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선전물

종말 : 2019. 7. 11. 17:33

빗나간 선전물

얼마 전 아내가 한 지인이 자기에게 보내 온 카톡을 읽어보라고 내게 보내왔다.

카톡 내용은

예수님은 1844년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는가?”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글이다.

먼저 여기에 그 내용을 가감 없이 그 대로 전재(轉載)한 후 카톡 논자의 비평의 문제점들을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한다.

 

I. 카톡 내용

<예수님은 1844년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는가?

1844년 교리는 SDA교회의 중심적인 가르침들 중 하나이다.

이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버지와 함께 신자들의 용서와 수락을 획득하지만,

우리의 죄들을 깨끗하게 못하고 차라리 이것은 우리의 죄들을 하늘 성소로 이동시킨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그들이 조사심판이나 속제사역으로서 묘사하는

하늘성소로 부터 죄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같이 그들은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신자들의 모든 죄가 하늘 심판의 책에 기록되므로,

예수께서 재림 전에 심판의 책으로 부터 그들의 죄들을 회개하였던 사람들의 이름들을 제거하고 생명 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을 보존하기 위해서 기록책을 검토 할 필요가 있다.

이 가르침은 대속죄일에 관한 레16장의 책으로 부터 가져오고 비유적으로 하늘성소에 적용되었다.

그들은 아사셀 염소가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책임을 지면서 우리의 죄들을 지고갈 사단을 상징적으로 대표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1844년 이래로 예수님은 하늘 지성소에서 조사심판을 행하시고 있다.

1844년이 될 때까지 예수님은 성소에서 제사장 사역을 행하셨다.

이 주장을 위한 그들이 입증하는 성경절은 단8:147:10이다.

이 가르침과 함께 문제는 속제와 심판의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을 혼동시키는 것이다.

다니엘서의 앞선 본문들은 우리 주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될 마지막 날 심판을 말하고 이것이 심판의 날과는 관계가 없다.

우리의 죄를 속제하는 것은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분의 제사장 사역에서 그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셨을 때 온전히 성취되고 완성되었고 2000년 전에 그분이 하나님 우편인 하늘에 오르셨을 때 지성소에 들어가셨다(9:12,24-28).

우리의 구원이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의해서 안전하게 지켜지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믿음안에 굳게 서 있는한 심판에 관하여 불안해 할 이유가 없다(3:16-18).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조차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죄들을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의 모든 죄들을 담당하셨고 우리의 죄들을 단번에 속죄하셨으므로(7:27;9:12,28;10:12-14,17-18), 엘렌G화잇이 말하는 것처럼사단이 담당할 하나의 죄도 없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은 2000년 전에 끝난 예수 그리스도가 확언한 속제를 믿는 우리의 확신을 도둑질 할 것이다.

게다가 이 가르침에 관한 하나의 성경적인 입증도 없다.

사실 이 가르침은 구약시대에 모든 대 제사장들이 일년에 한번 직접 지성소에 들어가곤 했던 것을 말하는 성경의 규칙을 반박한다(9:7;10:12;16:34).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 이시므로(9:11),

그분이 영광스런 하늘에 오르셨을 때에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다(9:12,25).

그러므로 이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에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던 것을 분명히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참 진리를 반박한다(2:14-15;7:27;9:11-14;9:21-22,26-28;10:12-14,17-18; 2:13-15).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들을 깨끗하게 한다.

이것은 엘렌G화잇이 말하는 것처럼 하늘성소로 우리의 죄들을 이동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앞서 주목했던 것처럼,

8:147:10은 대속제일과 관계가 없는 세상의 심판에 관해서 말한다.~~>

 

II. 카톡 논평에 대한 소감과 응답

A. 일반적 소감

1. 위 카톡 내용을 보낸 분을 알고 있지만 나는 그 분을 비판하고자 여기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런 어설픈, 그리고 빗나간 논리로 재림교회를 헐뜯고 돌팔매질을 하는 지도층에 있는 분들에 대하여 응답하는 의도에서 펜을 잡은 것이다.

 

2. 글 중에는 속제,” “대속제일표기 같은 잘못된 표기가 나오지만, 또한 띄어쓰기와 조잡한 논리에 문제가 있지만 이는 비평자들 수준을 말해주는 언어와 표기이기에 문제시하고자 하지 않는다.

 

3. 논리적 연계성 결핍

서두에서

<예수님은 1844년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는가?>

라고 하고서는 재림교회가 제시하고 있는 다니엘 8:14의 묵시문학적 예언인 2300주야 예언기간 주석을 인용 설명하거나 그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있지 않고 비약하여 일방적인 단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 7:10도 대속죄일과 무관한 세상심판이라고 한마디 하는 것으로 글을 끝맺고 있다. , 생뚱맞은 신학적 논리 비약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카톡에서

<그분이 영광스런 하늘에 오르셨을 때에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다(9:12,25).>라고 하므로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을 이야기하는 자가당착을 보여주고 있다.

