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바벨론의 권력과의 제휴 사례들

 

로마의 정복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로마법의 정신> 벽두에서 로마는 세계를 세 번 지배하고, 세 번 세계를 통일하였다. 1차는 로마 민족의 무력에 의하여 국가의 통일을 성취하고, 2차는 로마제국 몰락 후 종교에 의하여 교회의 통일을 가져오고, 3차는 로마법의 계수(繼受)의 결과로서 법률의 통일을 가져왔다고 기술했다. 로마가 세계를 세 번 정복했다는 것 중에 종교로 정복했다는 것은 로마 가톨릭교로 정복했다는 뜻이다. 로마 제국의 붕괴와 함께 로마의 무력 지배는 끝났지만, 가톨릭교회의 교황청은 막강한 권력으로 유럽 여러 나라의 황제들을 지배하였다. 로마 가톨릭은 중세 유럽을 지배하였고 오늘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가톨릭이라는 단어 자체가 보편성을 말해 주고 있다. 로마법은 게르만법과 함께 대륙법의 양대 지주를 이루어 오늘날까지 전 세계 법질서의 기간이 되어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운의 교황 비오 6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13:3). 첫 짐승이 죽게 되리만큼 상처를 입었으나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13:12).

 

1789프랑스 혁명 발발 후 교회 재산의 국유화, 정교분리를 선포한 프랑스 혁명정부가 교회법을 정면으로 무시한 각종 법령을 시행해 갔다. 1789년 종교의 완전 자유화, 1791년 수도원 폐지와 성직자의 신분을 교황청이 아닌 프랑스 국가에 종속시키는 일련의 정책으로 프랑스 교회와 정부의 관계가 경색되어 갔다. 1792년 이래 교황의 뜻을 따라 신앙을 지켰던 많은 신자들과 성직자, 수도자들이 혁명 정부의 공포정치에 의해 단두대로 처형당하였다. 이성을 노틀담의 여신으로 삼고, 1793년에는 모든 종교 철폐가 선언되었다. 이런 위기의 복잡한 정치 상황에서 교황 비오(Pius) 6(1775-1799 재위)는 성직자 단합 등을 추구하며 인권선언 및 성직자 관련 국가법을 정죄하고 혁명 반대 연맹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지지선서를 한 뒤이었기에 때는 늦었다. 프랑스 교회는 분열로 치달았다.

결국 1796년 로마 주재 프랑스 공화국 영사가 살해당하자,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의 로마 진격으로 이탈리아 북부의 교황령이 상실됐고, 급기야 1798년에는 부하 장군 Berthier에 의하여 교황이 납치되기에 이른다. 포로가 된 비오 6세는 프랑스 여러 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1799년 최후를 마쳤다. 이는 교황권이 권력과의 결탁에 실패한 결과이다. 그리고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라는 예언의 성취이다.

1798년은 1260년 예언기간이 마치는 때이다. 그의 재위기간은 18세기 교황들 중 가장 길었지만, 혁명의 와중에 그의 생애는 비극적이었다. 이리하여 교황권은 큰 타격을 받아 요한계시록 13:3에서 예고한대로 마치 죽게 되리만큼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교황권의 상처의 치유 회복이 곧 시작되었지만 그 회복 속도는 느려 여러 해가 걸렸다.

 

교황 비오 11

교회법 학자 출신 교황 비오 11(1922-1939 재위)는 일련의 비밀협상 과정을 통하여 1929년 이탈리아 정부와 라테라노 조약(Concordat 政敎和約)을 체결하는데 기여했다. 그는 이 조약을 통하여 바타칸 시는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임과 가톨릭을 이탈리아 국교로 인정받았다(이 국교 지정은 1984년 삭제되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거액의 채권 및 현금 보상이라는 재정적 타결도 이루어졌다. 조약문 제1조에 의하면 교황 중심적 로마 가톨릭교가 유일한 국가 종교가 된 것이다. 이 조약은 독일과도 1933년에 Reichskonkordat이름으로 체결되었다(교황의 역사 p. 245, 261 참고). 이는 교황권이 권력과의 결탁의 전형적 사례를 말해 주고 있다. 죽게 된 상처가 회복되어 간다는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다.

