울리고 있는 동안, 하나님과의 연결이 그를 무한하신 능력 안에서 강하게 만들었다.
노아의 경고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거절을 당하였지만 그의 감화와 모본이 그의 가족에게는 복된 결과를 가져왔다. 그의 충성과 성실의 보상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가족들을 그와 함께 구원하셨다. 부모의 성실에 대한 이 얼마나 큰 격려인가!
노아 홍수 연대
성경에는 홍수 연대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홍수가 시작됐다. 학자들은 홍수 연대를 추산하는 일을 고대 연대 중 신뢰할만한 연대를 기점으로 역산해 가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J. Osgood은 노아 홍수 발생에 관한 연대기적 계산에서 재림교회 신학자 에드윈 틸리(Edwin Thiele) 교수의 ‘히브리 왕들의 신비로운 숫자들(The 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 에 걸고리를 두고 부조들의 연대 계산을 역산하여 홍수가 BC 2304 ± 11년에 일어난 것으로 제시하였다(출처: Creation 4(1):10~13, March 1981; 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3563.asp; 번역자 : 한동대학교 창조과학연구소).
홍수 기간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면 홍수의 시작은 노아가 600세 되던 해의 2월17일이었고 홍수가 완전히 끝나고 가족 및 동물들과 함께 방주 바깥으로 나와 땅을 밟을 때는 그의 나이 601세 되던 2월27이었다. 이처럼 대홍수의 전체 기간은 370일이었다. 그런데 노아가 홍수 7일 전 방주 속으로 대피하였으므로 노아가 방주 속에 머문 전체 기간은 377일이다. 이 기간은 윤달 여부가 표시 되지 않은 계산이다. 홍수 기간 동안의 방주 일지(日誌)는 다음과 같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감(7:4, 7, 10) 600년 2월 10일 홍수가 시작됨(7:11) 600년 2월 17일비 오고 물 넘침(첫 40일)(7:4, 12, 17) 600년 3월 27일“물이…창일”함(후의 110일)(7:24) 600년 7월 17일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묾(8:4) 600년 7월 17일산이 보임(8:5) 600년 10월 1일까마귀를 내보냄(40일 후)(8:6) 600년 11월 11일비둘기를 내보냄(첫 번째)(8:8; PP 105) 600년 11월 18일비둘기를 내보냄(두 번째)(8:10) 600년 11월 25일비둘기를 내보냄(세 번째)(8:12) 600년 12월 2일방주 뚜껑을 제거함; 물이 마름(8:13) 601년 1월 1일노아가 방주를 떠남(8:14~16) 601년 2월 27일
은혜의 기간 도과
그들의 은혜의 기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노아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교훈들을 충실히 실행했다. 방주는 주께서 지시하신 대로 각 부분이 완성되었고 사람과 짐승을 위한 양식도 저장되었다. 이제 하나님의 종은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엄숙한 호소를 하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절한 열망을 가지고 그는 찾을 수 있는 동안에 피난처를 구하도록 그들에게 간청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그들은 그의 말을 배척하고 농담과 조소의 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조롱하던 군중이 침묵에 휩싸였다. 각종 짐승, 가장 사나운 짐승에서 온순한 짐승뿐 아니라 야수들에 이르기까지 각종 짐승들이 산과 숲에서 나와 조용히 방주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급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사방에서 새들이 날아 들어오는데, 그들의 수효는 하늘이 어두워질 정도였으며 질서 정연하게 방주로 들어갔다. 동물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반면에 사람들은 불순종하였다. 거룩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가고”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씩 들어갔다. 세상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어떤 사람들은 무서움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 예사롭지 않은 사건을 설명하도록 철학자들을 불렀지만 헛수고였다. 이것은 그들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빛을 계속적으로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아주 강퍅해졌기 때문에, 이러한 광경도 그들에게 순간적인 인상밖에 줄 수 없었다. 태양이 여전히 영광스럽게 빛나고, 땅이 거의 에덴의 아름다움으로 옷 입은 것을 보았을 때에, 이 멸망 받을 운명에 처한 사람들은 소란한 환락으로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두려움을 없애버렸고, 그들의 난폭한 행위로 이미 일깨워진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자신들에게 불러들이는 것같이 보였다.