B. 문제점들

I. 복음주의자들의 주장에 집착하는 비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조차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죄들을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의 모든 죄들을 담당하셨고 우리의 죄들을 단번에 속죄하셨으므로(7:27;9:12,28;10:12-14,17-18), 엘렌G화잇이 말하는 것처럼사단이 담당할 하나의 죄도 없다.>

<이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버지와 함께 신자들의 용서와 수락을 획득하지만,

우리의 죄들을 깨끗하게 못하고 차라리 이것은 우리의 죄들을 하늘 성소로 이동시킨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그들이 조사심판이나 속제사역으로서 묘사하는 하늘성소로 부터 죄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카톡 논자는 개신교 일반에서 흔히 말하고 있는 대로 먼저 조사심판 사상을 두고 복음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한다는 이유를 들어 배척한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조사심판 그 자체가 구원 받은 자의 마음으로부터 평화를 앗아가 버린다는 단순논리를 전개한다. 이들은 의인을 위한 심판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가 일어날 때 행하여 진 것으로 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 대한 심판을 짊어지시기 때문이란다. 심판은 악인이 받는 것이지 의인이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도 한다.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신자들에게 추가적 조사심판이 왜 필요하겠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던지 배척하는 때에 이미 심판을 받았는데 회심 이후 또 다른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의 확증을 약화시키고 복음의 원칙을 유린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조사심판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기별을 통하여 마음에 충만하여진 평화를 앗아가기 때문에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받아들이므로 이미(already) 일어났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까지는 아직(not yet) 완성은 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또한 이미 구원 받은 자는 그 열매를 보여 주어야 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1:6). 믿음의 칭의를 극대화 시키고 성화된 열매를 간과하는 일은 진정한 복음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 뿐이다. 행위에 따른 심판 메시지는 죄인으로 하여금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칭의의 메시지를 지켜 주는 역할을 한다.

신앙은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선물을 신뢰하며 그에 굴복하는 일로 그 생명이 유지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영광을 돌리는 믿음으로 자라나는 체험을 하였다. 그는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4:20-22).

믿음의 칭의와 행위에 따른 심판은 상호 배척 개념이 아니다. 이 둘은 상호 조화되는 관계를 지녔다. 구원사의 흐름에서 조사심판을 때어내 독립된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흔히 두 관계를 조화관계 보다는 충돌 관계로 보게 한다. 조사심판과 최후의 심판은 구속의 지평선에서 한 묶음으로 보이는 사건들이다. 조사심판의 끝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엘렌 화잇은 조사심판을 최후 심판의 맥락에서 조명하였다.

조사심판의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특별히 준비하는 기간이다. 조사심판이나 최후의 심판은 신자들로 하여금 계속하여 믿음, 회개, 고백, 사랑으로 순종하는 봉사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절박한 의식을 일깨운다. 회개한 죄인이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그리스도의 속죄하신 희생을 받아들이는 고백을 할 때, 용서가 하늘 책에 기록된 그의 이름 옆에 등재된다. 심판정에서 책이 펼쳐질 때 이 용서의 기록이 보인다. 조사심판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아들였으며 그 열매를 보여 주고 있느냐를 다루는 것이다. 요컨대, 믿음의 의, 조사심판 및 최후의 심판을 한 묶음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다니엘 7장은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들의 그릇된 행위에 대한 심판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 전 조사심판 사상이 구원의 보증을 약화시킨다고 보는 시각은 성경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보는 것과 같다.

예수님의 피로써 승리한 자들은 조사심판의 복음성에 오히려 경탄하며 기뻐할 것이다.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의 속죄제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 받았다는 말이 기록된다.”(GC 483).

 

2. 히브리서에 조사심판이 결여되었다는 비평

조사심판 사상을 거부하는 자들은 대속죄일 표상 언어가 많이 나오는 히브리서가 A.D. 1세기에 하늘성소의 지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시한다.

그래서 히브리서에 나오는 대속죄일을 표상하는 언어가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으며, 또한 동 서에는 하늘성소가 두 칸으로 구분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늘에서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는 두 국면으로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속히 될 일을 예고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역시 제1세기에 대속죄일의 성취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승천 하신 직후 휘장 안으로(6:19) 들어가 하나님 면전에 나타나셨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실재하는 하늘 성소에서 두 가지 봉사의 국면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 직후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두고 곧장 하늘 지성소 봉사로만 이해하는 것은 표상학적 구속사의 조망을 바로 하지 못하고 있다. 하늘과 땅의 표상학적 상응 사상이 히브리서에 배어있다. 히브리서 9:23은 하늘 성소의 정결을 시사하고 있다. “휘장 안개념은 구약의 제사제도에서의 접근 제한성과는 달리 하나님께 완전히 자유스럽게 직접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 그 요체가 있다. 그리고 동 휘장 안이 꼭 지성소의 성소의 휘장만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히브리서가 단번에 모두를 위하여 드리신 갈보리 십자가와 대제사장의 중보 사역에 역점을 두고 있어서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처럼 시간적 요인이 확연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문제시 하나 시간적 요인에 관하여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보완적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3. <속제와 심판의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을 혼동시키는 것>이라는 비평