 

비오 11세는 1937319공산주의 비판 회칙 (ENCYCLICAL OF POPE PIUS XI ON ATHEISTIC COMMUNISM)을 발표하였다. 비오 11세의 공표한 회칙은 공산주의 문제점을 잘 요약 비판하고 있다. 회칙은 전 세계 교회에 대하여 교리나 도덕, 규율적인 문제를 다룬 교황의 사목교서(공식문서)이다. 그리스도교의 교훈을 오늘의 사회나 윤리적 문제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교리적이고, 사회적이며 권위를 지니고 있다. 모든 신자는 그 교리나 도덕적 내용에 대하여 동의해야 한다.

비오 11세는 동 사목교서에서 '천주교가 어둠의 자식들인 공산주의에 속아선 안 된다'고 엄중한 경고를 하였다. 그는 '천주교가 어둠의 자식들인 공산주의에 속아선 안 된다' 강조하였다.

회칙 앞부분에서는 볼셰비키의 무신론적 공산주의의 오류들과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후반부에서는 이미 친숙한 개념, “인간 사회”(civitas humana)의 참다운 개념을 이성과 계시가 가르치는 바에 따라, “민족들의 스승”(Magistra gentium)인 교회의 입을 통해서 인간 사회의 올바른 개념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맨 앞부분에 다룬 내용 일부를 인용 및 성찰키로 한다.  

 

(1) 무신론 체계 비판

지극히 기만적인 덫을 속에 숨기고 있는 현대 공산주의 신조는 본질적으로 이전에 마르크스로 대변되던 변증법적 역사적 유물론의 원리들 위에 세워져 있다. 볼셰비키 사상의 이론가들은 자기네만이 유물론의 순수한 해석을 전수받았노라고 자처하고 있다. 이 학설에 따르면 세계에는 하나의 實在(실재)가 있을 따름인데 그것이 물질이며, 물질의 맹목적 힘이 식물, 동물, 인간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까지도 실은 같은 양식으로 진화하는 물질의 현상 또는 형태라는 것이다. 냉혹한 필연의 법칙으로, 영구적인 힘의 대립을 통해서 물질은 계급 없는 사회라는 최종 종합을 향하여 움직여나간다는 것이다.”

  

 비오 11세는 공산주의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고 하면서 공산주의가 무신론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물질과 정신, ()사이에 차이가 없고, 사후의 내세 생존의 희망도 여지가 없다. 그리고 유물론의 변증법적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사회 여러 계급들 사이에 일어나는 적대관계를 첨예화하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계급투쟁과 그것에 뒤따르는 폭력적 증오와 파괴가 인류의 발전을 위한 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조직적 폭력에 저항하는 한 일체의 다른 힘들은 인류의 적으로서 말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공산주의가 보는 인간과 가족

공산주의는 인간에게서 자유를 박탈하고, 인간 인격에서 일체의 존엄성을 빼앗으며, 맹목적 충동의 분출을 막는 도덕적 제어를 전부 치워 없애고 만다. 집단에 대한 개인의 권리 따위는 인정되지 않는다. 인격체에 돌아가는 천부적 권리란 없으며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개인 인격이란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하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공산주의자들은 절대 평등의 원칙을 주장하면서 모든 위계와 신적 기원을 갖는 권위를 배척하며 심지어 부모의 권위까지도 무시한다. 인간이 권위와 복종이라고 일컫는 것은 오로지 집단으로부터 유래된다는 것이다. 개인에게는 물질 재화나 생산 수단에 대한 사유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것이 ()의 축적 원천이 되고 그 소유는 인간이 다른 인간 위에 권력을 형성하는 근거가 된다는 명분에서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모든 형태의 사유 재산 제도는 근절되어야 할 것이니 그것이 모든 경제적 예속의 기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산주의는 인간 생명에서 성스럽고 영적인 성격을 전혀 배격하는 논리적 귀결로서 결혼과 가족을 순전히 인위적이고 민법상의 제도요, 사유재산제도라는 경제 체제의 산물로 간주한다. 따라서 개인이나 집단의 변덕스러운 처사에 귀속되지 않는 법윤리적 성격의 혼인 인연이란 존재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혼 관계라는 개념은 저절로 무너지고 만다. 공산주의는 여성을 가족과 가정에 매는 구속을 배척한다는 데 특징이 있고 여성 해방을 근본 원칙으로 내세운다. 여성은 가족과 자녀 양육으로부터 격리되고 그 대신 남성과 똑같은 여건 하에서 공공 생활과 집단 생산에 투입된다. 그리하여 가정과 자녀 양육은 집단체로 이관되는 것이다. 끝으로 교육의 권리도 부모에게 인정되지 않는다. 교육의 권리는 집단의 독점적 특권이며 부모는 집단의 이름으로, 집단의 명령에 의해서만 이 권리를 행사한다