홍수 경과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짐승을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방주에 들어가게 하므로(7:2-3) 모든 동물들을 종류를 망라케 하시면서 정결한 동물을 더 많이 들어가게 하신 것은 홍수 기간 중 식용과 홍수 후 제물용으로 하시기 위함이었다.
여호와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7:16).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간 후 7일 동안 폭풍우가 올 아무런 징조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저들의 믿음은 시험을 당하였다.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승리의 때이었다. 분명한 지체는, 노아의 기별은 기만이었고 홍수는 결코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그들의 신념을 더욱 굳게 해 주었다. 짐승들과 새들이 방주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천사가 문을 닫은 그 엄숙한 광경을 목격하고도 그들은 여전히 농담을 하면서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기를 계속하였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능력의 그 놀라운 표현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떼를 지어 방주 주위에 모여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비웃고 대담하게도 전에 없던 난폭한 행위를 감행하였다.
그러나 여덟째 날에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었다. 눈부신 섬광이 나타나고, 번개보다 더 환한 영광의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방주 문 앞에 떠돌았다.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닫을 수 없는 육중한 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천천히 닫혔다. 노아는 방주 안에 들어가 있었고, 하나님의 긍휼을 거절한 자들은 닫힌 방주 밖에 있었다. 하늘의 인(印)이 그 문에 찍혔다. 이는 어떤 강한 파도가 몰려와도 물이 셀 수 없도록 하는 하늘의 조치이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닫으셨으며, 하나님께서만 그것을 여실 수 있었다. 그와 같이 하늘 구름을 타시고 오시기 전,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한 그분의 중보를 그치실 때에 자비의 문은 닫힐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더 이상 악인들을 제어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해 온 자들은 사단에게 완전히 지배될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는 인간의 운명이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에 매달린 존재라는 은혜로운 뜻이 담겨 있다.
홍수의 첫 단계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40주야 동안 계속되었다(7:17). 백성들은 그들이 만든 것들이 파괴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들의 화려한 가옥과 아름다운 정원과 우상을 세워두었던 삼림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로 인하여 파괴되고, 그 파편들이 멀리 그리고 넓게 널려 있었다. 사람을 제물로 드려오던 제단들은 파괴되고, 그 숭배자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에 떨며, 그들의 부패와 우상숭배가 그들의 멸망을 초래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폭풍우가 점점 더 거세지자 수목, 건물, 바위, 흙이 사방으로 날아가 흩어졌다. 사람과 짐승의 두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폭풍우의 노호(怒號)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했던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요동하는 자연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단 자신도 자기의 생명을 염려하였다. 그는 당시 매우 강했던 인류를 자기의 뜻대로 조종하는 데서 기쁨을 느꼈었고, 그들이 그들의 가증한 행위들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고 하늘의 통치자에 대하여 반역을 계속하게 하고자 갈망해 왔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을 저주하고 그분이 불공평하며 잔인하다고 비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단과 함께 하나님을 모독하였고, 그들이 그럴 능력만 있었더라면 그분을 권능의 보좌에서 끌어내렸을 것이다. 미칠 듯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방주를 향하여 손을 뻗치며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애원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양심이 각성되어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분께 열렬하게 구원을 호소하였으나 그분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셨다. 그 무서운 시간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이 그들의 멸망을 초래했다는 것을 알았다.
