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과 WCC

역사 : 2019. 12. 22. 16:10

해방신학과 WCC

 

리차드 웜브란트는 <Marx and Satan> 끝에서 그리스도교와 마르크스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배타적 관계에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 공산주의는 종교를 부르주아지 경제 체제 하에서의 계급 지배의 도구인 아편으로 보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연계의 현상에 대한 몰이해적 공포에서 형성된 종교가 프롤레타리아 체제 하에서는 자연히 소멸되게 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를 향한 변증법에 의해서 종교를 박멸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명령이라고 보아 잔인한 종교 박멸과 박해의 입장을 취한다. 무신론과 유물론 및 폭력혁명론에 입각한 저들의 철학의 출발은 사랑의 그리스도교 종교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웜브란트는 그리스도교회 내 해방신학과 세계교회협의회와 마르크스주의의 밀착관계를 경고하였다. 특히 그는 가톨릭교회 지도층이 이 밀착관계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자칭 선지자라는 가톨릭 신부 카르데날 (Ernesto Cardinal)의 주장을 예시하였다. 카르데날은 공산주의와 하나님 나라는 같다고 본다. 그가 그리스도교와 공산주의를 혼합시키고자 하는 시도에 관한 진술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마르크스주의는 기독교의 열매이다. 기독교가 없다면 마르크스주의는 불가능할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없었다면 마르크스는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교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 곧 가톨릭노동자 사제와 혁명가들 모두 성령께 직접 영감을 받은 것 같다.” ‘나에게 성경의 하나님은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를 통합하려는 일반적 경향에서 나온 결과이다.“

나에게는 공산주의와 하나님 나라가 같다.”

 

혁명주의 신학자 다수가 형식적으로만 가톨릭교회에 소속되어 신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웜브란트는 지상 낙원을 추구하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츠 등의 해방신학자들은 공산주의 승리를 예수님 재림과 똑같게 여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그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가 공산주의 게릴라들에게 수 년 동안 돈을 대주었다고 하면서 WCC의 좌경화를 예리하게 경고하고 있다.

 

해방신학

해방신학은 초기 남미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에 의해 주창되기 시작했다. 1960년 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로마 가톨릭 신학자 등에 의해 체계화 되었다. 이 신학은 북미에서 흑인신학 세계에, 그리고 남미와 제 3세계에 파고들었다. 이 해방신학은 인민의 빈곤, 사회적 불의, 정치적 독재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기독교 신학에 도입한 정치 신학적 이론을 펼쳤다. 이 신학사상은 전통적 기독교 신학에 도전하고 신학의 목적을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구속적 은혜를 통하여 죄인을 회복하기 보다는 지상의 유토피아 건설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과격한 신학사상이 1970년대 한국의 복잡한 정치지형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해방신학에 근거하여 마르크스주의의 투쟁적 행동(프락시스)도 불사하였다. 이 신학은 1974년부터는 한국화된 민중신학으로 발전하였다. 민중신학은 해방신학과 같이 기독교의 구원관을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해석하여 가난으로 부터의 해방, 독재로부터의 해방 등의 목표를 추구하였다. 그들은 출애굽 모티브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구원 개념을 사회적 변혁을 통한 구원(해방)으로 해석하는 특징을 지녔다. 해방신학은 억압 받는 인민을 위하는, 그리고 민중신학은 민중을 위하는 특수계층의 사람만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 있다.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은 원천적으로 참된 해결의 신학이 되지 못한다. 이 사상들은 성경의 근본교리까지도 왜곡시키는 과격한 사상이다.

 

WCC (The World Council of the Church)

1948년에 스탈린은 평화공존의 구호를 내 걸었다. 이는 그리스도교 서구사회를 적화시키려는 전략 및 전술의 일환이었다. 이 평화 공존 구호는 그리스도교가 전쟁을 싫어하고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속성에 파고들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소련은 1949년 폴란드의 바르샤바(Warszawa)에서 세계평화연맹(WPC)를 결성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구미 여러 나라들에서 일련의 회합이 개최되었다. 드디어 소련이 주도권을 장악한 WPC1957년에 기독교평회협의회(CPC)를 창설하였다. 이는 박해를 통한 예속 대상으로 다루었던 그리스도교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선전 도구로 이용하는 정책의 전환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는 자유주의 신학과 급진 정치신학 같은 현대 그리스도교 내 좌경신학 노선에 파고들었다. 특히 현대 에큐메니컬 운동에 거점을 내리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왔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전 세계 복음화 운동으로 그리스도교계의 공동체 의식 발전과 교회 간의 협력증진을 통한 교회 연합을 지향한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공동의 적 등장에 대처하는 일이 필요하였다. 인본주의 등장, 세계대전으로 인한 불안정, 무신론에 토대를 둔 국제 공산주의 운동, 파시즘과 나치즘과도 같은 초국가주의(super nationalism) 등장,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동방종교 등 타 종교의 갱신발전 추세가 그리스도교의 결속을 재촉하는 역할을 하였다. 교회 안으로 밀려오는 세속주의의 파도는 서구 교회의 공동(空洞)화 현상을 유발하여 그리스도교회의 최대의 적이 되어 왔다.

