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의 핵 영원한 복음
<LA삼육대학 수강생을 위한 2019학년도 봄학기 강의 보충 자료>
종말론의 핵 영원한 복음
I. 서론
재림교회의 종말론의 성경적 기초 자료 중 요한계시록 제12장, 제 13장 및 제 14장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14장은 그 핵이 된다.
“특별한 의미에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파수꾼이요 빛의 전달자로 세상에 세워졌다. 그들에게는 멸망해 가는 세상에 전할 마지막 경고가 위탁되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놀라운 빛이 비치고 있다. 가장 엄숙하고 중대한 사업,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는 사업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업은 없다. 다른 어떤 것도 그들의 주의를 빼앗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일찍이 인간에게 위탁된 가장 엄숙한 진리가 세상에 선포되도록 우리에게 맡겨졌다. 이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세상은 경고를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과업에 성실해야 한다. 그들은 공론에 빠져서는 안 되며, 불신자들과 사업을 같이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9증언, 19).
A, 요한계시록 제12장
요한계시록 12장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를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역사적 기간보다 더 광범위한 구약 4,000년, 신약 1800여 년의 역사적 기간을 포괄하는 독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 역사적 기간의 묘사에 있어서 초점은 루스벨의 타락으로부터 1798년까지의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과정에서 야기되는 사건들에 모아지고 있다. 5800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전개되는 대쟁투 역사를 순간 회상법(flash-back)을 채택하여 하나의 짧은 章에 담아내는 수사학적 문학기법으로 조명하면서 여자의 남은 자손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B. 요한계시록 제 13장
요한계시록 제 13장의 일반적인 특징은 19세기, 20세기 및 21세기에 걸친 사단의 대 반격을 묘사하고 있다. 이 산은 용과 바다짐승 및 땅의 짐승이라는 악마의 삼위일체적 세력 중 사단으로 표상되는 용이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에게 권세를 주며 땅에서 올라온 어린 양 같은 짐승은 용처럼 말하고, 바다짐승의 죽게 되었던 상처가 회복되어 막강한 권세를 세속 권력과 결탁, 행사한다.
C. 요한계시록 제14장
요한계시록 제14장의 일반적인 특징은 20-21세기 사단의 반격에 대한 하나님의 3중 응답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II. 현대진리 세 천사의 기별(영원한 복음) 개요
A. 요한계시록 14장의 구조
1. 144,000명의 특성(1-5절)- 짐승과 우상 및 짐승의 표에 순복하기를 거절하는 지상의 참된 개신교 남은 무리들 144,000명의 특성을 묘사하고 있다.
2. 세 천사의 기별 (6-12 절)
남은 무리들이 온 세상에 전파하여야 할 마지막 복음("a final gospel"--Monsignor Ronald Knox의 계 14:6 번역)으로 이 복음. 144,000은 이 복음으로 꼴 지어진 무리들이다. 이 메시지는 3중적이지만 하나로 묶여 있다.
① 첫째 천사기별: 이슈(The Issue)
② 둘째 천사 기별: 원수(The Enemy)
③ 셋째 천사 기별: 시험(The Test)
3. 삽입구적인 그리스도의 재림 전 특별부활 (13절)
4. 구름 타고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두 가지 추수(구원과 심판) (14-20절)
III. 첫째 천사의 기별(계 14:6-7) -- 이슈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1.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여기서 “천사”는 “Messenger"를 뜻하여 복음 전도의 사명을 받은 마지막 때 남은 무리 그리스도인들을 나타낸다. 하늘 사자의 순결성, 메시지 선포에 수반되는 영광 및 권능을 천사라는 말로 응축시키고 있다. 이는 14:1-5의 특성을 지닌 마지막 때 하나님 백성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복음 사업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위촉된 거룩한 사명이다.
2.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첫째 천사의 메시지 선포의 전 세계적 대상과 범위를 말하고 있다.
3.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이들의 메시지는 창세기 3:15 이래 전하여져 온 복음과 같은 “영원한 복음”이다. 인간 메신저들은 큰 음성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외친다. 이 영원한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갈 1:7), ”천국 복음“(마 24:14), ”구원의 복음“으로도 칭하여지고 있다.
4. “큰 음성으로”
남은 자손이 긴급하게 전 세계적으로 전해야 하는 전 세계적인 구원과 심판의 사명을 말하고 있다.
5.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전 12:1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순결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경건하게 여호와를 존경하고 경외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분을 무서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 속에 그분의 임재를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회심하여 용서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품성에 참여하여야 한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욥 1:8)를 맺은 사람은 그분께 대한 순종을 통하여 그 분의 거룩성에 참여하여야 한다.
요컨대,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다(참고 계 11:18, 19:5).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그분을 사랑하고(신 11:13, 마 22:37), 그분께 순종하며(신 5:29, 전 12:13), 그분의 성품(하나님의 형상 회복)을 반사하기를(창 22:12) 바라신다. 특히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계 14:7)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6.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2300년 예언의 끝 1844년 이래
여기서 말하는 심판은 재림에 앞서 시행되는 2300주야 예언기간의 끝에 있을 조사심판을 뜻한다. 이 심판의 목적은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지를(우리의 행실을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선택)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참고 고후 5:10). 이 심판이 마쳐지면 각자의 운명이 결정되고(계 22:11)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의 행위에 따른 상급을 가지고 오실 것이다(계 22:12).
영원한 복음에는 구원과 심판의 이중적 현현이 담겨 있다. 계시록 14장에서 말하는 심판은 복음의 일부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심판은 좋은 소식이다. 그것은 옹호, 구원, 자유, 영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그들이 마지막 심판의 기별을 수용함으로써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이상 나쁜 소식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당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 3:9).
7.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하나님을 창조주로 경배하도록 외쳐야 하는 것이다. 진화론이 창궐하는 시대에 창조주를 경외하므로 창조신앙을 회복하여야 한다. 이 창조 신앙의 표는 안식일은 경배에 있다. 참 하나님 경배의 기초는 안식일 예배에 있다.
(1) 출애굽기 20:11절에 대한 요한계시록 14:7의 배서
요한계시록과 14:7에는 출애굽기 20:11에 분명히 나와 있는 네 개의 축어적 평행 어구를 인유하고 있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본문이 출애굽기 20:11의 십계명의 넷째 계명의 명확한 인용이라는 점을 논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 첫 번째의 축자적 평행 구는 출애굽기 20:11절의 “만들고(made)”와 요한계시록 14:7절의 “만드신(made)”이라는 동사에서 나타난다. 그다음 세 개의 축자적 평행 어구는 두 본문 모두에 나오는 세 개의 구체적 명사(“하늘과 땅과 바다”)로 그 표기 순서까지도 동일하게 나온다. 주제적, 구조적 평행성과 더불어 이러한 현저한 축자적 평행성은 계시록14:7절이 출애굽기 20:11의 넷째 계명을 우연히 나타내는 것이 아닌, 우주발생(지구의 기원)의 명백한 인유로 구성되어있음을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첫째 천사의 메시지는 안식일 회복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2) 상징의 중요성과 안식일
삼손의 긴 머리카락 그 자체에 내재적인 힘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머리칼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상징이 되었다.
“삼손은 거룩한 부르심의 조건을 조금씩 깨뜨려 갔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참으셨으나 삼손이 그의 비밀을 누설할 만큼 죄악의 세력에 자신을 굴복하였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를 떠나셨다. 그의 긴 머리에 효능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의 증거일 뿐이었다. 그리고 정욕의 방종으로 그 상징을 잃었을 때에 그것이 나타내는 축복도 역시 몰수당하였다”(부조, 566).
만일에 삼손 편에 잘못이 없었더라면 비록 머리칼이 잘려 나갔다 하여도 그의 힘은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애의 과정을 통하여 자기 머리타래를 친히 잘라낸 것처럼 하나님의 은총과 권위를 멸시하고 경멸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가 자기의 어리석음의 결과를 감내하도록 내버려 두셨다(2BC 1007).
한 나라의 국기는 그 나라를 상징한다. 재림교회의 설교자들은 안식일을 천국을 상징하는 국기로 보아왔다. 이 안식일 천국국기는 자유, 충성, 및 사랑을 모두 한 패키지로 담아내고 있다.
(3) 대쟁투의 이슈(뗏장)가 되는 안식일
요한계시록 12-13-14장의 초점은 선과 악,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이다.
사단은 안식일 제도를 혐오하여 왔다. 그리스도께서 이 안식일 제도를 마련하였기 때문에 이 안식일에 대한 그의 혐오에는 그리스도의 높은 지위와 권능에 질투와 시기가 담겨져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율법의 핵심이 되며 그리스도의 권위를 나타낸다. 사단은 안식일이 특별 창조와 구속의 기념일이 된 것에 분노하여 이를 공격하여 왔으며 위조 안식일을 유도하여 낸 것이다.
사단은 인간을 혐오하여 왔다. 그는 인간 창조를 논의한 하늘 회의에 초청을 받지 못한 것에 분노하였다(EW 145; 3SG 36). 사단은 인간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생식력을 갖춘 것에 대하여 질시하였다. 천사들은 번식력이 없다. 이에 사단은 인간의 성적인 생식력에 집중적인 공격을 가하여 온 것이다.
(4) 안식일 준수-- 하나님께 향한 충성
창조질서에 속하는 안식일 제도는 창조의 기념일이 된다. 이 창조의 기념일은 지음을 받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충성하고 사랑의 경배를 하도록 고안되었다. 안식일은 또한 애급의 종살이에서 구원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신 5:15).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억압과 기속의 날로 변질시킨 안식일을 병자들을 회복시켜 질병과 질곡에서 자유케 하는 날로 삼으셨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진정한 목적을 회복시켰다.