범람해 가는 물이 많아지고, 방주가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방주가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다. 물이 7m가 더 불어났다 (7:17-20). 이 성경의 묘사는 범람하는 물의 강도가 더욱 세차게 나타난 힘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생물이 다 죽었다. 하나님의 주권과 제어가 반복되는 표현 ‘쓸어버림“(7:23)을 통하여 나타났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백성 노아 가족은 살아남았다. 파멸과 구원 모두가 하나님의 조치이었다. 물에 잠긴 상태가 150일 동안 지속되었다(7:24).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기억하셨다(8:1). 이 기억(zakar)은 그동안 망각했다는 뜻이 아닌, 자기 백성을 향한 구원의 약속, 즉 언약적 축복을 베푸신다는 의미가 담겼다. 기억해야 할 안식일이 창조하신 일을 마칠 때 이른 것처럼, 물이 불어나는 일의 끝에도 이 기억이란 말이 나온다.
홍수 기간동안 7일이란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 점은 노아 가족은 홍수기간 내내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켰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8:4, 10; 8:10, 12).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일에 이어서 바람(을 불게하심으로 물이 줄기 시작했다(8:1-6). 창조 때 하나님의 ruakh(영)가 수면에 운행하신 일과 평행적이다. 그 결과 물과 뭍의 분리가 일어났다. 방주는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아라랏 山에 머물렀다(nuakh, rested)(8: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은 히브리 연례 절기인 장막절 마지막 감사와 기쁨의 축제날과 일치한다(레 23:34). 노아(noakh)가 nuakh(안식)한 것이다.
아라랏산이 복수형이므로 그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아라랏 지역의 어느 부분을 가리킨 것인지 불확실하지만, 그곳이 아르메니아의 산악 지대를 뜻한다는 데에는 모든 성경 주석가들이 동의한다. 노아 방주의 잔해가 발견되었다는 소문들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그 위치는 현대 아라랏산이며, 그 산은 두 봉우리가 있는데, 그 높이가 하나는 5,164미터이고, 다른 하나는 3,745미터이다. 페르시아인들 사이에서 이 쌍둥이 봉우리는 코-이-누(Koh-i-nuh), 곧 “노아의 산”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는 물이 줄어들 때 방주가 머물기에 적합한 장소, 곧 거기로부터 홍수의 생존자들이 온 땅으로 퍼져 나갔을 만한 장소가 있다(7:24). 중요한 것은 방주가 머문 곳이 아니고, 이 사건이 역사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 있다.
물이 점점 줄어들어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두 달 반 동안 물이 점차 감소되었다. 산봉우리들이 나타난 지 40일 후에, 노아는 물이 어느 정도 말랐는지, 방주를 떠나도 안전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물이 줄어들자 방주는 풍랑으로부터 안전한 자리를 찾아 높은 산지의 은신처에 안착했다. 그런 위치에서는 낮은 골짜기의 물이 어느 정도 빠져나갔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노아는 까마귀 한 마리를 내보내 그것의 행동을 보고 땅의 상태를 알고자 했다. 안식처를 찾지 못한 까마귀는 수면 위를 날아다니다가 여러 번 방주로 돌아오곤 했다(부조와 선지자, 105).
노아가 또 다른 시험을 해 보기 전에 며칠을 기다렸는지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또 칠 일을 기다려”(8:10)라는 표현은 첫 번째 기다렸던 기간도 같은 기간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일주일 후에 그 비둘기가 온종일 밖에서 머물다가, 분명히 홍수 가운데서도 생존한 감람나무 잎을 물고 돌아왔다. 노아는 감람나무 잎사귀를 땅이 거의 마른 증거로 인식했고, 곧 방주를 떠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에는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고, 그것은 방주 밖에 머물도록 허용해도 좋을 만큼 충분한 여건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침묵하시는 동안 끈기 있게 기다려야 했다.
노아가 스스로 조사해 볼 때가 되었다고 느낀 후에도, 얼마 동안 더 기다렸다. 방주의 지붕에 있는 격자 창문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으므로 그는 지붕의 일부를 제쳤다(8:13). “뚜껑”에 해당하는 믹세(mikseh)는 구약에서 성막의 웃덮개(출 26:14)와 성소의 기구들을 운반할 때 사용하던 가죽 덮개(민 4:10~12)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이 덮개들이 가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방주의 덮개도 가죽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6:16 참조).