 

그러나 이 회칙은 오늘날 얼마나 구속력을 지녔을까? 중세 이래 로마 가톨릭의 권력지향적인 행보는 오늘날도 상대방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던지 상관할 바가 아닌 것으로 비쳐진다. 이미 라틴 아메리카에서 발전시킨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주의 방식을 원용하였다. 후대 교황권이 이 회측에 따라 나가고 있는가?

 

또한 비오 11세는 뭇소리니 파시스트 정권 하에서 강하게 밀어붙인 반 셈족 운동에 대하여는 침묵으로 나갔다는 비평을 면치 못하였다. 이는 교황이 타협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나치스에 대하여는 1937년에 회칙 <With Burning Anxiety> 작성하였다. 그 문서를 비밀리에 보내 독일 가톨릭 강단에서 읽혀지기를 희망했다. 그렇다고 고난당하는 유대인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그 대신 예수회 잡지 America의 편집자 John LaFarge에게 인종주의적 정책에 대한 비편을 작성케 하였으며, 정의에 관한 회칙 초안을 작성케 하였다. 그러면서도 피오 11세는 유대인들의 참담한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 동 초안은 공표되지 않은 채 파묻혔다. (참고Garry Wills, Papal Sin, Doubleday, 2000, pp. 29-32). 이는 권력지향적인 교황권의 한계를 엿보게 하는 일이다.

 

교황 비오 12

교황 비오 12(1939-1958년 재위)는 역시 히틀러(Adolf Hitler)홀로코스트를 자행하였든 시기에 철저히 침묵했다. 바타칸은 선전기관을 통하여 비오 12세가 교서 Summi Pontificatus를 통해서 나치의 독일의 폴랜드 침공을 반대했다고 사람들을 속였다(에드몽 파라, 예수회의 비밀역사, 말씀보존학회, 2014, p. 228-229). 그의 홀로코스트에 관한 침묵에 관한 단행본(카를로 팔코니(Carlo Falconi), 비오 12세의 침묵, Le silence de Pie ΧΠ 》이 출판될 정도이다. 영국 작가 존 콘웰은 1999<히틀러의 교황>에서 비오 12세를 반유대주의자로 묘사하고, 그가 유대인 대학살에 침묵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기의 침묵에 대한 일체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Papal Sin, p. 66). 프레드릭 호페트(M. Frederic Hoffet)에 따르면 히틀러, 괴벨스, 예수회의 신부 히믈러 및 나치당의 주요 인사들은 모두 가톨릭 교도들이었다(예수회의 비밀 역사, 268, 270).

 

히틀러가 600만 유대인들을 학살한 것과 로마가톨릭교회와의 관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히틀러는 전통적 로마가톨릭교회 가정에서 양육 받으면서 자랐다. 그는 가톨릭 성당의 미사에 정규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또 미사 때 신부를 돕는 복사(alter boy)로 활동도 하리만큼 열성적이었으며 한 때는 사제가 되기를 소원하였다. 그는 소년 시절 Lambach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 학교에 다녔다. 불행하게도 동 수도원의 원장은 오컬트(Ocult)와 동양의 신비주의 심취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히틀러는 훗날 채택한 불교도의 (만자)를 변형시켜 자기 정권의 기호로 삼았다. 권력의 정상에 오른 다음에도 로마가톨릭교회 예배 참석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참고, Dave Hunt. The Roman Catholic Church and the Last Days: A Woman Rides the Beast (Eugene, OR: Harvest, 1994). 275]. VaticanHitler의 이 유대인 대학살을 알고 있었으나 침묵하였다. 현재까지 바티칸은 학자들이 홀로코스트 학살에 관련된 당시의 문서 접근을 금하고 있다. 바티칸이 당시 대량학살을 제일 먼저 알고 있었다는 것은 정평이다. 그러면서도 이를 공론화하지 않고 쉬쉬하여 왔다. 히틀러의 SS요원 ¼이 로마가톨릭교회교인이었다. 나치의 이 학살극의 악랄한 하수인들 대부분은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이었다. 전 후에 이들의 피난처를 바티칸으로 삼았다. 계명을 바꾸고 변경하고 쪼갠 로마가톨릭교회는 살인을 금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렇게 유린한 것이다. 작은 뿔이 종말 시대 성도들과 싸워 짓이긴다는(7:21) 성경의 예고를 예행 연습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교황 비오 12세는 동유럽과 중국에서의 공산당의 가톨릭 박해 및 학살에 대하여도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대한 선대의 반대 기조는 교황이 된 이후에도 그 형해는 유지되었지만, 파시스트와 타협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에는 사제들이 공산주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던 프랑스의 노동 사제 운동도 공산주의적 성격이 있다는 이유로 금지했다. 그러나 이런 저지선은 고수되었는가?