시대의 소망 제 27장 “안식일”에서 엘렌 화잇은 안식일을 다음 네 가지 점에서 상징(symbol), 표징(sign), 내지 토큰(token)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① 인류의 창조주 및 재장조주로서의 그리스도의 권능의 표징(sign)
② 그리스도의 사랑의 징표
③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의 표징
④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의 한 부분이 된다는 표징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안식일은 마찬가지로 특별한 중요성을 지녔다. 이 안식일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충성을 시험하는 것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와 관련된 3중 이적은 이스라엘 충성을 연단하여 가는 충성 시험이 되었다.
“안식일 준비를 한 주일 내내 할 것이지만, 금요일은 특별한 예비일이 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이것은 시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지를 보기 원하셨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지시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성경은 완전한 지침서이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성경을 연구하면 이 문제에 있어서 오해할 소지가 없을 것이다.”(6증언, 354-355).
이런 점에서 안식일은 구원의 가늠자적 역할을 한다. “안식일을 주 앞에서 거룩히 지키는 것은 영원한 구원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삼상 2:30)리라”(6증언, 356).
IV. 둘째 천사의 메시지(계 14:8)--원수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계 14:8).
둘째 천사의 기별은 바벨론의 멸망과 배도를 선언하고 그것이 거짓 종교 체제임을 확인한다. 계시록 17:5에서 “바벨론은 음녀들 … 의 어미라고 불린다. 그러면 그 음녀의 딸들은 그 음녀의 교리와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그 음녀의 모본을 따라 세상과의 불법적 인연을 맺기 위하여 하나님의 진리와 그분께서 인정하시는 바를 희생하는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382~383).
1. 바벨론--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
요한계시록에 “바벨론”이라는 표현이 6회 나온다(14:8; 16:19; 17:5; 18:2, 10, 21). 6이라는 수자는 바벨론의 비밀의 한 부분이 된다. 성경은 7의 수를 강조하고 있다. 본문은 고대 바벨론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고대 바벨론은 이미 멸망당하여 폐허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의 바벨론은 당대와 미래의 어떤 세력을 상징, 표출하는 이미지이다.
니므롯이 건축한 고대 바벨론 도성(창 10:9, 10)은 역사적으로 첫 번째 조직적인 배도와 반역의 중심역할을 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여 바벨탑을 건축한 빗나간 역사는 바벨론이 거대한 배도의 이미지의 화신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창 11:1-9).
느부갓네살 왕은 번영의 절정에서 교만의 극치를 보여 주었으며 그 교만으로 인하여 나락으로 떨어지는 체험을 당하였다.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단 4:30-31).
요한계시록에는 지나간 날의 바벨론의 배도와 교만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고대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멸시켰으며 성전의 여러 성물들을 몰수하여 갔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들을 박해하며 포로로 잡아갔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하나님 백성과 진리의 원수가 된다.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모두 로마를 당대의 바벨론으로 보았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 5:13). Irenaeus, Tertullian 같은 교부들도 로마를 바벨론으로 칭하였다.
요한계시록 17장에는 바벨론을 자주 빛과 붉은 빛의 옷을 입은 음녀로 묘사하고 있다(17:4-7).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계 17:2). 세상을 지배하고 참 하나님 경배에 적대적인 바벨론 음녀는 교회와 국가의 연합을 획책하며 거짓 교리인 진노의 포도주로 만국을 기만하며 성도의 피에 취한다(17:6).
이 바벨론은 용, 바다짐승, 및 땅의 짐승으로 구성된 사단의 삼위로 마지막 때 전 세계적 종교 공동체를 대표한다.
마지막 시대의 바벨론은 로마가톨릭과 배도한 개신교를 포괄하는 거짓 종교 체제의 연합체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적대시하고 사탄을 섬기는 일에 헌신할 것이다(참고 계 13:11~18, 16:13, 17:5). 이 배역적인 종교 연합체는 하나님 위에 자신을 높였던 고대 바벨론의 거만함을 드러낼 것이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둘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사악한 체제가 마지막 복음의 기별에서 나오는 빛을 거절함으로써 진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것이라고 예고한다. “모든 그리스도교국의 각 교회들이 세상과 완전히 연합할 때 바벨론의 타락은 절정에 이를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390).
2.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14:8)
두 번 반복된 “무너졌도다(επεσεν-πίπτω<pipto>의 예언적 부정과거) ”라는 말은 누적된 바벨론의 배교를 가리키며, 도덕성의 완전한 붕괴를 의미한다. 반면 바벨론의 멸망은 미래에 있을 일인데 왜 이미 붕괴된 것처럼 묘사되었는가? 저자는 예언적 부정과거시제를 사용하여 일어날 일이 너무 확실하여 바벨론이 이미 멸망한 것처럼 표현하는 헬라어 구문형식을 택하였다. 바벨론의 멸망은 18장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역사적으로 두 번 반복된 붕괴는 다음과 같다.
(1) 둘째 천사의 메시지에서 첫 무너짐은 1844년 여름 이래 심판의 경고를 거절한 영적 바벨론의 무너짐을 시사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4장의 둘째 천사의 기별은 1844년 여름에 처음으로 전파되었다. 그런데 그 기별은 그 심판의 경고가 제일 널리 전파되고, 제일 보편적으로 거절당하고, 또한 교회가 가장 급속도로 타락하게 된 북미 합중국의 교회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둘째 천사의 기별은 1844년에 완전히 성취되지 못하였다. 당시의 교회들이 재림기별의 빛을 거절한 결과로 도덕적 타락을 경험하였으나 그 타락은 극도에 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시대의 특수한 진리를 거절함으로 더욱더 깊이 타락하게 되었다”(쟁투, 389).
(2) 종국적인 둘째 무너짐은 미래적으로 일어날 사건이다. 이 무너짐이 이루어지기 전에 바벨론은 만국을 음행으로 인도하는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야 한다. 또한 사단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사단이 “모든 거짓 권능과 징조와 이적과 불의한 모든 속임으로” 활동할 것인데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할 자들은 “미혹하는 마음이 발동하여” “거짓 것을 믿게”(살후 2:9-11)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상태가 이루어지고 모든 그리스도교국의 각 교회들이 세상과 완전히 연합할 때 바벨론의 타락은 절정에 이를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진행 중에 있으며, 요한계시록 14장 8절의 완전한 성취는 아직 장래에 속한 일이다”(쟁투, 389-390).
3.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
사도 요한은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 짐승, 및 거짓 선지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았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계 16:13-14).
재림교회는 일반적으로 이 상징들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1) 용 = 사단
(2) 짐승 = 로마가톨릭 교황권제도
(3) 거짓 선지자 = 배도한 개신교
요한계시록 제13장의 “용, 바다짐승, 및 땅의 짐승”은 16:13에에 나오는 “용, 짐승, 및 거짓 선지자”와 평행적 기사로 모두 사단의 삼위를 나타낸다. 이런 평행성에 따라 판단하면 “땅의 짐승”이 “거짓 선지자”로 대체되고 있는 셈이다.
요한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 및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의 운명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계 19:2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3. 배도한 바벨론의 포도주
바벨론의 포도주는 배역적인 종교 제도를 통해 제공된 거짓 교훈과 복음을 가리킨다.
많은 개신교회가 한때 로마가톨릭교회와 그들 사이를 구분했던 차이점들을 신속히 없애고 성경의 진리에서 돌아서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첫째 천사의 기별이 가리키는 창조론과 명백하게 대조되는 유신론적 진화론, ‘오직 성경’을 대체하는 신학적인 전통들, 성과 결혼 등에 관한 성경적인 정의를 포기하는 수정된 윤리 등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 만연한 바벨론의 포도주, 즉 타락시키는 감화력을 볼 수 있다. 이런 감화력에 중독된 백성은 또렷한 사고가 불가능하다. 백성들이 영적으로 바벨론의 포도주에 취했기 때문에 바벨론은 바다의 짐승을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도록 그들을 미혹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7장은 마지막 때 바벨론 음녀는 모든 나라들에게 음행의 포도주를 먹여 자기와 부정한 관계를 맺게 유혹한다. 예레미야는 온 세계를 취하게 하는 금잔으로 모든 나라로 하여금 그 포도주를 마세게 하여 미치게 한다(렘 51:7). 요한계시록 13:11-18에서는 시단의 삼위일체가 이 세상의 사람들을 기만, 유혹하여 우상에게 경배하게 만들 것이라고 한다. 유혹을 받은 나라들은 경제적인 안전을 위하여 마지막 때 바벨ㄹ노과 연합하게 될 것이다. 종교와 정치권력의 연합체는 거짓 교리를 강요하고 사람들의 양심과 행동을 지배할 것이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마지막 시대의 바벨론은 로마가톨릭과 배도한 개신교를 포괄하는 거짓 종교 체제의 연합체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적대시하고 사탄을 섬기는 일에 헌신할 것이다(참고 계 13:11~18, 16:13, 17:5). 이 배역적인 종교 연합체는 하나님 위에 자신을 높였던 고대 바벨론의 거만함을 드러낼 것이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둘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사악한 체제가 마지막 복음의 기별에서 나오는 빛을 거절함으로써 진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것이라고 예고한다. “모든 그리스도교국의 각 교회들이 세상과 완전히 연합할 때 바벨론의 타락은 절정에 이를 것이다”(GC 390).
