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의 유토피아와 연모(戀慕)

 

토마스 모어(Thomas Moore)는 1516년에 저술한 <유토피아(Utopia)>에서 이상적인 정치 사회체제를 그렸다. 그는 οὐ(,“not”) τόπος (토포스, “place”)를 합성하여 책명을 삼았다. 그래서 그 원 발음은 <우토피아>가 된다. 그 뜻은 없는 곳(no-place)”이다. , 이 단어는 세상에 없는 곳즉 이상향을 시사한다. 유토피아 시민들은 하루 6시간만 일하고 8시간을 자며그 외에는 각자의 취미, 특히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 유토피아 시민들은 폭정 속에 신음하는 국민의 해방을 돕는 경우가 아니면 전쟁을 하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교육을 자유로이 받을 수 있으며죄수들도 생계수단을 위해 교육을 받고 석방되는 사회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상호 조화되기 어려운 가치들을 합성시키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를경제적으로는 재산공유제를, 사회적으로는 재산과 권력이 아닌 덕망과 지혜로 위계질서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추구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생산, 소유, 분배에서 평등의 원리가 적용되고, 교육, 문화, 학문, 여가, 쾌락의 문제에도 평등의 기회가 보장되는 이상향을 추구한다이런 유토피아는 본질적으로 그 실현이 불가능한 것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여 이의 실현을 강요하는 데서 정치가 모든 것을 해야 하고 또한 할 수 있다고 믿는 전체주의적 속성을 배태하고 있다.

유토피아 추구자들은 시장 원리 위에 정치 원리를 군림시킨다. 당연히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 등 공산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유토피아>에서 정의 사상이 담겨 있다고 한 어느 좌파 교수도 그 강론에 열을 쏟았다.

공병호는 <좌파적 사고, 왜 열광하는가?>에서 사회주의는 가장 큰 도둑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그것은 평등을 앞세워 창의를 말살한다. 그것은 공정을 빙자해 경쟁의 가치를 말살한다. 경쟁 없는 시장은 그 존재가 불가능하다. 그는 컴퓨터의 기본 값(default) 같은 것을 두고 바로 인간들이 본능의 목소리를 따르는 좌파적 사고라고 한다. 그러기에 긴 역사의 흐름에서 자유민주주의나 자유 시장 경제 체제는 찰나와 같이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여 결국 호모사피엔스의 원시 본능이 자유보다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모어는 <유토피아> 에서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주창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생애에서는 로마 가톨릭교에 입각하여 개신교도들을 "교회와 사회 모두의 평화와 화합을 위협하는 질병"을 일으키는 이단으로 정죄하여 무자비하게 화형시켰던 대법관이었다. 그는 종교개혁에 영향 받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신학교수 40명을 체포하여 6명을 화형시켰다. 1517년 마르틴 루터95개조 항의문을 발표한 종교개혁이 일으키자 토머스 모어는 1년 전 자기가 발표한 유토피아에서 종교적 자유를 말했던 것과는 달리,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극렬하게 비난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상주의자들은 흔히 자기 자신이 과거에 한 진술들을 부정하는 진술을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 훗날(1934) 교황청은 그의 이런 기여를 기려 그를 정치의 수호성인으로 추대 선포하였으리라.

 

모어는 영국왕 헨리 8세의 교회 수장권을 내심 거부하면서도 유죄 판결을 받지 않고자 토마스 크롬웰 앞에서 묵비권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가 결국 반역죄로 참수형으로 처형된다. 그는 처형대에서는 군중을 향해 나는 왕의 좋은 신하이기 전에 하느님의 착한 종으로서 죽는다라고 선언했다. 죽을 때까지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아서, 사형 집행인에게 자기 수염은 반역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도끼를 받을 이유가 없다면서 수염을 빼고 자기 목을 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고 위트를 날렸다.

 

 27살의 모어는 1505년 그보다 열살 어린 첫 번째 아내 제인 콜트와 결혼하였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으며 세 딸과 아들 하나 총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제인이 1515년에 죽자 모어는 거의 즉시 재혼하였기 때문에 그의 아이들은 엄마를 가지게 되었다. 그의 두 번째 아내는 엘리스 미들턴으로 7년째 과부였다. 그녀와 모어 사이에는 어떤 아이도 없기는 하였지만, 그녀의 딸을 입양하여 같은 엘리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두 사람의 성격이 매우 달랐다는 사실에도 모어와 그의 아내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어 보였다.