노아에게는 땅이 충분히 마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방주 문을 닫았고, 노아는 자기가 언제 나가야 할지에 관해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렸다. 물이 완전히 말라서 그가 원하던 대로 하나님이 허락을 해 주기까지 그는 꼬박 57일을 더 기다렸다.
하늘로부터 한 천사가 내려와, 1년 전에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닫았던 그 문을 활짝 열었고, 노아와 그 식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8:15). 짐승들도 노아의 모본을 따라 종류대로 질서 있게 방주를 떠났다(8:19). 노아의 충성스러운 순종이 돋보인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한 첫 번째 일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올리는 일이었다. 이 때 그는 정결한 짐승과 새로 번제('olah)를 드렸다(8:20). 번제의 기본적인 의미는 용서를 구하는 속죄제와 구원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에 있다.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흠향하신 후 땅을 보존하시는 은혜를 나타내셨다(18:21). 香(nikhoakh)은 “휴식하다,” “쉬다”에서 유래했으며, '진정시킴, 달램, 기쁘게 함, 평온케 함'을 의미한다. 노아는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위로했다. 하나님의 마음과 노아의 마음은 상응한 것이다. 땅에 대한 대홍수 같은 저주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선언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에 불법이 닻을 내리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구출하는 일을 선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의 땅에 계절의 변화가 몰아쳐 오겠지만 그 너머에 있는 영원한 소망의 나라를 내다보게 하신다.
홍수로 야기된 지질학적 격변 실상
"그 때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창 7:11)렸다. 물은 구름 가운데서 큰 폭포들을 이루어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강들은 범람하여 골짜기로 넘쳐 흘렀다. 형언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땅에서 물이 솟구쳐 나왔으며, 큰 바위들은 수백피트 공중으로 높이 치솟았다가 떨어지면서 땅속 깊이 묻혔다"(PP 99).
“홍수 때에 땅의 표면은 전부 변하였다. 죄악의 결과로 세 번째 무서운 저주가 지상에 임하였다. 물이 줄어지기 시작하자 산들과 언덕들은 흙탕물의 대해(大海)로 둘러싸였다. 도처에 사람들과 짐승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주께서는 이 시체들이 그대로 남아서 부패하여 대기를 오염시키도록 버려두지 않으시고 흙으로 큰 매장지를 만드셨다. 물을 말리기 위해 그분께서 일으킨 강풍은 큰 힘으로 그 시체들을 옮겼는데, 때로는 산봉우리까지 옮겨 시체 위에 나무와 바위와 흙을 쌓아올렸다. 홍수 전 세상을 부요하게 장식하였으며, 그 당시의 거민들이 우상화했던 금과 은, 귀중한 목재들과 보석들이 같은 방법으로 땅속에 매몰되어 사람들의 시야에서 감추어졌는데, 맹렬한 물결이 이 보물들 위에 흙과 바위를 쌓아올리고, 어떤 곳에서는 그것들 위에 산을 쌓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죄 많은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시고 번영하게 하시면 하실수록 그들이 그분 앞에서 더 부패하게 되리라는 것을 보셨다.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인도했어야 할 보물들이 숭배의 대상이 되어 왔었던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수치와 멸시를 받아 오셨다.
드러난 땅의 모습은 묘사할 수 없을 만큼 어지럽고 황폐하였다. 한때 그처럼 완전한 균형미를 가지고 있어서 아름다웠던 산들은 파괴되고 불규칙하게 되었다. 돌멩이, 울퉁불퉁한 바위와 부서진 돌덩이들이 그 때 땅 표면에 흩어졌다. 여러 곳에서 언덕과 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평지였던 곳에 산맥이 생겼다. 어떤 곳은 다른 곳보다 이런 변화가 더 심하였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많은 금, 은과 보석이 있었던 곳에 가장 중한 저주의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지방과 죄들이 아주 적었던 곳에는 저주가 가볍게 내렸다.