비오 12세의 권력 제휴는 양면적이다. 그가 1939~1944년 사이 3,000명의 유대인 난민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나치1942네덜란드주교들이 '조국에서 압제자들에 의해 유대인들에게 자행되고 무자비하고 부당한 대우'를 규탄하는 문서를 발행한 것을 빌미로 사제수도자300명을 아우슈비츠로 보내어 처형한 일을 계기로, 공적 성명을 발표하여 나치를 자극하여 박해대상을 구하거나 돕는데 지장을 주지 않으려 했다. 1942년 성탄 사목교서를 통해 유대인, 집시, 슬라브족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나치의 박해 행위를 에둘러 규탄하며 전 인류가 그들을 구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나치 히틀러의 권력과 밀착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히틀러도 비오 12세를 존중하였다. 로마 가톨릭과 전체주의 국가들과의 긴밀한 관계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실상이다.

 

비오 12세는 제2차세계대전 중에 독일의 침략 전쟁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명확한 비난을 표명한 적이 결코 없으며, 독일은 물론 그들의 동맹국에 의하여 저질러진 만행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비오 12세에게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18~19세기에 조선 조정은 조상제사 거부를 빌미로 천주교도들을 가혹하게 박해하였다. 그 탄압이 조상숭배를 하는 민중의 호응을 얻거나 적어도 큰 반감을 자아내지 않게 한 결정적인 이유는 전통적인 장례문화와 가톨릭 교리와의 충돌 때문이었다. 그런데 로마 교황청은 1939년 제일성성훈령(第一聖省訓令)을 통하여 동아시아의 전통적 문화인 조상 제사신사 참배가 과거와는 달리 문화적 요소로만 남아가는 추세로서, 그리스도교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공표하므로 조상제사에 대한 조건부 허용을 인정하였다. 이는 그 때까지의 조상 제사를 거절하여 순교당한 사람들을 잘못 교도한 결과가 되어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자가당착의 저변으로부터 권력에 맞서는 일을 피하려는 로마 교황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중국정부와 타협하는 교황청

김원율 안드레아는 교황청의 신임 주한 교황대사 임명과 중국 가톨릭교회의 문제글에서 교황청의 전체주의 국가와의 비밀 협약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다음 내용은 그의 글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다.

 

2018228일 제13대 주한 교황대사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제1비서를 지낸 알프레도 수에레브 몬시뇰이 임명되었다. ‘몬시뇰’(Monsignor)이라함은 원로 성직자 중 덕망이 있는 신부에게 교황청이 부여하는 호칭이다. 수에레브 몬시뇰은 1984년 서품 받은 후 라테라노 대학교, 교황청 국무원을 거쳐 전임교황 베내딕토 16세의 제2개인비서를 지냈고 2013년부터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제1비서를 지낸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외교관 경력이 전혀 없는 인사를 교황대사로 임명한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신임 주한교황대사는 1951년 이후 단절된 중국과 바티칸 간의 수교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바티칸은 중국이 아닌 타이완과 1942년 이후 국교를 맺고 있다. ‘하나의 중국원칙을 내세운 중국과 바티칸이 수교할 경우 타이완과의 외교 관계를 포기하느냐가 교황으로선 딜레마다. 타이완 내 가톨릭 신자들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중국 정부는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국가수반이기 때문에 교황이 중국의 주교를 임명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 주장해 왔다. 중국 정부는 1957년 이후 중국의 가톨릭 신자를 관리하기 위해 중국 천주교 애국회를 만들었고 주교와 신부를 중국 정부가 임명해 왔다. 그러나 교황청은 중국 천주교 애국회소속 교회와 주교활동을 인정하지 않았고 수많은 중국 가톨릭 신자들은 지하교회에 속하여 활동해 왔다. ‘주교 임명권은 중국과 바티칸이 1951년 외교를 단절한 최대 원인이었다.