4. 바벨론 연합의 이중적 기초
많은 개신교회가 한때 로마가톨릭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로 보고 배척하여 종교개혁을 지향하였으나 현재 추세는 그 두 사이를 명확하게 구분했던 차이점들이 신속하게 사라지고 있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1994년의 ECT(Evangelical and Catholic Together: The Christian Mission in the Third Millennium)와 1999년의 루터교와 가톨릭의 ‘의화(Justification) 교리’에 의화교리 등에 대한 일치 선언(후에는 감리교회와도 이루어짐)이 있었다. 이들 교리로 인해 유럽의 역사가 엄청난 피로 얼룩져야 했던 지나간 일들을 돌아볼 때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 중의 하나인 ‘의화 교리’에 있어서 가톨릭과 합의하여 공동 선언을 한 것에서 과연 선언적 의와 변화시키는 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 전 세계교회 일치를 위하여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은밀하게 혹은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톨릭의 전략에 이미 말려들어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고해성사, 마리아론, 교황의 수위권 등 기본교리가 용납하지 않을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협화음의 파장이 높은 교리들을 피하여 양 측이 종말론적으로 서로 연합할 수 있는 교리들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1) 공통적 교리로 연합한다.
“합중국의 주도적인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교리에 의하여 서로 연합하여 그 국가로 하여금 자기들의 교령(敎令)을 강제로 실시하게 하고, 그들의 제도를 강압적으로 유지하려는 때가 이르면, 그 때에 개신교 미국은 로마교적 교권 정치의 우상을 만들게 되고, 그 필연적 결과로서 이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법률적 형벌을 과하게 될 것이다”(쟁투, 445).
(2) 연합의 2대 공통 교리
“사단은 두 큰 오류, 영혼 불멸설과 일요일 신성설을 통하여 사람들을 그의 기만 아래 들어오게 할 것이다. 영혼 불멸설은 강신술의 기초가 되고, 일요일 신성설은 로마교회에 대한 동조 결착을 창출한다. 미국의 개신교도들은 솔선하여 강신술과 손을 잡기 위하여 심연(深淵)을 넘어 그들의 손을 내밀고, 또 그들은 큰 구렁텅이를 넘어서 로마교회의 세력과 악수하기 위하여 손을 뻗칠 것이다. 그와 같은 삼중 연합의 세력 아래 이 나라는 양심의 권리를 유린하는 일에 로마의 발차취를 따르게 될 것이다”(쟁투, 588).
5. 영혼불멸론 교리의 역사적 발전 과정
(1) 사단은 영혼불멸론의 창시자이다.
뱀은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죽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그의 이 거짓말에는 영혼불멸론과 강신술이 담겨 있다.
(2) 그리스 철학은 영혼불멸론의 학문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혼불멸론의 근거가 성경에 나와 있을 것으로 신봉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상상에 불과하다. 영혼불멸론은 그리스도교 이전 그리스 철학의 소산물이다. Plato(c. 427-c. 347 BC) 철학 이후의 철학은 그의 철학의 반복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의 명성을 얻었다. 플라톤은 서구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하나가 된다. 그는 대화록인 Phaidon에서 인간 영혼이 Idea의 세계로부터 현상계로 왔으며 인간 사후에는 육체 없이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고 다른 육체에 환생으로 이어지다가 실재계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육체를 떠나 영원히 존재하여 미래의 삶을 갖는다는 사상을 설파하였다.
플라톤은 영혼의 초자연성을 통하여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케 하는 영혼불멸론 사상을 공화국(The Republic)에서도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며(imortal), 영속적이다(imperishable)"라고 펼치고 있다.
이러한 영혼불멸사상은 동양의 조상숭배 사상이나 윤회전생론의 기조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의 영혼불멸론은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보는 점에서 그 차별성이 있다. 죽음이라는 것을 유폐된 육체의 감옥에서 영혼이 해방되는 친구처럼 보았기 때문에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도 독배를 태연스럽게 마실 수 있었다. 유대인들이 이 그리스 사상을 전수 받아 히브리 종교사상의 일환으로 삼았던 것이다.
(3) 바울은 이와 같은 그리스 철학 사상을 배척하였다. 그래서 그는 육체 감옥론 사상과는 반대되는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즉, 그는 인간의 몸이 성령이 내주하는 성전이 되며, 몸을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시는 보혈로 매입되었으며,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전 3:16; 6:19-20). 그리고 바울은 죽음을 친구가 아닌 인간의 원수가 되며 이 죽음의 원수가 이김에 삼켜지는 때가 올 것을 확신하고 있다(고전 15:26, 54-55). 그리스도인은 마침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길을 바라고 있다(고전 15:44).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쾌락주의자들처럼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 15:32; 사 22:13; 참고, 눅 12:19),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한다”(고전 6:13)는 모토에 따라 살지 않고, 몸은 주를 위하여 존재하고 몸 성전을 더럽히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전 3:17-18).
(4) 영혼 불멸론 교리는 1950년대 이후 계속하여 주요한 신학적 이슈로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도 수반되어 나타났다.
a. 1950년대
프랑스 칼뱅주의 신학자 Oscar Cullmann 당대 유럽의 주요 두 대학교, 즉 스위스 바젤대학교 및 프랑스파리대학교(Sorbonne)에서 신학부장으로 동시에 가르치는 이례적인 학자였다. 무신론자 Ingersoll이 하버드대학교에서 1954-55년에 걸쳐 영혼불멸론 문제를 비평적으로 다루는 강좌를 하고 있었던 때, 동 대학교는 오스카 쿨만을 청빙하여 영혼불멸문제 에 관한 특별강의를 하도록 하였다.
1955년 4월 26일에 쿨만은 Andover Chapel에서 “영혼불멸인가 몸의 부활인가? 신약성경의 증거(Immortality of Soul, or Resurrection of the Body? The Witness of the New Testament)"의 제목으로 강의하였다. 동 강좌의 세 가지 요점은 다음과 같다.
① 사도 바울은 몸의 부활을 가르쳤다(고전 15장)
② 플라톤은 영혼의 자연적 불멸을 가르쳤다.
③ 위 두 이론은 상반되는 것으로 그 조화가 불가능하다. 어느 하나를 수용하면 다른 하나 를 배척하여야 한다.
쿨만은 강좌의 결론에서 바울이 아테네에서 전한 몸의 부활(행 17;18)과 아레오바고에서의 철학자들과의 변론 과정을 소개하였다. 바울이 몸의 부활을 전할 때 까지는 비웃거나 기롱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이 몸의 부활 신학을 전할 때 아테네 철인들은 몸의 부활과 영혼불멸은 상호간 조화되지 않는다고 보아 더 이상 바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바울의 아테네 설교는 미완성 교향곡처럼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1958년 영국 런던에서 감리교 출판사 Epworth Press는 쿨만의 강의 내용을 책자로 출판하였다(60 쪽). 1965년에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다. 책이 출판된 3년 후에 그의 강의 내용이 신학계의 화두로 등장하였다. 쿨만의 몸의 부활 문제에 대하여서는 수강자들과 독자들의 일반적인 환호를 받았다. 쿨만의 책 서문은 당대의 비평적 반응 양상을 소개하고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 반대 논리가 예의를 갖춘 비평의 형태를 취하는 통상적인 관행과는 달리, 동시에 영혼불멸론자들은 쿨만을 통렬한 적대적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아무도 신약성경으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철학적, 심리적, 감정적 적개심의 표출로 대응하여, 쿨만의 몸의 부활론을 생선을 달라하는 아이에게 뱀을 주는 행태 내지 독액을 품는 짓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이는 재림교회가 몸의 부활을 주장하는 일 등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선포하여 갈 때 가까운 미래에 당할 하나의 전조 현상 같은 것으로 보인다. 영혼불멸론 배척은 영적 바벨론의 연합 세력이 미래 하나님 백성을 배척할 여건이 될 것이다(GC 444-445, 588).
b. 1970년대
* Dianne Kennedy-Pike 사건 관련 책 (1970-1971)
1970년 2월 감독교회 감독 James Pike는 예수에 관한 책 출판을 위하여 이스라엘 광야에서 고고학적 발굴을 하다가 행방불명이 된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 군 부대는 그 부인의 요청으로 광야 수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Mrs. Pike는 예루살렘 호텔 방에서 남편이 어느 동굴 입구에 죽어 있는 모습이 환상 중에 나타났고, 남편이 죽는 순간 그의 영이 하늘로 올라가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의 영들로부터 환호 받는 모습을 보았다. 수일 후 이스라엘 군은 그의 남편의 시신을 동굴 입구에서 찾았다. 그 부인의 환상과 일치되는 놀라운 이 사건 전모가 1970년 11월호 여성 잡지 Ladies Home Journal에 소개 되어 사후 영의 세계의 존재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사건은 1971년 1월 Search라는 문고판 책의 형태로 출판되어 널리 읽혀졌다.
* 뉴스위크(The Newsweek)지의 폭발적 인기 기사
Kenneth L. Woodward는 뉴스위크지의 이 부활절 특집판에서 당대 저명한 세 신학자들의 영혼불멸교리 배척 이론을 소개하였다. 즉, 하바드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 Krister Stendahl의 신구약 성경이 영혼불멸교리에 무관하다는 견해, 남감리교대학교 신학자 Albert Outler의 영원한 영혼 사상은 성경의 몸과 영혼이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사상과 모순 된다는 입장, 및 오스카 쿨만의 사상을 소개한 것이다.
Woodward는 두 가지 갤럽 조사 결과를 수록 보고하였다. 즉, 1968년 미국인 73%가 어떤 형태의 사후 생명을 신봉하고 있으며, 1971년에는 사후 영혼의 존재를 로마가톨릭 신부들 98%가, 개신교 목사 86%가, 유대인 랍비 68%가 신봉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위크지의 기사에 대한 반응 현상이 이어졌다. 트리니티복음주의 신학대학원 John Warwick Montgomery는 Stendahl을 공격하였으며, 재림교회의 Herbert Douglass는 영혼 불멸론을 비평하였다.
