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의 권좌”

역사 : 2019. 12. 8. 16:11

웜브란트 책을 중심으로

사단의 권좌

 

버가모교회 위상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權座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忠誠證人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2:13).

 

위 본문 메시지는 버가모 교회에 주어진 말씀에 나온다. 플리니(Pliny)는 버가모를 두고 아세아에서 월등히 유명한 도시라고 묘사했다. 사도 요한 당시 버가모는 400여 년간 소 아세아의 수도 역할을 해오는 정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로마제국 시대에도 마찬가지이었다.

 

버가모 도시는 원추형 구릉 위에 세워져 있어 주변 평원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이 곳의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경쟁관계에 있었다. 알렉산드라의 파피루스 금수조치에 대항하여 양피지를 계발해 내기도 했다.

 

버가모는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이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는 여러 신들을 섬기는 신전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도 주신 제우스 신전과 뱀으로 상징된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우스 신전, 두 개의 유명 신전이 유명하였다. 제우스 제단은 지금도 남아 있는바 주경가들은 이것을 사탄의 권좌로 보고 있다. 뱀 신은 성육신하여 구주가 된 곳이기도 했다. 버가모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 시설들이 있어 환자들이 쇄도하였다. 환자들이 지하 터널로 들어가 진정제를 마시고 온 밤을 지내는 특별 치료 시설도 있었다. 무독성 뱀들을 풀어나 수면 중인 환자들 몸을 휘어 감고 지나가면 각종 질병의 치료를 받는 사인(sign)으로 여겼다. 뱀 신이 꿈에 나타나면 그에 따라 제사장이 해몽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버가모는 사탄이 지배 장악한 도시로 발전했다.

 

그러나 사탄의 권좌가 있었다는 것과 직접적 연관이이 있는 것은 AD 29년에 세워진 버가모에 가이사 황제 경배 신전이다. 통치자를 신으로 경배하는 일은 당대 시민들의 의무가 되었다. 그리하여 황제 숭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언제든지 목에 칼이 떨어질 수 있는 순교지가 되었다. 문자 그대로 버가모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 되었다. 예리한 칼날을 가지고 메시지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버가모 교회에는 신앙을 고수한 안디바가 있다고 하셨다. 버가모는 충성스런 증인-순교자(martus, martyr)를 배출한 교회이다. 생명을 걸고 신앙을 하는 곳은 20세기 이래 공산권에서 이어지고 있다. 버가모에는 세속적 타협주의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니골라당도 있었다. 국가 최고지도자를 신으로 경배를 강요받는 일은 오늘도 공산권 국가들에서 이어져내려 오고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제1세기 버가모는 사단 활동의 본거지 역할을 하여 사단 경배 중심지이었다.

 

제우스 제단

(이하 웜브란트 책 전재)

버가모는 현대 터키에 소재한 도시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를린 여행안내서 <베데커(Baedecker)>에 따르면 버가모에서 사용되었던 제우스 제단이 1944년까지 베를린 아일랜드 박물관(Island Museum)에 전시되어 있었다고 소개하였다. 독일 고고학자가 발굴한 그 제단이 사탄을 숭배하는 히틀러 정권 시절에 나치의 수도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탄의 권좌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스톡홀름의 일간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더트(Svensk Dagbladet)(Swedish Daily News)1948127"An Unforgettable Night" 기사에서 추세프(Alexei Stjusev)는 다음 사실을 밝히고 있다.

 

1. 소비에트 군대는 베를린을 정령한 뒤에 버가모 제단을 독일에서 모스크바로 가져갔다(Wikipedia Andrews Study Bible 여러 자료들에는 계 2:13의 해설에서 사단의 권좌가 현재도 베를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소개하고 있음). 이 어마어마한 구조물은 길이가 대략 39m, 너비는 37m, 높이는 12m이었다. 놀랍게도 이 제단은 소비에트 어느 박물관에도 전시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소비에트 군대는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 제단을 모스크바로 옮겼을까?

우리는 소비에트 고위 관료들이 사탄숭배 의식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이미 지적했다. 그들이 자기들끼리 사탄 숭배 의식을 집행할 때 쓰려고 이 버가모 제단을 확보해 둔 것이 아닐까?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많다. 다만 나는 그렇게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유물은 대체로 사라지지 않고 박물관의 자랑거리가 된다는 사실만 말해두고 싶다.

 

2. 건축가 추세프(Stjusev)1924년 이 사탄의 제단을 모방해서 레닌의 묘를 만들었다.

 

레닌(Lenin)의 미라가 당당히 누워서도 사탄의 권좌에서 버가모처럼 호령하고 있는 이 사탄의 성소를 보기 위해 많은 방문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전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인류의 공적으로 전락한 이 사탄을 위해 세워진 기념물 안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수호 성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국제 공산당 운동의 잔인한 선구자에 대한 기념물이 당사자만에 국한된 성지일까? 역설적으로 레닌의 아버지 묘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성구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빛이 모두에게 비추고 있다라고 새겨져 있다. 이 얼마나 극명한 父子간의 대조인가!

(참고서: 리처드 웜브브란트(Richard Wurmbrand), 마르크스와 사탄(Marx and Satan), 150-152 내용 전재)

 

레닌의 비밀

마르크스의 이면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거의 모르는 비밀이 있다. 레닌은 "반세기가 (p. 71).지났어도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마르크스주의자는 한 명도 없다라고 기록했다(Walter Kaufmann, Hegel, Garden City: Doubleday, 1965, p.268).

 

그러면 레닌의 비밀이란 무어인가? 웜브란트 역시 한 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레닌이 사탄 숭배와 무관하다고 여겼다. 레닌의 친구 트로츠키는 레닌이 16세 때 목에 걸고 다니던 십자가 목걸이를 짓밟고 침 뱉었다고 기록했다. 이 행위는 사탄 숭배 의식이었다. 레닌은 러시아 작가 고리키에게 신에 관한 생각은 죄, 해악, 억압, 전염병보다 더 위험하다고 써 보냈다. 그런 레닌은 사탄이 연방을 제어하는 힘이 되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간다. 이 불가사의한 힘의 지배를 받아 살아 온 레닌은 죽음을 앞두고 고백했다.

 

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였고, 그들의 피가 바다를 이루었다. 나는 그 바다에서 표류하는 꿈을 꾼다. 되돌리기는 머무 늦었다. 우리나라 러시아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 열 명만 있어도 러시아를 구할 수 있었을 터인데.”(p.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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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