카톡 논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속죄와 심판은 완전히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1) 먼저 십자가 속죄에도 심판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멸망당하는 인간을 위한 대리적 희생과 구원이라는 뜻 말고도 또한 죄의 사악성에 대한 심판도 된다. 예수께서는 지상 생애의 전 봉사 기간 중 죄악에 대하여 적대적 메시지를 주셨다. 이것은 공생애 출발점에서 회개의 호소를 한 것에서 단적으로 나타났다(1:15). 시험 받으시는 중에서도 죄와의 타협을 완강하게 거절하셨다(4:4-10). 그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셨다(12:4). 그는 온 마음을 다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에 드리셨다. ,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5:2). 예수께서는 죄를 반대하시는 의로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으실 것으로 말씀하셨다(8:31; 22:39-43).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계셨다(5:30; 8:28-29; 12:24, 27 참조).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십자가상에서 단번에(once for all) 옹호받지 않고는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계셨다. 십자가에서 그는 하나님의 이 사랑의 거룩성을 드러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6:33)란 말씀에서 시사하듯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는 이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2) 속죄가 필요한 이유 그 자체가 심판을 말하고 있다.

a. 하나님의 공의의 입장에서

성경에 모든 죄는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여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분명히 교훈한다. (34:7, 14:18,1:3, 5:4-6, 1:18, 3:25-26)

b. 하나님의 의지적 법의 불변성에서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의 표현인 율법은 왜곡되거나 좌절 될 수 없다(15:18, 3:13, 27:26).

c. 하나님의 진실성에 관계에서

속죄의 필요성은 식언치 않으시며 거짓이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의 진실성에 따라온다(23:19, 3:4).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실 때 불순종하면 형벌이 임한다고 말씀하셨다(2:17, 18:4, 6:23).

d. 죄의 성질에서

죄는 죄책을 동반하기 때문에 형벌을 피할 수 없으며 마침내 속죄를 필요로 한다. 죄는 단순히 도덕적인 과오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것이니 죄책이 따라오며 (요일 3:4, 2:25-27) 또한 죄책은 범죄자를 율법에 빚진 자로 만들어 자신적 혹은 대신적 속죄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요컨대, 속죄는 심판을 포괄하고 있다.

 

(3) 대속죄일 개념의 포괄성

속죄는 하나님과 하나됨의 과정(at-one-ment)을 나타내는 단어다. 속죄는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우주의 도덕적 질서와 화목을 영원히 회복하는 것이다. 대속죄일(욤 킵페르)는 용서, 중보, 화해, 옹호, 정결, 대속, 심판 등 다양한 의미를 지녔다.

조사심판에서 조사라는 것은 옹호, 회복, 정결, 죄의 최종적 처리, 곧 하나님과 죄인이 십자가가로 말미암아 옹호되고 변호되고 그 분의 칭의가 영원히 우주 앞에서 확증되는 높고, 깊고, 넒은 의미가 함축된 표현이다.

 

4. 사단 무책임론 비평

<2000년 전에 그분이 하나님 우편인 하늘에 오르셨을 때 지성소에 들어가셨다(9:12,24-28).

우리의 구원이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의해서 안전하게 지켜지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믿음안에 굳게 서 있는한 심판에 관하여 불안해 할 이유가 없다(3:16-18).>

<우리의 죄들을 단번에 속죄하셨으므로(7:27;9:12,28;10:12-14,17-18), 엘렌G화잇이 말하는 것처럼사단이 담당할 하나의 죄도 없다.>

(1) 구약성서시대 봄 절기와 가을 절기로 표상되는 의식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 사역과 재림 전 천상 심판 사역을 포괄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줄거리가 된다. 역사적으로 실행되었던 봄 절기에서 이루신 구원을 가을절기로 이어져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9:23)는 말씀에서 보듯이 천상성소에서의 중보사역으로 구속사역을 완성시키고 있다. 히브리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가을절기에 속하는 대속죄일에서 행하는 아사셀 염소 의식은 죄의 창시자 시단에 대한 최후적 처리를 표상하고 있다.

지상성소가 인간의 죄로 오염되듯이 하늘성소도 인간의 죄로 오염되어 이를 정결케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 반역적이고 고의적인 죄(페샤)는 심판을 기다리는 하늘성소로 전이되지만, 그 죄는 반역적인 죄이므로 용서는 없고 성소를 오염시킨다. 그래서 페샤의 죄도 하늘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하타트로 표기된 죄는 용서 받아 죄인을 깨끗케 한다. 그러나 하늘성소는 그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다. 이 죄를 정결케 할 필요가 있다(9:23).

 

하나님께서 조사심판을 구속의 경륜에 내포시켜 구태여 진행하시는 이유는 선악간의 대쟁투에서 사단의 참소가 거짓임을 밝혀내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공명정대하심을 온 우주에 확인시키기 위함에 있다. 세속재판에서도 일련의 공판과정이 진행되고 그것도 3심제도로 밝혀내 공의를 밝히고자 하는데 하물며 천상심판에서 엄중한 심판을 단칼로 내린다면 이는 하나님의 성품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단의 하나님 독재론 참소에 대한 주장에 동조하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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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