* 뉴욕 영화 제작자의 증언 (1974)
1974년 Reader's Digest 지는 당시 Solo Production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Victor D. Solow (당시 56세)의 개인적인 증언 “나는 오전 10시 52분에 죽었노라(I Died at 10:52 A.M.)"(pp. 178-182)을 수록하였다. Solow는 1974년 3월 23일 아내와 함께 차 운전 중 심장이 멎었다. 경찰관이 즉시 심폐소생술과 가슴 맛사지를 시행하고 응급차로 뉴욕주 Port Chester 병원으로 이송, 검사하여 보니 생명의 징후가 없었다. 그는 응급실에서 전기 충격을 두 차례 받아 심장이 멎은지 23분 만에 심장 박동이 불규칙적으로 뛰다가 소생한 사람이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개인적 증언에서 Solow는 자기의 몸을 떠난 영혼의 체험, 즉 고통도, 기쁨도 없는 모든 것이 달라진 세계를 시공을 넘어 고속으로 진입하여 들어갔다가 나온 경험을 자세하게 묘사하였다.
* 과학도들 세계의 심령학 열풍
Elisabeth Kubler-Ross 의사(1926년 생)는 Zurich대학교 의힉박사 학위 취득(31세) 후 도미하여 16년간 임사 체험에 관한 On death and Dying, Questions Answers on Death and Dying 등 8권의 책을 1988년까지 저술하였다. 명예학위도 많이 받았다. 그의 책 내용들이 여러 신문 잡지들에 광범하게 소개되어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철학자 겸 의학박사 Raymond A. Moody는1975년 Life After Life를 저술 출판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Reader's Digest 1977년 1월호는 그의 책을 축약하여 출판하였다. 그는 동 서의 속편으로 Reflections on Life After Life(Bantam, 1977)을 저술 출판하였다. 무디는 임사체험의 주된 구성요소로서 다음 11가지 요소를 들고 있다.
(1)체험 내용의 표현 불가능성 (2)사망의 선고를 청취 (3)마음의 평안과 정적 (4)이상한 소음 (5)어두운 터널 (6)체외이탈 (7)다른 사람과 만남 (8)빛을 봄 (9)인생회고 (10)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이름 (11)생환
* 대중잡지의 사후 세계 글 게재 열풍
Kenneth L. Woodward는 Newsweek지에“Life After Life" (July 12, 1977)를, McCalls지에 ”There Is Life After Death" (Aug., 1977)를 기고하여 파장을 일으켰다.
위와 같은 임사 체험 및 사후 영혼의 세계에 관한 증언이나 기타 글들에 대한 비평도 나타났다. 정신분석학자 C. Markham Berry 의학박사는 Kubler-Ross 이론을 반박하였으며 Leo Van Dolson은 What About Life After Life?(RH, 1976)에서 재림교회의 성서적 입장을 천명하였다.
c. 1980년대
UCLA 심리학 연구교수 Ronald K. Siegel은 임사체험을 논박하였다(“Accounting for 'Afterlife' Experiences," Psychology Today, Jan., 1981, pp. 65-75)
경제 잡지 U.S .News & World Report 지는 격에 맞지 않는 종교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게재하였다. "A New Understanding About Death," July 11, 1983, pp. 62-65에서 죽음의 문제, 임사 문제가 전국적 관심사로 부각된 점을 지적하고, 대학교에서 ‘죽음학(Thanatology)’ 강좌가 개설되리만큼 확산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1984년 복음주의자 Mary Stewart Relfe는 남미 정글 속에서 50년간 선교사로 일한 의사Percy Collett(82세) 과의 인터뷰 기사를 출판하였다. 동 기사 제목은“I Walked in Heaven 5 1/2 Days" 으로 성경 진리에 어긋난 내용은 축약되어 재판되는 등 세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982년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성인 800만명, 즉 20명에 한명 꼴로 적어도 한번의 임사체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이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 할 필요없이 임사체험을 털어놓음에 따라 사후의 삶에 대한 증거가 보강되는 듯했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죽어가는 사람의 뇌에 산소가 결핍되어 발생하는 환각일 따름이라고 일소에 부쳤다.
d. 1990년대
사후 세계와 임사 체험은 각종 잡지 및 방송망의 단골 메뉴로 확산되어갔다. 이 기간 동안에 천사론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V. 셋째 천사의 메시지 (계 14:9-12) -- 시험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9-12).
1. 마지막 때의 성도들 정체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은 분노하는 사단의 격렬한 공격 표적이 된다(12;17).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스럽게 순종한다. 그리고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일에 요지부동한다. 그들은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철저하게 믿고 순교도 불사한다.
2.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표 받은 일
셋째 천사의 메시지는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며 그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는 일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로 시작된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는데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고 한다.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는 하나님의 자비가 없는 진노를 말한다. 고대에 사람들은 포도주의 독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것을 물로 희석시키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는 ‘섞이지 않은(아크라투)’ 상태라고 묘사되었다. 섞이지 않고 희석되지 않은 포도주는 무자비하게 최대치의 강도로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
이 진노의 잔은 요한계시록 15-16장에 나오는 짐승을 경배하고 그의 표를 받은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마지막 7재앙 중에 들어 있다.
3. 영원한 고통의 의미
구약성경에서 불과 유황은 심판의 상징 언어이다(창 19:24-25; 사 34:8-10).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당한다는 표현은 총체적인 파멸을 가리킨다. 불과 유황은 심판의 수단이다(창 19:24, 사 34:8~10). 폐허에서 올라가는 연기는 성경에서 익숙한 그림언어이다. 이사야는 미래에 에돔이 불과 유황으로 멸망할 것을 예언했다.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사 34:10)라고 했다. 유다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영원한 불”(유 7)의 형벌을 받는 것처럼 설명했다. 이 성경절들이 말하려는 것은 끝없는 연소(燃燒)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도시 중 지금까지 타고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소가 아니라 ‘결과의 영속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영원한 불”은 멸절(滅絶)을 가리킨다. 불은 태울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타는 것으로 충분하다.
소돔 고모라나 에돔에게 영원히 타리라는 불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불은 끝없이 타는 불이 아니라, 태울 것이 완전히 타버려서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을 때까지 타버린 것을 의미한다. 영원한 불은 악한 세력들이 완전히 멸망하리라는 뜻을 전하고 있다. 예언자는 짐승이 주는 두려운 위협을 묵살시키는 더 큰 위협이 되는 극적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짐승 세력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4. 짐승, 짐승의 표 및 짐승의 우상
사단은 지상의 교황권 제도를 통하여 일하고 있다(GC 439, 443-445). 짐승의 표는 짐승으로 대표된 권세에 충성케 하는 표이다(7BC 822). 안식일을 대치한 일요일 경배 준수가 바로 이 표에 해당한다. 짐승의 표를 받는 시기는 로마가톨릭의 권위에 순복하는 표로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법령이 선포되는 미래가 될 것이다(SDA Encyclopedia [1976]: 856; 참고 GC 449). 엘렌 화잇은 1899년에 시험하는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면서 아무도 아직 이 표를 받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EV 234).
짐승의 우상은 처음에 미국에서 교회가 국가 권력을 사용하여(교회와 국가의 연합 아래) 일요일 예배를 강요하는 형사법으로 제정된 형태로 시작되어 종국적으로는 온 세상 나라가 동 법을 채택하는 것으로 발전한다(ST 3-22-1910; 7BC 976). 미국의 개신교회는 심연을 넘어 강신술과 손을 잡는 일에 앞장선다. 미국은 개신교, 로마가톨릭 및 강신술의 연합(사단의 삼위일체) 영향 하에 국가적 일요일 법을 제정하는 일로 양심의 자유를 유린하는 로마의 전철을 따른다.
“사단은 두 큰 오류, 영혼 불멸설과 일요일 신성설을 통하여 사람들을 그의 기만 아래 들어오게 할 것이다. 영혼 불멸설은 강신술의 기초가 되고 일요일 신성설은 로마교회에 대한 공명심을 일으킨다. 미국의 개신교도들은 솔선하여 강신술과 손을 잡기 위하여 심연(深淵)을 넘어 그들의 손을 내밀고 또 그들은 큰 구렁텅이를 넘어서 로마교회의 세력과 악수하기 위하여 손을 뻗칠 것이다. 그와 같은 삼중 연합의 세력 아래 이 나라는 양심의 권리를 유린하는 일에 로마의 발차취를 따르게 될 것이다”(쟁투, 588).
<참고자료>
VI. 북미주에서의 일요일 법 역사 개관
1. 17세기 식민지 시대 일요일 법
a. Massachusetts Bay 주위 식민지
일요일법을 엄중하게 강요하는 법을 시행하였다. 이에 반대하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주장하는 소수자들에 대한 박해가 있었다. Roger Williams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1635-36의 혹독한 겨울철에 Rhode Island로 피난 정착하는 일이 있었다.
b. Virginia
영국 총독은 일요일법을 강요하는 법을 강화시켜 첫 위반 시 벌금형, 두 번째 위반자에게는 구속 감금형을, 그리고 3회 이상 범법자에게는 중형을 선고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러나 중형으로 다스리는 동 총독의 조치가 버지니아 식민지법으로 입법화된 증거는 확연하지 않다(SDA Source Book, 1962 ed.; 9BC 1002).
c. New Haven(Connecticut)
1653-56년 Blue-law가 있었다. 가죽 표지가 파란색 고급피지로 되어 있어 청색법이라는 칭호로 불리어졌으나 이는 일요일법을 두고 한 표현이다. 한 때 뉴헤이븐 (커네티컷주의 수도)에서는 일요일에 자녀들에게 키스하는 것을 불법으로 처단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요일에 침대를 정리하는 일, 머리를 깎는 일, 다진 고기 파이를 먹는 일, 교구를 순회하는 목사 이외의 사람이 강을 건너는 일도 불법이었다.