 

현재 중국 가톨릭은 교황이 임명한 40명의 주교가 관장하는 '지하 교회'와 중국 정부가 임명한 7명의 주교가 이끄는 '공식 교회'로 이원화돼 있다. 공식 교회는 '중국 천주교 애국회' 소속으로 철저히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의 통제를 받는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지하 교회 교인들과 교황이 임명한 주교들은 극심한 탄압을 받았고 지금도 감시와 투옥이 되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청이 지난 1년 반 접촉을 통해 주교 임명권에 대하여 중국 정부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077년에 일어난 신성로마 제국 하인리히 4세 황제가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에 굴복한 카놋사의 굴욕에 반대되는 역() 카놋사의 굴욕으로 비유될 수 있다. 교황이 시황제로 불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굴복한 것이다.

바티칸의 중국과의 화해 노력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하 교회 주교 2명의 교구에게 교황청이 2011년 파문까지 했던 애국회 주교들에게 양보하라고 지시하자, 홍콩의 조셉 젠(陳日軍) 추기경(86)"예수에 대한 배신이고 교회를 팔아넘기는 행위"라며 맹비난하였다. 첸 추기경은 또한 교황이 중국지도자들의 본성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해 지하교회를 배신하는 추악한 협의를 하였다.”고 말하였다. 또 이달 중순엔 홍콩의 인권·학계·가톨릭 인사 15명이 "공산당이 임명한 7명의 주교를 인정하면 '제한적 자유'도 보장받지 못하고 교회의 도덕적 권위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공개서한을 전 세계 주교들에게 보냈다.

미국 정부도 교황청이 중국 정부가 한 주교 임명을 '사후(事後) 승인'하는 일이야 말로 인권과 종교 자유문제에서 중국 정부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교황청은 '지하 교회' 신자를 보호하고 중국 가톨릭의 통합을 위해선 화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천주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교회와 국가의 역할을 구분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는 말로 교회와 국가의 고유한 역할을 구분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2005년에 발표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God is Love) 28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분합니다. (마태오 22, 21 참조)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표현대로 현세 사물의 자율성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신앙의 사회적 표현으로서 고유한 독립성을 지니며, 국가가 인정하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그 신앙의 토대위에 세워져야 합니다.”그러므로 교회가 국가의 권력을 빼앗으려고 해서도 안 되고 빼앗을 수도 없듯이 국가도 교회의 고유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특히 예수를 따르던 열두 제자의 사도적 사명을 계승하는 주교는 교황만이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중국에 한해서 임명권을 양보한다는 것은 가톨릭교회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것이다.

한국 천주교의 좌익 정치 사제들

대수천<대한민국수호 천주교인모임> 이계성 대표는 고등학교 교장 출신이다. 그는 오늘의 한국 천주교는 좌익 정치 사제들로 인하여 공산혁명 기지화되어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의 한국 천주교 바로잡기 운동은 많은 천주교 신도들의 호응을 받아 왔다. 그는 친북 내지 종북 활동을 하는 정치 사제들의 명단을 작성 공표하면서 그들의 좌익 활동을 들추어내고, 천주교 본래의 정체로 회복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좌익정치사제가 망친 천주교회 대수천 신자들이 지킨다’ (52019.05.31- [뉴스타운TV])]. ‘이계성의 구국의 소리는 그 단적인 예가 된다 현상은 전대 교황의 회칙을 무시한 처사로 비쳐진다.

 그 구체적 내용은 대수천홈페이지(http://www.catholicsuho.com/)에 나와 있어 여기서는 몇 사례만 간추려 소개하고 나머지는 독자가 직접 들어가 읽어보기를 바란다.

