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계시와 언어
I. 언어의 의미 및 기원
언어는 인간이 자기 속에 있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는 체계이며, 사물, 행동, 생각, 그리고 상태를 나타내는 체계이다. 이 언어로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언어는 공동체 내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의 집합으로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의미들의 체계이다.
인간은 의사전달의 상징에 의미를 부쳐 그것을 음성으로 표출, 전달한다.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에는 사고(思考)가 담겼다. 동물들이 자기들의 뜻을 전달하는 음성을 발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언어와는 그 양상이 판이하게 다르다. 이 언어능력 여부가 인간과 동물의 중요한 차이점이 된다.
뜻을 전달하는 언어는 삶을 활성화시키는 요소가 된다. 그것은 인간의 우정적 교제의 따사로움을 느끼게도 한다. 그리고 불투명한 상황을 극복하게도 한다. 그러기에 버나드 램(Bernard Ramm)은 “소리가 없는 세계는 시야가 없는 세계보다 더 절망적이다”고 하였다. 농아인에게도 수화(手話)라는 언어의 도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사회의 공동체는 언어라는 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다. 언어는 사회의 성립 조건이 된다.
하이데거는 그의 서신 [인간주의에 관해서](uber den Humanismus)에서 존재의 언어성(linguisticality of being) 을 주요한 주제로 다룬다. "언어는 존재의 집(Das Haus des seins)이며 인간본질의 거처이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언어(sprache)란 단순한 이해수단, 의사소통수단만은 아니다. 언어는 그에게 존재가 그 안에서 자신을 조명하면서 언어화하는 매개이다. "존재는 비약하면서 표현된다"(Das Sein Kommt, Sick lichtend,Zur Sprache). 여기서 인간은 더 이상 언어의 창시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언어가 없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이를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존재의 부름에 대한 응답자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존재를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존재가 인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이런 언어 개념에 근원을 두고 있다.
언어의 기원은 창세기 서두에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말씀”이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언어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목적은 바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과 사랑의 관계를 갖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언어는 처음부터 인간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은 하나님께서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화의 파트너가 되고, 언약의 파트너도 되었다. 우리는 그 언어가 어떤 형태의 언어 이었는지를 알 수 없다. 언어가 없이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상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담은 지나가는 동물들에게 각각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역시 언어활동이었다. 언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이 언어를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하고 예배하며 찬양한다.
아담 이래 그 자손들의 언어는 하나였다. 노아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도 바벨에서 언어가 갈라지기 전까지 분명히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어라.”(창 11:1). 바벨탑 이야기(창 11:1-11)는 언어의 혼란이었다. 오순절은 바벨탑의 혼잡스런 언어 치유의 징표가 되었다. 오순절에 듣는 자들이 자기 언어로 들었지만, 다 이해되었다.
II. 특별계시의 언어 형식
특별계시와 언어 사이에는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 특별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 수없이 나타나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과 같은 형식과 이에 유사한 표현들은 계시가 언어형태로 주어지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자와 사도들의 언어를 통하여 전달된다. 그리하여 그들의 말씀은 곧 여호와의 말씀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신다(요 1:1-3, 14).
하나님의 음성은 예언자에게 침묵 속에서 내적으로 들려오기도 한다. 특히 성령께서 말씀하신 경우가 그렇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행 10:19) (참고, 행 8:29; 13:2).
하나님의 음성은 예언자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들려 오기도 한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삼상 3:4).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암 3:8).
말하는 형태가 협동적 영감(concursive inspiration)인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형태에는 예언자나 사도가 신적 영감 의식 없이 말하거나 기술하고 성령께서 그 말하고 기술한 것에 감동을 주신다. 복음서, 사도행전, 및 편지서는 이같은 협동적 영감의 소산물인 경우가 될 수 있다. 바울이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전 7:40)한 것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워필드는 성경이 성령 저자와 인간 저자가 함께 흐르는 책이라고 했다. 워필드의 이런 이론을 동류설(협동설)(concursive theory)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 속에서 우리가 성경이라고 부르는 자유롭게 작성된 인간의 저작들을 감독하사 그 결과로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전적으로 참되다.”
III. 특별계시의 성문화(成文化)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출 34:2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렘 30:2).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 1:19).
언어로 표출된 특별계시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여 왜곡되거나 망각 내지 변질 되기 쉽다. 그래서 특별계시의 내용을 문자(grapē)에 담아 놓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계시의 성문화(inscripturation)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1. 신(神) 지식 및 구속의 경륜에 관한 정보의 교류와 후대전달
언어의 공간적 및 시간적 제약을 언어서 당대 인간 및 후대 인간들에게 특별 계시 내용이 전달되어야 한다.
2. 전달 내용의 항구성과 내구성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20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신 11:18-20).
3. 보편적 전달
4. 권위 있는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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