2. 18-19세기 독립 후 미국의 일요일 법
a. 미국이 1776년 독립한 후 새 연방헌법은 권리장전(Bill of Rights)의 수정안을 채택하였던 1787년 가서야 비준되었다. Thomas Jefferson은 이 개정헌법에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포함시켰다.
b. 종전의 여러 식민지들이 일요일에 문을 닫아야 하는 법들을 지녔던 전례를 따라 다른 주들과 그 휘하의 카운티 및 시들이 동 법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는 종교적 예배일로 준수라기보다는 일요일에 상업 활동을 규제하는 특성을 지녔었다.
c. 이 기간동안에 전국적인 연방법으로서의 전국적인 일요일 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3) 20세기의 미국에서의 일요일법의 진상
a. 1956년 '주일동맹(Lord's Day Alliance--LDA)'(1888년 결성)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에서 어떤 형태의 일요일 법을 둔 주, 주 단위 전면적인 법은 아니지만 휘하의 어느 카운티나 시 단위 별로 일요일 법을 지닌 주가 48개주 중에서 47주나 되었다. Nevada에만 이 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LDA 측은 일요일법이 부재한 네바다 주를 겨냥 동법의 부재가 미국에서의 노름, 이혼 및 매춘의 본거지로 전락시켰다고 꼬집었다.
b. 1961년 미국대법원은 일요일법이 세속적 목적일 경우 합헌적이라고 판시하였다.
c. 1961-2000년 이 기간동안 일요일에 문을 닫아야 하는 법은 사업적 경쟁 압력과 종교적 무기력으로 인하여 붕괴, 해체되어 갔다. 약 20여개 주들이 동 법을 폐기시켰고 18개주에서는 동 법이 사장시키는 개정을 거듭하여 왔다. 이 기간동안은 일종의 일요일 법 휴면기라고 볼 수 있다. USA Today는 한 때 17개 주에만 모종의 일요일 법 잔재가 남아 있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그 수도 매년 감소 추세에 있다.
이런 일요일 법 사멸 추세를 두고 미국에서 일요일 법이 용도 폐기되었다는 시각은 성급한 결론에 불과하다. Ron Graybill은 이런 일요일 법이 사멸 추세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반전으로 재활될 것”을 예기하고 있다(“Death of a Sunday Law," Columbia Union Visitor, May 1, 1985, pp. 4-5). Union Theological Seminary 교수 Frederick C. Grant는 현대 미국에서의 일요일법 이완 풍조가 보편화되어 있지만 “어느 한 날을, 종교적 예배일로 준수 언질이 없어도, 안식, 변화, 휴양 및 정신적 신체적인 원기회복의 날로 구별하는 일에 포함된 사회적 가치는 너무 중요하여 망각시킬 수 없다”고 하였다 [“Sunday" and Sunday Laws," Encyclopedia Americana, 26(1966): 32].
3. 교황의 목회서신 “주님의 날(Dies Domini)”
요한 바오로 2세가 1998년 5월 31일 주의 날에 대한 유명한 목회 서신을 보내 일요일을 성서적인 안식일로 주장, 그 준수를 부활시키고자 하였다. 동 목회서신은 제1장 주님의 날(Dies Domini)에서는 창조주의 위업에 대한 경축하는 날로, 제2장 그리스도의 날(Dies Christi)에서는 부활하신 주님의 날이며 성령을 선물로 주신 날로, 제3장 교회의 날(Dies Ecclesiae)에서는 성찬 모임을 주일의 핵심으로, 제4장 인간의 날(Dies Hominis)에서는 주일의 기쁨, 휴식 및 연대의 날 로, 제5장 날 중의 날(Dies Dierum)에서는 주일을 시간의 의미를 알려 주는 근원적인 축일로 설파하고 있다. 주의 날을 창조와 부활 경축일로 그리고 성찬 중심으로 해석한 동 목회서신은 다음과 같은 기만이 담겨 있다.
(1) 교황의 안식일에 대한 공격은 아주 간교하고 기만적인 것으로 한편으로는 안식일을 높이고 찬양하며, 반면에 일요일이 창조기념일로 성서적인 안식일이라고 기만하고 있다.
(2) 교황은 주일이 단순히 문화적 휴식 주말로 전락하였다고 그럴듯한 진술을 하면서 창세로부터 구속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회복에 이르기까지 구속의 계획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는 “주일은 매주 돌아오는 부활이며, 죄와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분 안에서 이루어진 첫 번째 창조의 완성과 “새로운 창조”(2고린 5,17 참조)의 시작을 경축합니다“라고 하고 있다.
(3) 목회 서신 중 처음 7페이지까지는 교황이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된 것으로 비치다가 곧 교황이 안식일을 온전히 구체화 시킨 것이 일요일이라고 강변한다.
(4) 일요일을 성서적이라고 시도하는 것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벗어나는 주장이다. 이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저명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55-1274)가 “안식일 대신 주의 날을 지키게 된 것은 성서에 의한 것이 아니고, 교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못 박은 전통적 주장을 일탈하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회의 전에는 교회의 권위로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바꾸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였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교황은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여. 교회의 권위로 했다는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그 일을 했다고 해석한다. 교황의 목회서신은 모든 사람에게 주일을 재발견하도록 두려워하지 말고 강력히 촉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요컨대 교황의 목회서신은 교회가 일요일로 바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성서적인 것이라고 미화시키고 있는데 그 요체가 있다. 교황은 일요일 준수 위기 돌파구를 일요일을 십계명의 도덕적 명령으로서 지키도록 권장하고 있는 것에 두는 교묘한 논리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 몇 나라에는 아직도 일요일법이 건재하고 있다. 스위스의 일요일법은 강력하다. 동 법의 뿌리는 종교에 두고 있지만, 일요일 교회 출석을 강제하거나 안식일에 교회 출석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 동 법은 일종의 사회적 법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황은 1998년 일요일 준수의 신학적 의미와 더불어 그 추진을 독려하는 목회서신을 공표하여 수면 아래로 움츠러들어가던 일요일법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일요일 준수가 종말론적 이슈로 부각될 수 있게 하는 소위 성서적 해석으로 포장하여 "공적인 사안(agenda)"로 올려놓았다. 재림교회가 지금까지 일요일법에 반대하여 온 주된 이유는 안식일에 교회 출석하여 예배하는 것을 금지하며 위반자에게 박해를 가할 것이라는 종말론적 예언의 메시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황의 목회서신에 경각심을 갖고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4. 미국 대법원 판례 변화와 가나다 대법원의 입장
(1) 미국 대법원 판례 변화
1990년 4월 17일 미국 대법원은 역사적으로 의미심장한 판례를 남겼다. 그것은 미국헌법 제1차 개정안에서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제한할 가능성이 있는 급진적인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오레곤 주에서 특정 종교적 의식의 일환으로 환각제(peyote)를 사용한 두 신도(인디안)의 해고 수당 청구를 6:3으로 기각 판결한 것이다. 개인적인 종교 자유의 가치가 정부의 획일적 필요성을 지닌 규범과 충돌할 때 후자의 가치가 우선시될 수 있다는 판결이었다. 종전까지는 제1차 개정안에 따라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의 종교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제한을 인정하는 방향선회를 한 것이다. 1943년에 여호와의 증인이 공립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강제하는 법을 문제시하여 상고하였을 때 이를 존중하였던 판례와는 상반된 처사였다. 1963년 안식일 에 노동하지 않은 재림신도에 대한 해고 수당 지급을 인정하였던 사례와도 상반된 처사였다. 정부가 공서양속이나 전체 국민들의 이익을 규정한 일반적 법규를 종교적 자유에 우선시하는 이 판결이 지닌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한 여러 신문 잡지들은 이 주제를 다루었다.
① 1990년 4월 18일 자 The Fresno Bee 지의 “U.S. Supreme Court Ruling on Religious Liberty" 기사
② 1990년 4월 19일 자 The Washington Post 지의 “Church, State and Peyote" 기사
③ 1990년 4월 18일 자 The Washington Post 지의 “Court: States Can Ban Peyote in Rites" 기사
④ 1990년 6월 18일 자 Christianity Today 잡지의 “When Religion Makes Us Nervous" 기사
(2) 가나다 대법원 입장
가나다 대법원은 일요일법을 지지하였다. 일요일에 상가 철시법이 논란의 이슈가 되었다. 물론 이는 실정법과 헌법상의 원칙의 엄격한 적용 때문이 아니라 국가적 휴식의 날로 갈망하는 국민들의 정서 때문이었다. 법원은 일요일을 지키지 않고 있는 유대교도들과 다른 종교적 집단의 존재도 시인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안식일을 침해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어느 한 날을 노동자의 통상적인 휴일로 정한 입법 목표와 부조화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3) 비 그리스도교 종교 및 비 서구 세계의 일요일 휴일화 추세
전 세계가 주5일제 근무제도의 보편화 현상으로 나가는 추세에 있다. 수많은 기업체들과 학교들이 일요일에 문을 닫고 있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가정을 보호하는 차원, 문화의 날 내지 근로자들의 복지 강화라는 명분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금요일을 예배일로 철저하게 준수하는 모슬렘교 국가들에서도 일요일에 문을 닫는 추세에 있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힌두교도들이나 모슬렘교도들이 아예 일요일에 모스크나 자기들 종교 성전에 가서 예배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일요일법 강화의 준비 단계 현상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5. 과거 및 현재의 일요일 법과 미래의 일요일 법 대비
(1) 관할 지역 범위--과거 및 현재의 일요일 법은 주 단위, 카운티 단위 또는 시 단위 수준이지만, 미래의 일요일 법은 국가적 법으로 시작하여 국제적인 법으로 확장된다.
