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우리부부가 <각 시대 대쟁투(GC)> 을 읽으면서 너무 비극적인 예루살렘 모습에 다시금 충격을 받고, 이런 기사의 역사적 사실성을 재확인 차 <요세푸스 전쟁기>를 읽었다. 엘렌 화잇의 예언적 통찰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하나님을 등진 결과이며 자멸이었다(GC 36쪽은 이 자멸을 분명하게 못 박고 있다.) 요세푸스에는 이런 예언적 통찰이 나오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멸망과 세상 마지막 상황을 겹쳐 놓았다. 요세푸스 전쟁기를 읽은 다음에는 그것이 한국 사회의 이전투구 정치정세와 오버랩 되어 자주 눈앞에 어른거린다. 권력을 잡고자 광분하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뛰며 서로 물고 뜯는 일은 선거를 앞두고 SNS를 통하여 더욱 치열하여 질 것이다. 이런 일의 종착점은 자멸이다. 고구려가 망한 것도 자멸이었다. 세상 끝의 묵시적 체험 한 단면을 우리는 앞 당겨 보고 있는가?

<5권에서>

1. 세 파당들의 이전투구(14)

예루살렘이 망하기 직전에 3개의 서로 독립적인 파당들이 반 로마군 전선에서 서로 물고 뜯었다. , 엘르아살파, 요한파, 시몬파 이렇게 3개의 파당이다. 거룩한 첫 소산을 장악한 엘르아살파는 주민들의 약탈을 일삼던 요한파와 싸웠고, 요한파는 시몬파와 열렬히 싸웠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식량 공급을 받은 시몬은 다른 두 파와 대항하며 싸웠다. 요한이 양쪽에서 공격당했을 때, 그는 공격해 올라오는 자들에게는 회랑에서 창을 던지면서 격퇴시켰고, 반면 성전에서 공격해오는 자들에게는 갖가지 공격무기로 대항했다. 위에서 공격하는 자들이 지치고 술 취해서 공격이 중단될 때면 요한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몬파를 공격했다. 그는 또한 접근할 수 있는 몇몇 장소를 공격하여 곡식이나 다른 물건들이 가득찬 집들을 불 질렀다. 시몬 역시 이런 짓들을 감행했다. 요한의 공격이 없을 때 예루살렘곳곳을 습격했다. 마치 이들은 로마군을 돕기라도 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시가 포위공격에 대비하여 쌓아둔 식량을 불사르고 로마의 세력 확장에 신경 거스르는 것들은 모두 제거해 버리는 것 같았다. 따라서 성전 주위에 있던 곳들은 전부 불타버리고 황량한 불모지가 되었으며, 몇 년 동안 포위공격에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곡물은 모두 불타 없어졌다. 따라서 이런 자멸 방식으로 기근이 몰아닥친 것이다. 그리하여 도덕도, 인륜도 실종된 채 양식을 강탈하는 참혹한 비극이 연출되는 운명으로 전락하였다.

(24)