이 때에 광대한 삼림들이 땅에 매장되었다. 이것들은 그 때부터 석탄으로 변하였는데, 지금 있는 광대한 석탄층을 형성하였고 또 다량의 기름을 산출하였다. 석탄과 기름이 때때로 인화하여 지표면 아래서 탄다. 그리하여 바위들이 뜨거워지고 석회석이 타며 철광석이 용해된다. 물이 석회석에 미치는 작용이 고열에 맹위를 더하여 지진, 화산과 분화(噴火)의 원인이 된다. 불과 물이 암석과 광석의 광맥들과 접촉할 때에 지하에서 큰 폭발과 함께 둔화된 뇌성 같은 소리가 난다. 공기는 뜨겁고 사람의 숨을 막는다. 화산의 분출이 따른다. 그리고 때때로 화산의 분출이 가열된 물체들이 뚫고 나갈 충분한 분출구를 만들어주지 못할 때도 있다. 이 때에는 지구 자체가 진동하고 땅이 바다의 물결처럼 융기하고 부풀어 오르고, 큰 균열이 생겨서 때때로 도시와 촌락과 불타는 산들이 삼켜 버린바 된다. 이런 놀라운 현상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 직전에 세상의 신속한 멸망의 징조로써, 차츰 더 빈번히 발생할 것이며 더욱더 가공할 파괴력을 행사할 것이다.
땅의 깊은 곳은 주의 병기고인데, 고대 세계의 멸망에 사용되었던 무기들은 이 곳에서 나왔다. 땅에서 솟구쳐 나온 물은 하늘에서 내린 물과 합하여 멸망시키는 일을 성취하였다. 홍수 이래로 물뿐만 아니라 불도 사악한 도시들을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이 심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경시하고 그분의 권위를 짓밟는 자들로 그분의 능력 앞에서 떨게 하며 당신의 공의로운 주권을 인정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다. 화염을 내뿜는 불타는 산들을 볼 때 그리고 용해된 광석들이 급류를 이루어 강들을 말리며,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들을 덮치고, 도처에 파멸과 황폐를 가져오는 것을 볼 때,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도 공포에 싸였고 불신자들과 하나님을 모독해 온 자들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광경에 관하여 옛 선지자들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대적으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의 생각 밖에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사 64:1-3)나이다. “여호와의 길은 회리 바람과 강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로다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우시며 모든 강을 말리우시나니”(나 1:3-4). “(PP 108-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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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세계적 홍수 증거
노아의 홍수는 범세계적인 홍수이었다. 성경 기사 그 자체가 전 세계적 홍수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지구 표면에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과 증거물들이 이런 범세계적 홍수를 증거하고 있다. 창조과학회가 제시한 노아의 홍수가 전 세계적 홍수였음을 증거하는 것들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성경적 증거
1) 노아홍수의 크기와 기간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홍수로 인하여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으며, 홍수가 1년 이상 지속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2)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거대한 방주를 지을 필요가 없다. 방주의 규모는 한 지역에 분포된 동물만을 싣기에는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만일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의 식구들과 동물들은 고산지대로 피하든지 이웃지역으로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거대한 용량을 가진 큰 방주를 120년에 걸쳐 축조한 이유가 없다.
3)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모든 동물을 방주에 태울 필요가 없다. 다른 지역에 사는 같은 종의 동물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종류대로 동물들을 태울 필요가 없다. 그리고 노아가 사는 중동지역에서만 사는 동물이 있어 구해내야 한다면 방주가 너무 크다.
4)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새들을 태울 필요가 없다. 홍수 시 새들은 다른 지역의 산으로 날아가면 된다. 굳이 방주에 탈 필요가 없다.
5) 예수님과 사도들의 증언이 있다. 베드로(벧후 2:5, 3:6)와 바울(히11:7)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노아의 대홍수가 온 인류를 멸망시켰다고 증언하셨다 (눅17:26~30).