(2) 일요일 법의 목표--과거 및 현재의 일요일 법은 상업활동 규제에 그 초점이 되어 왔지만, 미래의 일요일법은 일요일에 일하는 것을 규제하며 종교적 준수와 예배를 강요하는 것으로 진전되어 하나님께 충성할 것인지 아니면 짐승에게 충성할 것인지가 그 이슈가 된다.
(3) 범법자 처벌 수위--과거와 현재의 일요일법은 벌금과 투옥으로 처벌하여 왔지만, 미래의 일요일법은 경제적인 매매 제한 및 중형으로 규제한다.
20세기 중엽 이래 세계는 응보형 시대에서 개과천선의 길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주관주의 형법이론의 여파로 사형제도를 폐지하여 가는 추세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흉악범의 빈발 등을 이유로 이에 대한 사형제도 폐지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사형제도 부활의 필요성이 점고한 것이다. 1966년에 42%가 사형제도를 지지하였으나 1982년에는 지지율이 72%로 상승하였다. 사형제도 폐지를 지지하는 비율은 사형제도 부활 반대 의견 보다 더 낮은 비율을 나타내 보여 왔다. 종교적 문제로 사형령이 발동된다는 예언의 시대적 낙후성을 지적하고 조롱하던 비평가들은 이런 흐름을 무시하고 한 때의 사형제도 폐지론 목소리가 높았던 흐름에만 경도되어 있다.
6. 미국의 국가적 일요일 준수 입법의 기본적인 요인
엘렌 화잇은 요한계시록 13장 및 14장과 관련하여 국가적인 일요일 법 제정을 유도하는 요인들을 각 시대 대쟁투 579-590에서 국가적 일요일법 제정의 쌍둥이 요인이 되는 재난과 도덕 붕괴 현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 사회의 전면적인 도덕 붕괴
사회 각계각층이 지도층에서부터 일반 평민에 이르기까지 도덕적으로 심각한 해이를 나타내 대중이 의원들에게 일요일법 제정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급속히 퍼져가는 타락적 풍조가 소위 “그리스도인 안식일”(일요일을 가리킴)을 모독하는데서 기인된다는 것과 일요일 준수를 강요함으로 사회의 도덕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참된 안식일의 교리가 가장 널리 전파된 미국에서 특별히 강조된다. 미국에서는 도덕적 개혁 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중요한 운동 중 하나인 금주 운동이 흔히 일요일 휴업 운동과 병행해서 이루어지며 또한 일요일 휴업 운동자들은 그들 사회의 가장 큰 복리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 자처한다”(쟁투, 587).
“영들과 교통하는 자들은 일요일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국가의 법률을 하나님의 율법과 똑같이 순종해야 한다고 강조할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있는 큰 죄악을 한탄하고 도덕적 타락의 상태가 일요일을 모독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증언을 지지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에 대하여 큰 분노가 격발될 것이다”(쟁투, 591).
“성경상 안식일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법률과 질서를 문란케 하고 사회의 도덕적 제지를 깨뜨리고 무정부 상태와 타락을 초래하고, 지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들이는 자들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양심의 지시에 순종하는 그들의 행동은 완고와 고집과 권위에 대한 멸시로 단정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부에 대하여 불평하는 자들로 고발당할 것이다”(쟁투, 591-592).
미국에서의 도덕적 붕괴 현상의 전환점은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도 고위층의 독직 사건들이 이어져 내려 왔지만, 닉슨은 도덕성의 붕괴를 이유로 미국 200년 역사상 대통령이 하야하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Spiro Agnew 부통령은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사임하였다. 법의 정의를 지켜야 하는 검찰총장 John Mitchell 역시 유죄로 낙착되었다. 1992년 대통령 출마 후보자 3인은 모두 거짓말이 탄로되어 도중하차 하였다. 클린턴 전직 대통령의 소위 부적절한 관계가 대통령 직무 수행에 문제가 안 되는 것이 미국의 조야의 현실이다. 사회의 지도층의 도덕적 파산상태는 각계각층 특히 청소년의 도덕적 공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청소년의 마약사용은 일상화 되어가고, 혼외 출생 비율은 높아가고 있다. 범죄율은 끊임없이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의 고위층이 줄줄이 사법처리 되어 온 모습에 익숙하여 있다. 이 도덕적 아노미 현상을 재난이라는 하나님의 심판과 연계시키는 해석을 하면서 도덕적 고삐를 단단히 잡고 등장한 기독교 우파가 그 기세 높이고 있다.
(2) 생태계, 경제계, 및 대중교통에 있어서 강도 높은 대 재난의 격증과 빈발
재난의 격증과 빈발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읽은 자들은 그 원인을 일요일 신성성을 짓밟은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재난들은 사실상 사단이 천연계 실험실에서의 사단의 실험의 결과에 불과하다. 이 재난은 더 잦을 것이며 그 강도가 커질 것이다.
“사단은 뜻하지 않은 사고, 바다와 육지에서 일어나는 재난, 큰 화재, 사나운 풍랑, 심한 우박, 폭풍우, 홍수, 회오리바람, 해일, 지진 등 수많은 방법으로 각 지역에서 그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다 익은 수확물을 쓸어버림으로 기근과 불행이 뒤따르게 한다. 그는 치명적 병독을 공중에 뿌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죽게 한다. 이러한 일은 점점 더 빈번하고 비참해져 간다. 멸망이 사람과 짐승에게 똑같이 엄습한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사 24:4, 5).
그 때에 큰 기만자는 사람들에게 이런 재난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고 역설할 것이다.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자극한 부류에 속한 자들은 범죄자들에게 언제나 무언의 견책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이 그들이 당하는 모든 재난의 원인이 된다고 비난할 것이다. 사람들이 일요일 안식일을 범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다는 것과, 그 죄가 재난을 일으켰으므로 일요일 준수를 엄격하게 강요하기 전에는 재난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쟁투, 589-590).
사회적 큰 재난이 일어나면 정치가들은 그 책임을 질 희생양을 마련하여 흉흉한 민심의 원한과 분노의 표적이 되게 하므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는 일을 하여 왔다. 네로는 로마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돌렸다. 로마제국 박해 시대에 대중들은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자연계에서 재난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이런 사회적 원인 귀속 사태는 성서 시대에도 일어났다. 아람왕 벤하닷이 전군을 총동원하여 사마리아를 포위, 경제 봉쇄를 하자 식량 부족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마침내 자식을 잡아먹는 참담한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이스라엘 왕은 재난의 모든 책임을 엘리사에게 돌리고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왕하 6:31). 마지막 때 남은 백성들은 재난의 사회적 책임의 원인 귀속 대상이 된다.
개신교 성직자들은 이 재난들을 일요일을 유린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고 국가적 황폐를 막는 방편으로 국가적 일요일법 제정을 촉구하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이를 추진하고, 로마 가톨릭교가 이에 편승할 것이다.
“성경상 안식일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법률과 질서를 문란케 하고 사회의 도덕적 제지를 깨뜨리고 무정부 상태와 타락을 초래하고, 지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들이는 자들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양심의 지시에 순종하는 그들의 행동은 완고와 고집과 권위에 대한 멸시로 단정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부에 대하여 불평하는 자들로 고발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할 의무를 부인하는 목사들은 강단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국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할 의무를 주장할 것이다”(쟁투, 591-592).
“교회와 국가의 지도자들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일요일을 존숭하게 하고자 매수하고 설득하고 강요하기 위하여 연합할 것이다. 그들은 신적 권위의 부족을 압제적 법령으로 보충할 것이다. 정치적 부패는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과 진리를 존중하는 마음을 소멸시키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까지도 그 위정자와 입법자들은 일반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법령에 대한 민중의 요구에 굴복할 것이다”(쟁투, 592).
“성직자들은 그 빛이 그들의 교인들에게 비치지 못하도록 방지하기 위하여 거의 초인간적 노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하여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한 논쟁을 진정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다. 교회는 국가의 강한 세력에 호소하게 되고, 이 일을 통하여 로마교도와 신교도들은 연합하게 된다. 일요일을 강요하는 운동이 더욱 대담하고 결정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법률의 힘이 가해질 것이다. 그들은 과료와 투옥으로 위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을 버리게 하는 유혹의 수단으로 훌륭한 지위가 주어지고 어떤 자들은 보수와 특권이 제공될 것이다”(쟁투, 607).
1980년대 이래 미국의 잦은 기상 이변으로 대중들의 재난에 대한 의식이 점고 하였으며 사회적 이슈화로 등장하였다. 특히 1990년대 이래 전에 없는 대형 재난들이 먹구름처럼 몰려 왔다. 해마다 수많은 큰 지진들과 해일 등 재난들 빈발하여, 1992년 9월 도덕적 다수 운동가 Pat Robertson은 샌프란시스코 지진과 최근의 허리케인 같은 자연적 재해를 도덕적 아노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증거라고 언급하였다. 2005년 뉴올리언스와 그 인근에 밀어닥친 재난은 엘렌 화잇이 예언에서 지적한 대로 그 강도가 더하여 간 하나의 증거가 된다.
(3) 노조의 역할
재난과 도덕 붕괴라는 2대 요인이 국가적 일요일 법 제정의 명분을 줄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범세계적인 일요일법 제정의 근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요인 외에도 노조의 역할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는 노조 전횡시대라고 하리만큼 그 활동이 온 사회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심지어 교육계 및 공무원 사회에 이르기까지 노조의 외연은 확대되어가고 있다.