 

대주교 죄더볼름은 에큐메니컬 연합교회 운동에 있어서 그 역할이 컸다.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 IMC), 1925년 스톡홀름에서의 생활과 봉사(Life & Work ) 세계회의, 1927년 로잔에서의 신앙과 직제(Faith & Order) 등 일련의 회합들이 개최되었다. 이들 회의에서는 세계와 관련을 맺고 있는 교회 강조, 전쟁 배격, 그리스도인의 정치, 경제, 사회, 윤리적 책임과 각국 그리스도인의 공동전선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사회 문제에 대한 통일된 입장 추구하였다. 드디어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의 기치를 내건 회합에서 WCC가 탄생하였다. WCC 회의는 이전 회의체들을 흡수하여 가면서 전 세계적 거대 기구로 탈바꿈하여갔다.

19542Evanston<예수그리스도 - 세상의 희망>기치 아래에서는 163교파 참여하고 하나님의 선교를 강조하였다. 또한 분열을 정죄하고 급진적 운동을 추구,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 평신도 역할 강조, 저개발국가 문제 등을 다루었다. 3New Deli(1961)에는 198 교파들이 참여하였으며 그 중에는 러시아 정교회와 동구라파 공산국가 교회도 참여하였다. 여기서는 제3세계 문제 및 저개발국가 문제, 정치적 독립과 민족주의 문제 등을 다루어졌다. 4Upsala (1968) 회의는 인종차별 문제, 사회적 및 경제적 정의 문제, 선교를 위한 합동작전 등을 다루었다. 5Nirobi (1975)에는 286교파 747명 참여 중에 해방신학, 타 종교 대표들 옵서버들도 포함되었다. 이들은 자유의 의미를 정치적 자유로 축소시켰다.

6Vancouver (1983)에는 3000개 회원교회의 4억 신도들 대표들이 일치를 위한 조치, 교회의 치유와 나눔, 평화와 생존 위협에 대한 대처,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 등을 다루었다. 10차 부산총회(2013)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기치 아래 134개국 140여개 개신교파의 총대 700명을 포함한 2800여명의 해외 지도자들 참석하였다. 이 부산 집회는 한국보수진영의 지속적 반대 가운데 진행되었다.

부산총회 선교선언문에는 종교다원주의적 경향을 탈피치 못 하였고 동성애도 차단하지 않았다. 평화에 있어서도 정치적인 평화 개념에 치우쳤으며, 정의 개념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종교개혁적 정의를 의미하지 않고, 독재정권에 의해서 박탈당한 시민권의 회복을 뜻하고 있다. 또한 생명에 대하여서도 영원한 초자연적인 생명(zoe)과 자연적, 생물적인 생명(bios) 구분이 분명치 않게 나와 있어 생명에 대한 진정한 성서적 구원 이해가 결핍되어 있다. 그리고 한반도 선언서에 북한의 인권조항 반영 안 되었다.

 

이런 일련의 회의들에는 공산권 산하 허수아비 교회 대표들이 참석하여 각종 활동을 하여 와 WCC가 공산주의에 오염된 증거들이 속속 나타났다. 평화, 자유, 정의 개념에는 성경적 의미가 증발되어 버렸다. 죄악의 문제도 사회적 구조악으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정치적, 사회적 급진 행동주의가 강조되었다. WCC는 회원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초기의 약속을 버리고 오히려 중앙 집권적 초대형교회(Super church)로 지향 및 변신하여 가고 있다.

 

그리고 敎會 자체의 개혁과 성장과 발전을 주제를 뒷전으로 한 채, 사회적 제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사회를 위한 교회로 변신하고 있다. 복음 전도만이 사회 구원 최선의 길이라는 시각을 탈피하고 사회에 도움만 된다면 그 方法이나 內容을 문제시 하지 않는다. 악의 원천이 피상적인 사회문제에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정교 분리 원칙을 깨트리고 권력과 제휴하여 간다.

WCC는 교리적 타협이나 중립성 내지 신학적 자유주의(latitudinarianism)를 토대로 하는 교회연합을 추구하고 있다. WCC가 성경의 영감과 권위성을 이완시키고,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진리(그리스도의 대속사, 동정녀 탄생, 재림, 부활)을 부인 내지 약화시켰다. RC의 마리아론이나 교황의 수위권에 굴복하는 신학적 절충주의 내지 타종교를 other faith라고 칭하면서 수용하는 혼합주의를 지향하여 왔다. 더 나아가서는 WCC는 성서적 교회관으로부터 이탈하고 문화사적 교회관으로 변신하였다. WCC의 교리적 자유주의(latitudinarianism)는 정통신학을 무력화 시킨다. 함께 생명을 향하여는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 구현을 위한 세상 변혁 목적으로 세상에 준 선물이라고 정의한다. 예수의 선교 대신 하나님의 선교활동 곧 세상 변혁 노력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한다고 본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속적 개념으로 변질 시켜 나간다. 교회의 선교란 정의, 평화, 인간화, 혁명투쟁, 선행, 환경보전, 생명 충만 등 같은 일을 하나님의 일로 보고 신자들은 이런 선교의 도우미로 부름 받았다고 한다. WCC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꿈꾸어 온 지상천국 곧 이상적인 인간사회이다. 부산총회는 이 나라가 정의, 평화, 생명, 생명 충만을 위한 변혁 활동을 통해 실현된다고 선포했다.

 

WCC는 유토피아의 꿈으로 끝난 마르크스주의적 이상사회 건설과 변혁을 강조한다. WCC가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들에게 거액을 지원한 용공주의 활동도 하나님의 나라건설에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WCC는 선지자적 사명을 앞세우면서도 공산주의 통치자들의 억압, 핍박, 비인도주의 행위에 대하여 침묵해 왔다. 하나님의 나라 곧 정의, 평화, 인간화가 공산주의 강압통치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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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