어느 교구 주교는 헌법재판소가 올해 201412월에 내린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에 대해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나치독일 판사들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언급하면서, 당시 판결을 한 헌법재판소를 두고 나치독일 사법부에 비유하며 맹비난했으며,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했다.

또 다른 신부는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평양이나 금강산, 개성 등을 합하여 100여차례 북한 땅을 밟았다고 한다. 대수천이 북한 지원 명목으로 수십 차례 북한을 들락거린  어느 신부를 후일 촛불 난동을 일으킨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 대수천은 한마디로 싸가지 없고 예의 없는 신부를 보면 108,9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라는 비평도 날리고 있다. 대수천은 음란에 빠져 성폭력을 자행한 일을 자행한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을 소개하면서 정의(正義)구현사제단인가, 정욕(情慾)구현사제단인가?‘라고 시니컬한 질문을 하고 있다.

 

나가면서

로마 가톨릭은 바티칸의 교황 수장권을 중심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일을 추구해 왔다.  그리고 그 수장권 여부에 따라 교회의 정통성 여부를 판단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황의 수장권이 얼마나 병들었는가 하는 점을 교황의 위상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통하여 확인했다.

그런데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7710일 가톨릭교회만이 진정한 기독교 교회임을 강조하는 교황청 문서를 공표하였다. 이 문서에서 교황은 로마 가톨릭 교회만이 유일, 진정한 기독교 교회" 이며 다른 모든 기독교 종파는 결함이 있거나 제대로 된 기독교가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동 문서는 그리스도는 지구상에 오직 하나의 교회를 세웠고 이는 가톨릭교회로 존재한다” “다른 교파들(정교회, 영국 성공회, 개신교)에게 과연 교회의 자격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이 문서의 배포와 관련해 1965년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논의된 기독교 각 종파 간의 관계가 "잘못" 해석됐다고 말했다. 교황청은 이렇게 교황의 최고 권위성과 로마가톨릭교회교회의 정통성을 선포한 것이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작은뿔이 신속하게 회복되어 예전에 구사하였던 권위와 권세를 21세기에도 행사하겠다는 신호탄이다.

교황의 권위의 출처는 교황의 사도적 계승(Apostolic Succession)에 있다. 이 주장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첫 교황으로 임명한 이래 안수를 통하여 그를 계승한 후대 주교(교황)에게 신품권, 교도권, 및 사목권이라는 교권이 계승되어 왔으며, 그 단절이 없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은 이 사도적 계승이 없는 교회나 교단은 정통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엘렌 화잇은 진정한 사도적 계승을 두고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아브라함의 직계 혈통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같은 정신을 가지고 같은 일을 행함으로 나타나게 될, 그와의 그런 영적 연결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그의 자손이 아니었다.

이 원칙은 오랫동안 그리스도교계를 소란스럽게 해온 사도적 계승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똑같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의 자손됨은 이름이나 혈통으로써가 아니라 성품의 같음으로만 판명된다. 그러므로 사도직의 계승은 교권의 전달에 의존되는 것이 아니요 영적 관계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도들의 정신으로 움직여 행동하는 생애, 사도들이 가르친 진리를 믿고 가르치는 것, 이것이 참된 사도직을 계승한 증거이다”(DA 467).

 

마지막 시대 하나님의 참 교회를 식별하는 10가지 기준을 아래에 예시한다.

(1) 성경은 마지막 때의 남은 백성들을 예고하고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12:17).

(2) 용이 분노하는 대상이다. 그들은 당대에 환영 받지 못하는 박해의 대상이 되는 백성들이다 (12:17; 5:11-12)

(3) 하나님의 성도들이다(14:12).

(4)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이다(14:12). 이들은 성서의 진리에 토대를 둔 개인 적 믿음을 지닌 자들이다.

(5)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다(14:12). 그들은 성화를 지향한다.

(6) 예수의 증거를 신뢰하는 백성들이다(12:17; 19:10).

(7) 인내하는 백성들이다(14:12; 5:7-8; 벧후 1:6; 고전 1:4-8).

(8) 재림의 소망을 가진 백성들이다(2:13-14; 요일 3:3).

(9) 종말론적 사명을 전하는 메신저들이다(14:6-12).

(10) 범세계적 복음선교 운동을 하는 단체이다(14:6-7; 10:11).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