한편 예루살렘시 안에 있는 3개의 파당들의 상호 알력과 분쟁은 점점 더 심해 갔으나, 서서히 그들에게 로마군이 총공격해 오는 것을 알자 처음으로 내분을 자제했다. 서로 경쟁적인 파당들은 로마군이 세 곳에 진을 쳤다는 것을 알고 당황하였으며, 어색하게 동맹을 맺기로 하고 서로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를 상의했으며, 혹은 3개의 요새를 건축하기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적은 요새와 같은 새로운 시를 건설하는데 그들은 성벽 뒤에서 적들이 훌륭하고 노련하게 작업하는 것을 구경꾼마냥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서로서로 싸우는데만 궁금하여 우리들의 내분 때문에 로마군이 무혈입성하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 전쟁이 일시적으로 소강(小康)상태에 있는 동안 파당들이 다시 내분을 시작했다. 애굽에서부터 나온 첫 해방을 기념하는 유대인의 명절로 무교절인 크산티쿠스(Xanthicus)[히브리 민족의 니산월(3-4)에 해당하는 마게도냐의 달().] 14일이 돌아오자 엘르아살과 그의 무리들은 성문을 열고 성전 안으로 경배드리려는 시민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한은 이 명절을 자신의 반역 음모를 위한 기화로 삼아서 대부분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는 좀 어수룩한 자들을 무기를 감추게 하여 무장시켰다. 요한은 그들을 몰래 성전에 들어가게하여 성전을 먼저 장악하도록 하게 했다. 그들은 성전 안에 들어가자 의복을 벗어버리고 갑자기 무장한 군사로 돌변했다. 성소의 주변은 곧 난장판이 되고 극도로 혼란하였다. 주민들은 모두를 무차별 학살하는 줄로 생각했으며, 열심당들이 자기들만 공격하여 죽이는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열심당들은 성문을 수비하지도 않고 난입자들이 가까운 지역으로 오기도 전에 그 싸움터를 떠나 성전의 지하 동굴로 도망갔다. 반면 경배드리러 온 자들은 제단 옆에 움추리거나 성소 주위에서 뒤죽박죽 아우성을 쳤으며, 발로 짓밟히고 칼과 막대기로 정신없이 맞았다. 아무 죄 없는 많은 시민들은 증오나 개인적인 유감 때문에 반대 파당의 당원으로 오인되어 죽음을 당했다. 또한 과거에 요한 일당을 공격했던 자들은 열심당으로 인식되어 처벌을 당했다. 한편 무죄한 자들은 죄인처럼 심하고 거칠게 다뤄졌고, 난입자들은 죄인들에게 휴전을 보장했으며 그 죄인들이 지하 동굴에서 나오자 그냥 가게 내버려두었다. 성전의 안뜰과 성전에 있던 모든 무기들을 갖게 된 그들은 시몬과 싸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그 후로 3개의 파당의 내분은 다시 2개의 파당의 싸움으로 축소되었다.

2. 기근, 강탈, 아사(103)

음식물을 먹는 광경은 비참하고 애통스러웠는데, 강한 자는 자기 몫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약자는 흐느껴 울기만 했다. 사실 기근이 인간의 모든 감정을 파괴시켰는데, 특히 수치심을 가장 많이 사라지게 했다. 평상시에는 존경을 받을 사람들도 경멸을 당할 짓을 했다. 그래서 부인들은 남편에게서, 아이들은 아버지에게서 음식을 낚아채 먹었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가련한 것은 어머니가 아이들의 입속에 있는 것을 빼앗아 먹는 광경이었다. 어머니들은 품안에 사랑하는 자식들이 야위어 가는데도 그들의 생명을 연명시키는 한 조각의 음식까지 빼앗아 먹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빼앗아 먹으면서도 들킬까봐 도망쳤다. 왜냐하면 여기 저기 도처에 반역자들(강도떼들)이 이 불쌍한 이들의 음식을 약탈하러 배회했기 때문이다. 강도떼들이 문 잠긴 집을 보면, 이것은 그 집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있다는 표시라 생각하고 당장에 문을 부수고 들어가 입속에 있는 조금 밖에 안되는 음식물까지 꺼내게 했다. 노인들은 음식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것을 꼭 붙잡은 상태로 구타당했고, 여자들은 손에 음식물을 감추고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다녔다. 노인이나 어린이에 대해서도 동정은 전혀 없었다. 강도떼들은 어린이들이 음식조각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매달리면 위로 들어서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들이 약탈할 것을 예견하고 그들이 기대한 약탈물을 삼켜버린 자들은 당연히 내놓아야 할 것을 사취한 자로 여겨 더욱 잔인하게 대했다. 강도떼들이 음식물을 찾아내기 위해 고안한 고문방법은 잔혹했다. 그 방법은 불쌍한 피해자들의 몸의 통로들(요도, 항문등)을 콩을 쑤셔넣어 막아버리고 뾰족한 막대기로 몸을 사정없이 찔렀다. 한 조각의 빵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도록, 혹은 한 줌의 보리를 숨긴 곳을 실토하도록 고문을 가했다. 그들이 당했던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 이야기만 들어도 소름이 끼칠 것이다. 고문을 하는 강도떼들은 굶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정말 배가고파 그런 고문을 했다면, 잔인함은 덜했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무모함을 실습하고 앞 날에 대비하여 자신들의 식량을 비축하려고 했다. 만일 한 밤중에 주민들이 야생 식물이나 풀을 뜯기 위해 로마군 초소지역까지 살며시 기어가기라도 하면, 강도떼들은 그들을 쫓아 따라 갔으며 주민들이 이제 강도떼들에게 멀리 떨어져 방해받지 않는다고 안심하는 순간에 강도떼들은 주민들이 뜯은 것을 손에서 낚아채 버렸다. 주민들이 심지어 경외스러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얻은 풀을 돌려달라고 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떼들은 주지 않았다. 주민들은 빼앗기고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족하게 여겨야 했다.