엘렌 화잇은 안식일 준수 등 개인적인 자유를 제한하는 노조의 굴레를 경고하였다. 엘렌 화잇은 당대 결성 조직되어 있는 노조뿐만 아니라 장차 조직될 노조에 가입하지 말도록 권고하고 있다.
“여러 해에 걸쳐 나는 우리의 사업을 도시들 안에 집중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특별한 빛을 받아 왔다. 이런 도시들에 편만한 소란과 혼란, 노동조합과 동맹 파업으로 초래되는 조건들은 우리의 사업에 큰 장애로 입증될 것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을 어떤 특정한 조합에 예속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며, 우리가 결코 인정해서는 안되는 어떤 세력에 의한 계획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고 있다. 악인들은 불에 태워지기 위해 단으로 스스로를 묶고 있다”(7증언, 84).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현재 구성되었거나 장차 구성될 노동조합에 결코 가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금하신다. 예언들을 연구하는 자들이 우리들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보고 깨달을 수 없을까?” (서신 201, 1902; 2기별, 144).
“이러한 조합들은 말세를 의미하는 징조들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불로 멸망당하기 위하여 한데 결합하고 있다. 저들 중에 교회 신자들도 있을 것이나 저들이 이러한 조합에 가입하고 있는 동안은 도저히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조합에 가입한다는 것은 십계명 전체를 무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기별, 143).
“노동조합들은 이 지상에 창세 이래로 없었던 환난의 때를 몰고 올 매개물 중의 하나이다”(서신 200, 1903; 2기별, 142).
1985년 대총회 홍보 및 종교자유부 보고에 따르면, 1950년대 중반 미국 노조의 양대 진영 AFL과 CIO가 합병하여 거대 노조가 되므로 전국적 단체행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1955년부터 1985년 사이 30년 동안에는 노조 회원 감소율이 감소추세로 나가다가, 1990년대에는 다시 상승세를 타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노조를 제압하려는 여러 업체들의 노력이 무위로 끝나는 일들이 일어났다. 선진국 사기업 노조는 일반적으로 쇠퇴하고 있지만 공공노조는 갈수록 강력해져서 정부와 학교가 노조의 ‘포로’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미국 경우 가장 강력한 노조는 전국교원노조(NEA)로 과거의 공산당을 빼닮은 조직을 갖고, 노조 노선에 반대하는 후보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는 하면, 우호적인 후보에겐 헌금을 하는 등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교원노조 때문에 미국의 공립학교가 병들어 가고 있다. 교원노조의 지원을 받는 미국 민주당은 공립학교 개혁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여 왔다. 캘리포니아주에서처럼 대표공공노조는 정부 재정을 파탄에 빠뜨리기도 한다. 2003년 선거에서 재정개혁을 내걸고 주지사로 당선된 아널드 슈워제네거도 공공노조의 격렬한 정치공세에 봉착해서 공약을 이행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의 노조는 주일동맹 내지 지역 교회협의회와 연대하여 나가는 추세에 있다.
(3) 강신술의 지원
강신술은 영감된 성경의 메시지를 폄하시킬 것이다.
“강신술이 이전에는 그리스도와 성경을 부인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그 둘을 다 받아들이고 믿노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성경은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방식으로 해석되는 한편, 그 엄숙하고 요긴한 성경의 진리는 효력을 상실해 버렸다. 사랑은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이라고 생각되고 있지만 그것은 약한 감상주의로 전락되어 선과 악을 거의 구별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공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견책, 거룩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 등이 모두 무시되고 있다. 사람들은 십계명을 죽은 문자처럼 여기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귀를 즐겁게 하고 매혹시키는 우화적 이야기들로 감각을 빼앗긴 나머지 사람들은 신앙의 기초가 되는 성경을 부인하도록 이끌린다”(쟁투, 558).
“사도들의 모양으로 가장하고 나타나는 이 속이는 영들은 사도들이 세상에 있을 때 성령의 지도로 기록한 바와는 전혀 반대되는 말들을 한다. 그 영들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임을 부인함으로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기초를 무너뜨리고 하늘가는 길을 보여 주는 빛을 꺼버린다. 사단은 성경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거나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혹시 적당하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성경을 경시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버려야 할 것이라는 확신을 세상 사람들에게 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기 위하여 기이한 이적을 행한다. 강신술은 사단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며 그는 그것을 통하여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세상 사람들에게 믿게 할 수 있다. 사단은 자기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심판할 성경을 마음대로 그가 원하는 곳에 숨겨 놓고 세상의 구주를 보통 사람에 불과하게 만들어 버린다”(쟁투, 557).
그리스도의 재림 전 사도들의 영으로 가장한 사단은 영감된 저술들을 오도하는 일들을 자행할 것이라는 화잇의 예언은 부분적으로 일어났다. 1974년 봄에 심령술사로 활동하다가 재림교로 개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Nicolas Steubing이 Ruth Montgomery에게 선교 목적의 편지와 함께 각 시대 대쟁투를 보냈다. Ruth Montgomery은 당대 Jeanne Dixon 및 Jane Roberts와 더불어 저명한 심령술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1965-1982년 사이에 심령술에 관한 9권의 베스트셀러 저술을 낸 바 있었다. 그는 1974년 4월 17일 자 Steubing에게 보낸 답서에서 화잇의 영이 나타나 죽은 자와 교통하는 강신술에 관한 부분에 관한 저술을 무시하라고 거듭 당부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모조하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경적 재림 현상을 위조할 수없다(GC 624-625).
“큰 기만적 연극의 주역으로서 사단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로 가장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희망의 성취로 오랫동안 고대하고 있노라고 공언해 왔다. 이제 그 큰 기만자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신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사단은 세계 각처에서 요한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계시록에 묘사한 바와 같이 실로 위엄 있고 광휘 찬란한 모습으로 자신을 사람들 앞에 나타낼 것이다”(쟁투, 624).
“사람들이 그 앞에 부복하여 그에게 경배한다. 그렇게 하는 동안 그는 손을 들어 마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당신의 제자들을 축복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축복할 것이다. 그의 음성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아름답다. 우아하고 동정어린 음조로 그는 일찍이 구주께서 말씀하신 은혜로운 하늘 진리 중 어떤 것들을 알려준다. 그는 사람들의 병을 고친다. 그런 다음에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특성으로 가장하여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모든 사람에게 그가 축복한 그날을 거룩히 지키도록 명령한다. 그는 제칠일을 거룩히 지키기로 고집하는 자들은 빛과 진리를 가지고 그들에게 보낸 그의 사자들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강력하고 거의 압도적인 기만이다”(쟁투, 624).
사단은 성경과 반대되는 것을 가르치고 이에 따르는 자들을 축복할 것이다. 사단의 초자연적 및 이적적 현현으로 인하여 비기독교계 국가들이나 비 서구세계가 국제적 일요일법에 호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7. 일요일 준수 강제법의 종말론적인 전개과정
짐승의 우상 형성은 요한계시록 14:9의 셋째 천사의 메시지의 성취가 된다. 미국에서 사단의 이적활동은 증가하고 공화주의 원칙을 포기하며 의에서 단절되어 국가적 배도를 자행한다. 이 국가적 배도는 국가적 황폐로 이어진다. 신도들에게 국가적 일요일법의 제정은 대도시를, 사형령은 모든 도시를 각각 떠나라는 신호가 된다.
(1) 짐승의 우상 형성과 종말 임박
“그러나 세속적 권력을 가지고 종교적 의무를 강요하는 바로 그 행위로 말미암아 교회들은 스스로 짐승의 우상을 만들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북미 합중국이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것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하는 일이 된다”(쟁투, 449).
“개신교가 로마의 세력과 손을 잡기 위하여 구렁을 넘어 손을 뻗게 될 때, 그가 강신술과 악수하기 위하여 심연(深淵)저편으로 건너갈 때, 이 삼중 연합의 영향 아래 우리 나라가 개신교와 공화 정부로서의 그 헌법의 모든 원칙을 거부하고 법왕권의 거짓과 속임을 퍼뜨릴 준비를 갖추게 될 때, 우리는 놀라운 사단의 활동시기가 왔다는 것과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5증언, 451).
(2) 국가적 배교
엘렌 화잇의 예언적 통찰에 따르면 미국은 헌법을 개정하여 일요일법을 마련할 것이다.
“일요일을 안식일로 준수하도록 강요하는 법령은 정부의 기초가 되어 온 공화정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국가적인 배교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교황권 종교는 통치자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은 무효화될 것이다” (7MR, 192 [1906]; 사건, 132).
“인기와 후원을 얻기 위하여, 입법자들은 일요일 법령을 제정하라는 요구에 굴복할 것이다. …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리고 법왕권의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의에서 스스로 완전히 분리될 것이다. … 로마 군대의 접근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징조가 되었던 것처럼 이 배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한계가 이르렀음을 알려 주는 징조가 될 것이다”(교회증언 5권, 455: 사건, 132-133).
“하나님의 율법이 무효화되고 배교가 국가적인 죄가 될 때,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일하실 것이다”(3SM, 388; 사건, 133).
“미국 국민들은 은총을 받은 백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고, 개신교회 신앙을 포기하고 로마교를 후원하게 될 때, 그들의 죄악의 잔은 차게 될 것이며, “국가적인 배교”는 하늘 책들에 기록될 것이다”(RH, 1893. 5. 2: 사건, 133).