6)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홍수를 겪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았다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어긋나며, 장차 예수님의 재림 시 심판을 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7)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하나님이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실 필요가 없다.
2. 지질 지형학적 증거
1) 지구 표면 중 75%이상이 물에 의해 만들어진 퇴적지층이다.
2) 세계 도처의 고산지대에 바닷물호수인 염호가 존재한다.
3) 먼 거리까지 운반된 퇴적물들이 있다. 퇴적층 넓이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퇴적물질의 성분은 매우 균일하다.
4) 퇴적층 경계면은 거의 평행의 층리현상을 보이며, 전혀 풍화나 침식 흔적이 발 견되지 않는다. 암석 지층들 사이에 빠른 침식의 증거를 발견하거나, 전혀 침식의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5) 오랜 침식에도 부정합 지층의 경계면은 너무도 깨끗하다.
6) 부서짐 없이 일률적으로 휘어지고 뒤틀려진 퇴적지층들이 발견된다.
7) 지향사(地向斜) 구조가 존재하는 등 지구지각에 엄청난 격변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8) 바닷물이 대륙들 위로 침범했음을 가리키는, 해수면 보다 높은 곳에 있는 바다생물들의 화석들, 예컨대, 히말라야나 알프스 같은 높은 산맥에 조개류, 물고기류, 해초류 등의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된다.
9) 아라랏산 4200m 부근에는 용암이 물에 급격히 식을 때 만들어지는 베게용암이 발견된다.
10) 엄청난 화산들이 과거에 폭발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11) 광대한 지역에 걸쳐 확장되어있는 급속하게 퇴적된 퇴적지층들이 있다. 예를 들면 그랜드 캐년의 타핏 사암층(Tapeats Sandstone)과 레드월 석회암층(Redwall Limestone)은 미국 전역과 캐나다에까지 이르고 있다.
12) 광범위한 지역의 한 물질로만 구성된 사암층과 역암층은 거대한 홍수가 있었음을 증거한다.
13) 강과 계곡들은 과거에 엄청난 물이 흘렀던 수로들을 가지고 있다.
14) 파도나 물의 작용에 의한 층면 구조들이 존재한다.
15) 지표면에 수억년된 고평원들이 오랜 세월의 침식에도 평탄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16) 과거에는 해수면이 훨씬 낮았다는 증거들이 있다.
17) 과거에 엄청난 바닷물이 증발한 흔적들(Salt Dome 등)이 남아 있다.
18) 대양바닥에 물에 의해 침식된 모습의 해저캐년(submarine canyons)이 존재한다.
19) 대양 속에서 길이 74,000km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해저산맥(해령)이 발견되었다.
20) 대양의 해저산맥은 로키, 안데스, 히말라야, 애팔래치아 산맥들과 평행하게 달리고 있다.
21) 영구 동토지역에서 발견되는 매머드 사체는 지구에 대격변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22) 시베리아 1200m의 깊이에, 알래스카 300m깊이에, 푸르드호만 570m 깊이에 엄청난 양의 나뭇잎, 소나무, 야자수나무 등 고대 숲이 발견되었다.
23) 최근 화산폭발 지역에서 하루에 7.5m의 지층과, 1~2년에 120m의 지층이 생성되는 것이 관찰됐다.
24) 그랜드캐년도 대홍수에 의한 격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증거들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25) 지구 육지 표면의 80~85%는 진화론적인 순서대로의 3개의 연속적 지층을 가지고 있지 않다.
26) 오래된 지층이 젊은 지층위에서 발견되는 곳이 지구상에 500 여 지역이 넘는다.
27) 세 개 지층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즉 공중에서 뒤집혀야만 설명이 가능한 충상단층이 발견되고 있다.
28) 루이스 충상단층은 길이 217 km, 폭 24km, 두께 4.8km의 덩어리가, 거대한 애팔래치아 산맥은 250km를, 마테호른산은 48~97 km를, 미텐산은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서 젊은 지층위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이동한 흔적이 없다.