3. 예루살렘에서 죽은 사망자들의 수(137)

내가 유대인들의 참상을 자세히 이야기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라자루스(Lazarus)의 아들인 만나이우스(Mannaeus)가 유대인들이 내란을 당한 바로 그때 티투스에게 도망쳐 왔는데, 그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자기가 맡고있던 성문 하나를 통해 운반되어진 시체만 해도 115,880명에 이르며, 그 숫자는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진을 쳤던[전쟁. 5. 3:5(133).] 크산티쿠스(Xanthicus) 14일부터 파네무스(Panemus)월 사이에[즉 주후 7051일과 720일 사이(Niese).] 죽은 사망자 수인 것이다. 사망자들은 전부 가난한 계층에 속했다. 만나이우스는 이 일을 직접 관할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시체 운반을 위한 공금을 지급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체의 숫자를 셀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친척들이 장례를 치러 주었으며, 장례라야 겨우 시체를 끌고 나가서 성 밖으로 던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만나이우스를 뒤따라 많은 저명한 예루살렘 시민들이 티투스에게로 도망쳐 왔다. 그들의 보고에 따르면, 성문을 통해서 내던져진 하층 계급의 시체들 숫자만 해도 총 600,000명에 이르며, 나머지 시체들에 대해서는 숫자 파악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탈주한 저명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즉 가난한 자들의 시체를 운반하는데 힘이 부치면, 그들은 가장 큰 집(mansion)[혹은 '방들'.] 시체들을 쌓아 올리고 문을 잠갔다는 것이다. 또한 곡물 한 되가 한 달란트(talent)에팔렸으며, 도시가 전부 성벽으로 에워싸여져 있어서 나중에는 풀(잡초)조차 뜯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어, 어떤 이들은 하수구(sewer)[이 두가지 드문 단어들은 호머식( ajutw'n : '일리아드'. 21. 259, o[nqo" : 23. 7757)의 표현이다.] 오래된 소똥(Cow dung)까지[혹은 허드슨과 다른 사람들과 같이 ajutw'n을 남성명사 ajutw'n으로 취하고 있다. 중성명사 ajutw'으로는 위에 번역한 것같이 된다. ). , 고대. 15. 6:4(182)에서의 '들어가기까지'(mevcri tou'de proelqei'n).] 뒤져서 부스러기를 먹을 정도로 궁핍함에 시달렸던 것이다. 전에는 쳐다보기조차 싫어했던 것들이 이제는 먹는 음식이 되었다. 이러한 처참한 이야기는 로마군의 동정심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러나 처참함을 직접 목격한 강도단들은 측은히 여기지도 않았으며 계속해서 최악의 상태로 상황을 몰고 갔다. 왜냐하면 강도단들은 그들 자신과 예루살렘에 닥쳐온 운명에 의해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6권에서>

4. 기근의 참상(3)