(3) 국가적 파멸
“로마 가톨릭교의 원칙은 국가의 배려와 보호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 국가적인 파멸이 이와 같은 국가적인 배교에 신속하게 뒤따를 것이다”(RH, 1897. 6. 15).
“개신교회들이 그들의 조상들이 극심한 핍박을 받으면서까지 반대하여 온 거짓 종교를 받들기 위하여 세속적인 권세와 연합할 때 교회와 정부의 연합된 권세로 법왕이 제정한 안식일이 강요될 것이다. 국가적 멸망으로 끝나고 말 국가적 배도가 일어날 것이다”(복음전도, 232: 사건, 134).
“국가의 통치자들이 사단의 정책에 따라 행동하여 저들 스스로 불법의 사람의 편에 가담하는 국가적인 배도의 때, 바로 그 때가 죄악의 잔이 가득 찰 때이다. 국가적인 배도는 국가적인 패망을 알려 주는 신호이다”(가려뽑은 기별 2권, 373; 사건, 134).
(4) 마지막 임박 신호와 대도시 탈출
미국에서 국가적인 일요일법을 제정하는 일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대 도시를 떠나라는 신호가 된다.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가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도망가라는 신호였던 것처럼, 교황권의 안식일을 강요하는 법령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일은 우리에게 경고가 될 것이다. 그 때는 산중의 격리된 장소에 은신처를 마련하기 위하여 보다 작은 도시들을 떠나기에 앞서 대도시들을 떠날 때이다”(교회증언 5권, 464; 사건, 121).
“거짓으로 진리를 대신하는 일은 이 연극에서 최후의 장면이다. 이같이 대신하는 일이 전세계적인 것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다. 인간의 법이 하나님의 율법보다 높임을 받게 될 때, 곧 이 세상의 세력들이 사람들로 주일 중 첫날을 지키도록 강요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가 이르렀음을 알라”(7BC, 980; 사건, 135).
(5)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
“하나님의 율법이 무효화되고 배교가 국가적인 죄가 될 때,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일하실 것이다”(3SM, 388; 사건, 133).
(6) 사형령--모든 도시탈출 신호
국가적 일요일 법의 제정에 이어 동 법을 위반한 자들에게 사형령을 내리는 때는 남은 백성들이 모든 도시를 떠나라는 신호가 된다.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위정자들이 십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서 정부의 보호를 제거해 버리고 그들을 멸망시키려 하는 자들의 손에 넘겨준다는 법령을 반포하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도시와 촌락을 떠나 가장 황량하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피하여 함께 무리를 지어 거하게 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26; 사건, 137-138).
(7) 범세계적 일요일 준수 법제화
이는 짐승의 표가 어떤 형태로 각 단체와 각 사람에게 제시되는 단계이다(참고 Ms. 6, 1889, p. 6). 셋째 천사의 기별이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는 것처럼 거짓 안식일(일요일) 이슈가 전 세계적으로 시험거리가 될 것이다.
짐승과 우상 경배가 범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갈 때 이에 반대하는 셋째 천사 메시지의 경고의 "큰 외침(loud cry)"이 온 세상 각 지역에 전개될 것이다. 참된 사단의 이적과 대비되는 하나님의 이적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날 것이다.
“힘센 음성으로 외치는 동안 교회는 주님의 섭리의 증보를 힘 입어, 구원의 지식을 매우 풍부하게 전하므로 빛이 모든 도시와 마을에 전파될 것이다. 이 세상은 구원의 지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께서는 열렬하고 활동적인 기구들을 풍성한 성공으로 관 씌우실 것이므로 현대 진리의 빛은 어느 곳에서나 번쩍일 것이다”(리뷰 앤 헤랄드, 1904년 10월 13일; 전도, 694).
“불원간 모든 사람이 경고의 기별을 듣고 결심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끝이 이를 것이다 ”(전도, 703).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며 모든 동기를 헤아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지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이 투쟁의 계쟁점(係爭點)에 관하여 기만당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 법령은 사람들에게 맹목적으로 강요되지는 않을 것이다. 각 사람은 현명한 결정을 하리만큼 충분한 빛을 갖게 될 것이다”(쟁투, 605).
“예언은 첫째 천사가 그 기별을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것이라고 한다. 삼중 기별의 한 부분인 셋째 천사의 기별 역시 그것과 같은 범위로 전파되어야 한다. 예언에는 공중에 날아가는 한 천사가 큰 음성으로 전파할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반드시 세계의 주목을 끌게 될 것이다”(쟁투, 449-450).
“하나님의 종들은 거룩한 헌신으로 빛나고 밝은 표정을 얼굴에 짓고, 하늘에서 온 기별을 선포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저곳으로 분주히 왕래할 것이다. 온 세상은 무수한 음성으로 경고를 받을 것이다. 이적들이 일어나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게 될 것이며, 표적과 기사들이 믿는 사람들에게 따를 것이다. 사단도 또한 거짓 기사들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의 눈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게까지 할 것이다(계 13:13 참조). 이리하여 세상의 거민들은 그들의 입장을 분명히 취하게 될 것이다”(쟁투, 612).
(8) 소수자 박해 가능성 점고
민주주의 사회란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의사 결정을 하여 나가는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양심과 신앙의 자유 같은 소위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는 주류 사회에 속하지 않은 주변적 존재들인 소수자를 보호하는 배려도 함께 지향하는 관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자 보호의 원리는 사회 전체의 공공복리와 안전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기득권 주류 세력은 그들의 자유를 제한 내지 희생의 제물로 삼는 이중성을 보여 왔다. 소수자는 실정법상 언제나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대상으로 남아 왔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독일과 동 유럽의 소수인 유대인들 약 600만 명이 참혹한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 태평양 연안 지대 거주 일본계 미국인들 12만 명을 수용소에 감금하였다. 후에 이들 일본계 미국인들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졌지만 20세기 민주주의의 최첨단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이런 반인륜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할 것이다.
1986년 교황청은 휘하 전 세계 사제들에게 가정을 해체시키거나 사회에 해악적인 종파를 먼저 거론하면서(문선명 통일교나 근본주의자들을 제외시킴) 반대 명분을 살리면서 성경 이외에 별도의 계시된 책이나 예언적 메시지를 지닌 그리스도교 종파 및 반주류적 분파들에 반대하는 일을 촉구하였다. 바티칸 2차 회의에서 주류 개신교 집단을 분리된 형제자매들이라고 명명한 바 있기 때문에 그들은 위의 지시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의 백만 이상의 대량 인종청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만 명 이상의 대량학살, 이란-이라크 종교 전에서 이슬람교도 간의 대량 학살, 북 아일랜드에서의 개신교도와 로마가톨릭교 사이의 종교 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전환기에 종교 간의 갈등이 맞물려 인종청소의 대상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왔던 사건들은 20세기의 흑점들이다.
8. 십계명의 날 선포 동향
하나님의 거룩한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삶은 인간의 참 생명, 행복과 건강에의 길이 된다. 개신교 일각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도덕률 십계명이 폐지되었다는 주장을 펼쳐 온 율법폐기론(antinomianism)은 성경을 잘못 읽은 소치이다. 그러나 지배종말론에서처럼 십계명을 포함하여 모세 율법을 현재의 실정법에 투영시켜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그리스도교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는 또 다른 주장 역시 경계하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배종말론 일환으로 등장한 “십계명의 날” 운동은 우리의 주목대상이 된다.
유대인 Ron Wexier는 십계명의 날 운동을 펼쳐 왔다. 현재 십계명의 날 위원회(Ten commandments Commision)의 의장은 Belarmino Gonzales 이다. 그는 여러 미디어 선교의 설립자로 현재 National Religious Broadcasters(NRB) 및 ACT(기독교 텔레비전 방송 연합)의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동 위원회는 2006년 5월7일을 십계명의 날로 선포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십계명의 날은 원래 2006년 2월 5일로 계획되었었으나 5월 7일로 옮긴 이유는 더 많은 준비와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고 할수 있으나 더 근본적 이유는 5월 7일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기간에 속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고자 유대인의 절기 즉 유월절과 오순절 그 사이 기간에 이 행사를 넣은 것입니다.
최근 대법원에서 결정한 내용 즉 십계명비가 법원건물이나 어떤 공공건물에 비치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에 대하여 여러 종교 단체들이 우려를 표명하여 왔다.
십계명의 날 운동은 이런 금지 법안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인다. 십계명의 날의 목적은 (1) 십계명에 포함된 원칙들과 교훈들을 최고, 최상의 권위로 끌어 올리고, (2) 십계명에서 발견되는 가치들에 대한 헌신과 복종에 대한 범세계적 상징물을 만들며, (3) 이 사회를 도덕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어떤 구체적 장치를 만들어 내고, (4) 하나님의 우주적인 이 최고의 법을 지지하는 수백만의 사람들과 일체가 될 기회를 주고자 함에 있다. 이 운동의 최종적 목적은 하나님의 십계명이 이 땅을 지배하는 실정법으로 확립시키는데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얼핏 보면 환영할만한 신정정치 구현인 듯 보이지만, James Kennedy의 10 Commandments와 Ten Commandments Tape Series에서 보듯 일요일을 강요하는 운동으로 인류의 도덕적 붕괴를 막아 보자는 기류가 초래할 일요일법령을 예견케 하는 시대적 징조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요한 바오로 2세 가 1998년 5월 31일 발표한 ‘주의 날’ 목회서신의 파장의 연속이라는 점에 주목을 한다.
보수적 개신교의 지배신학 사조와 아울러 ‘주의 날’ 목회서신의 지속적인 파장, 그리고 구약성경 십계명을 강조하는 유대인들 이 모두를 아우르는 십계명의 날 운동이 향후 미 의회와 대법원에 어떤 파장을 끼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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