 

모어가 전처인지 아니면 후처인지 어느 아내를 위하여 작사하고 노래했는지는 불분명하나, 그가 남긴 시 "날 믿어주오..."(Believe me, if all those endearing young charms, 날 믿어주오, 모든 아름다움이 스러질지라도...)는 부부의 순애보적 사랑의 감동을 안겨주어 아직도 애창되어오고 있다. 개신교도를 향하여 서릿발 같은 칼날을 휘둘러 대었던 그에게도 아내에 향한 아련한 연모의 서원이 있었던 점은 오늘날 신 마르크스 파들이 인간을 성과 결혼에서 해방 내지 해체시키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이 시야 말로 그의 작품 <유토피아> 보다 더 감동적이고 호소력이 있다. 더구나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 모어를 성인으로 추대한 이면에는 그를 반종교 무신론 공산주의를 반대하여 항거하는 정치성인으로 삼았다는 점도 우리의 관심을 끈다.

 

              "날 믿어주오"

 

날 믿어주오, 오늘 다정하게 바라보이는

그대의 젊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내일 덧없는 요정의 선물처럼

내 품에서 스러져버린다 해도

그대 향한 나의 사랑 변함없으리.

그대 사랑스러운 자취 감추고

세월 따라 주름살 깊어만 가도

그대 사랑하는 마음은 흐려지지 않을 것이오.

빛바랜 그대 젊음의 흔적 위를

내 사랑의 넝쿨이 언제나 푸르게 휘감고 있으리.

 

그대 아름다운 모습이

덧없이 사라지고

고운 두 볼이 눈물로 흐려지더라도

그대를 향한 내 영혼의 정열과 믿음은 변함없이,

그대에 대한 그리움으로 넘치리라!

그리고 영원토록 그대를 향하리다.

태양이 떠오를 때나 질 때나 한결같이

한 곳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Believe me, if all those endearing young charms,

Which I gaze on so fondly today,

Were to change by tomorrow and fleet in my arms,

Like fairy gifts fading away,

Thou wouldst still be adored, as this moment thou art,

Let thy loveliness fade as it will;

And around the dear ruin each wish of my heart

Would entwine itself verdantly still.

 

It is not while beauty and youth are thine own,

And thy cheeks unprofaned by a tear,

That the fervor and faith of a soul may be known,

To which time will but make thee more dear!

No, the heart that has truly loved never forgets,

But as truly loves on to the close,

As the sunflower turns on her god when he sets

The same look which she turned when he rose!

 

이 시는 훗날 애처가의 노래로 유명한 애창곡이 된다.

모어의 날 믿어주오를 읽으면 나이 들어감에 따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 지금 80고개를 넘은 아내의 얼굴에는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은 자태가 사라진지 오래다. 늙으면 젊은 시절의 모습은 볼품없어지고 주름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모어처럼 배우자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끝까지 사랑하겠으니 날 믿어 달라고 한 시를 어제 아침 가정예배 시간에 아내에게 읽어주었다.

이 노래는 무어가 연정을 느끼고 있던 웰링턴 후작 부인이 천연두 후유증으로 얼굴에 부스럼이 생겨 대인기피증에 걸려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이 시를 읊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나, 사실은 무어가 이 시를 바친 상대는 자기의 아내였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천연두에 걸린 무어의 아내가 흉해진 얼굴로 남편 사랑을 잃을까 두려운 나머지 남편을 만나려 하지 않자, 아내의 침실 창가에서 이 노래를 불러 마침내 그녀를 감동시키고 마음을 가라 앉혔다고 전한다. 특히 자신을 해바라기에 비유하여 평생 그대(태양)만을 바라보겠다며 황혼에 이르도록 진정한 사랑을 맹세하고 있다. 어쨌든 가정을 사랑의 유토피아로 만들겠다는 그의 마음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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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