한편 예루살렘 성 안에는 기근으로 죽어가는 희생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생겼으며 기근의 참상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각 집마다 음식이 있다는 기미만 보이면, 그것은곧 싸움이 벌어진다는 신호였다. 가장 가까운 일가라도 목숨을 겨우 연명하는 음식물을 서로 빼앗으며 주먹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못 먹어서 거의 다 죽어가는 자라 할지라도 음식이 없다고 말해도 믿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강도들은 먹지 못해 곧 죽어가는 자들까지 낱낱이 뒤졌으며 혹시 그들이 옷 속에 먹을 것을 숨기고 죽는 척하는 짓은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이 악당들은 마치 미친개처럼[). 시편기자의 미소. "저휘로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저희는 식물을 위하여" 59:14이하.] 배고픔으로 멍하니 입을 벌린채 비틀거리며갈지()자로 걸으면서 술취한 사람처럼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으며, 배고픔에 너무 견디다 못해 한 시간에도 두 세 번씩 같은 집에 난입하여 샅샅히 뒤졌다. 굶주림으로 어쩔 도리가 없자, 그들은 어떤 것이든 먹을 수 밖에 없었으며 가장 더러운 짐승들조차 먹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을 손수 모아다 먹었다.

이리하여 결국 그들은 허리띠나 신발도 마다 않고 뜯어 먹었으며 방패의 가죽조차도 씹어 먹었다. 어떤 사람들은 건초 더미를 씹기도 했으며, 몇몇은 나무줄기를 모아 적은 양을 아덴의4 드라크마(drachmas)[돈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처럼 헬라어로 나와있지 않다. 전쟁.2. 21:2(592). 아덴의(Attic)드라크마는 노동자 하루 품삯이다.] 팔기도 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을 막론하고 역사에 있어 전대미문(前代未聞)[요세푸스가 왕하 6:28이하에 나오는 사마리아 공격과 병행된 사건을 간과한 것은 이상하다. ). 28:57과 바룩서 2:2이하. '예루살렘에 발생한 이런 큰 질병은 하늘 아래 없을 것이며모든 남자들은 그의 자녀를 고기로 먹을 것이며'.] 말하기 조차 끔찍스럽고 들어도 믿기 어려운 행동을 기록하는 이 마당에 기근으로 인해 먹을 수 없는 물건들까지 부끄러움 없이 먹어야 된 사실을 내가 왜 굳이 말했겠는가? 나는 후세 사람들이 내가 이상한 끔찍스러운 날조된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나 의심할까 두렵다.[또는 "나는 자손들에게 의심받지 않기를 바란다그리고 정말 나는 기쁘다".] 만일 내 당대 사람들 가운데 이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많지 않았다면 나는 기꺼이 이러한 비극적 참상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나의 조국이 실제로 당한 이같은 재난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조국에게 찬사를 돌리는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기록한 것이다.

5. 자식을 잡아먹은 어머니 마리아(Mary)

한편 요단강(Jordan) 건너편 지역에 살던 거주자들 가운데 마리아(Mary)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엘르아살(Eleazer)로 베데수바(Bethezuba)마을 출신이었다. (베데수바는 "히솝의 집"(House of Hyssorp)이란[히브리어는 벧 에솝(Beth Ezob):장소가 불분명함.] 뜻이다) 마리아는 가문이나 재산에 있어 유명인사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도망쳐 왔다가 예루살렘 포위에 갇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페라이아(Peraea)에서[트랜스요르다니아(Transjordania).전쟁.3. 3:3(44).] 짐꾸려 가지고 온 모든 재산은 폭군(강도)들에게 모두 약탈당했다. 그녀의 남은 귀중품들과 힘들게 구한 식량들은 강도들이 매일 약탈해 갔기 때문에 모두 빼앗기고 없었다. 마리아는 몹시 분개해서 욕설을 계속 퍼부었으며 그래서 강도들도 맞서 마리아에게 화를 냈다. 그러나 강도들은 이에 격분했거나 동정을 했거나 간에 다른 식량을 찾아 헤매는데 지쳐 누구도 그녀의 목숨을 건드리는 자는 없었다. 어느곳에서도 먹을 것을 구하기란 불가능했다. 기근은 그녀의 창자와 뼈속까지 고통에 사무치게 만들었으며 배고픔보다 심지어 분노때문에 가슴이 타게 되었고 이러한 격분과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자, 마리아는 결국 윤리 도덕에 벗어나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마리아는 품안에 있는 어린 아들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오 불쌍한 아가야! 전쟁과 기근과 내란 속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너를 보호해야 하겠니? 로마군이 성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우리가 살아 있다 해도 노예의 신분이 되는 것이고, 아마 노예가 되기 전에 기근으로 죽게 될 것 같단다. 그러나 노예 신분과 배고파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강도들이란다. 자 아가야! 이리와서 내 음식이 되어다오. 그래서 강도들에게는 복수의 분노를 보여주고, 세상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의 재난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되어다오. "이말을 하고 마리아는 아들을 죽여서 몸을 구운 후에 반은 먹고 반은 싸서 감추어 놓았다. 이때 강도들이 냄새를 맡고 그녀에게 들이 닥쳐서는 만들어 두었던 음식을 내놓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마리는 그들을 위해서 충분한 양을 남겨 놓았다고 대답하면서 뜯어 먹다 남은 아들의 시체를 펴 놓았다. 강도들은 이 광경을 보고 끔찍스러워 어안이 벙벙한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이에 마리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들이요. 내가 손수 만든 요리란 말이요. 내가 금방 이 요리를 먹었으니 당신들도 먹어 보시오. 여자보다 더 나약하거나 어머니보다 더 측은히 여기는 모습을 보이진 마시오. 만약 당신들이 내가 아들을 죽인 것을 불쌍히 생각하고 양심의 가책이 된다면, 당신들의 몫을 내가 먹었다고 생각하고 남은것은 그대로 손대지 말고 가시오.