3. 화석학적 증거
1) 오늘날에는 만들어지지 않는 화석이 엄청난 양으로 발견된다.
2) 대부분의 화석이 급격히 매몰된 동.식물들 양상을 가지고 나타난다.
3) 열대, 한대, 건조지역의 동식물화석이 무더기로 함께 쌓여있는 화석무덤들이 발 견된다.
4) 동물과 식물의 화석이 분리된 채 발견된다.
5) 수십만년이 걸렸다는 지층을 수직으로 뚫고 서있는 다지층나무 화석들이 발견 된다.
6) 발자국, 빗방울자국, 물결자국, 벌레가 기어간 자국 등 순간적인 흔적들이 남아 있다.
7) 수 억 년 된 고생대 지층에는 오늘날 볼 수 있는 생물들이 똑같이 화석으로 발 견되며, 어떤 것들은 살아서 발견되고 있다.
8) 완벽한 장기를 가진 동물들이 갑자기 출현한다.
9) 식물들의 화석은 너무도 갑자기 출현한다.
10) 지질연대와 맞지 않는 화석들이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
11) 수억년된 화석에 분해되기 쉬운 아미노산, 단백질, DNA가 남아있다.
12) 발견된 화석의 95%가 바다생물 화석이다.
13) 발견된 곤충목의 1,263개 과(families)의 화석을 조사한 결과 84%가 1억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아있던 형태와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14) 몸이 발견되는 지층의 수천만년 아래 지층에 발자국만 남겨 놓는 이상한 현상이 발견된다.
15) 그랜드캐년의 코코니노 사암층에는 여러 동물의 발자국이 경사가 높은 북쪽으로만 나있다.
16) 나우틸로이드(Nautiloid) 캐년의 레드월(Redwall) 석회암층의 오징어 화석들은 대부분 태평양쪽을 향하여 죽어있다.
17) 수억, 수천만년전 지층 깊은 곳에서 사람의 유물들이 나오고 있다.
18) 사람과 공룡이 동시대를 살았다는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19) 석탄이 매우 빠르게 형성되는 것이 발견되었다.
20) 화석의 광물화가 불과 수십년만에 이루어짐이 발견되었다.
4. 역사적 증거
1) 모든 고대문명의 역사에서 홍수에 대한 전설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뉴질랜드 마오리족, 호주 원주민 등에는 홍수 전설이 내려오고 있고, 특히 니느웨에서 발견된 바벨론의 길가메쉬 서사시나 미국 미시간 주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인디언의 석판 등에는 노아의 홍수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2) 40일간에 내린 비에 의한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하류인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갔을 텐데, 방주는 강 상류인 북쪽에 있는 아라랏 산에 도착했다. 이는 강물에 의한 작은 홍수가 아니라, 바닷물의 육지 침범이 동반된 엄청난 홍수였음을 말해준다.
3) 노아의 후손들의 이름이 도시나 국가, 민족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4) 단군의 가르침을 기록한 민간전승의 규원사화나 중국 순황제때 상제께 드리는 제사문을 보면 기독교적인 신앙고백내용과 유사하다. '그분께서 하늘을 펴시고, 땅을 펴시고, 인간을 지으셨도다.', '하나님은 오직 한분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
5) 상형문자인 중국의 한자에 창세기와 홍수관련한 문자들이 남아 있다.
6)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역사도 약 6000년 전이고, 노아의 홍수는 대략 4350년 전이다.
7)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인의 상형문자로 5~6000년 전이다.
8) 고대 언어 발생은 5,000년 전을 넘지 못한다.
9) 최초의 도시형성 연대는 약 5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0) 농업을 시작한 시기를 5~6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1) 가축을 길러 이용한 시기를 5~6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2) 최초로 야금술은 5~6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3)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 수령은 대략 4,300년 전이다.
(창세기 관련 자료들은 필자와 관련된 교회 신도들을 위한 작은 모임에서 강론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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