그러자 강도들은 겁에 질려 떨면서 남은 인육(人肉)을 마리아에게 남겨두고 떠났다. 이 가증스러운 사건은 예루살렘 전체에 곧 퍼졌으며 주민들은 모두 그러한 끔찍한 사건을 상상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그 일을 저지르기라도 했던 것처럼 공포에 몸을 떨었다.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은 죽기를 매우 갈망하면서 차라리 이러한 무섭고도 끔찍한 사건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그 전에 죽은 자들을 부러워하였다.

6. 포로들과 사망자들의 통계(93)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면서 시작되어 예루살렘이 파멸될 때까지의 모든 전투를 통해 포로로 잡힌 전체 인원은 97,000명에 이르렀으며, 사망자의 숫자는 1,100,000명에 이르렀다. 그들가운데 대부분은 유대인이었지만, 예루살렘 시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유대의 각 지역에서 무교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인 자들로 갑자기 로마군과의 전쟁에 휘말린 유대인들이었다. 따라서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게 되어 처음에는 전염병이 생기게 되었고, 후에는 기근까지 겹쳐 더 급속도로 떼죽음을 당하였다. 예루살렘에 아주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케스티우스(Cestius)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통계 자료에 의해 분명해진다. 케스티우스는 유대를 경멸하는네로를 예루살렘이 강하다는 것을 설득하고 싶어서 대제사장들에게 가능한 방법으로 인구 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하였다. 따라서 유월절(Passover)이라 불리는 유대인의 명절에 유대인들은 제9시에서 제11시까지 제사를 드렸는데, 그때 잡은 제물의수를 계산하면 인구조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혼자서 제물을 바치는 것은 허용이 안되었고, 가족 단위로 최소한 10명 이상이 한조가 되어 각각 제물을 드렸으며, 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조가 되어 제물을 바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따라서 대제사장들이 희생된 번제물의 숫자를 셀 수 있었고, 그 수는 255,600마리에 달했다. 제물 한 마리당 평균 10명으로 계산하기만 해도 거룩하고 정결한 유대인들은 전부 총 2,700,000명에[본문 또는 계산상의 오류. 합계는 2,556,000이 될 것이다.] 이르렀던 것이다. 게다가 문둥병이나 임질에 걸린 자들, 혹은 경도(經度)하는 여인들이나 그 외에 불결한 자들은 유월절에 함께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모든 사람들을 제외하고 계산한 유대인들의 수만 계수하였는데도 최소한 2,700,000명에 달했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경배하려 예루살렘에 찾아온 이방인들도 이 숫자에서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 예루살렘시에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