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복 이론과 조정이론
구속복 이론과 조정이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19-21)
위 두 성경절이 시사하고 있는 중요한 점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우리에게 더 확실한(made more sure, made more certain, more fully guaranteed) 예언”이 있고 그것을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되는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에 있다. 성경은 통상적인 인간들의 문학 작품 보다 더 신뢰할만하다는 근거는 성경이 예언적 무류성(prophetic infallibility)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게 마련이다.
I 예언적 무류성을 설명하는 두 이론들
이러한 예언적 무류성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제기되어 왔다.
복음주의 보수 그리스도인들과 재림교인들 사회에서 성경 영감이론들을 크게 둘로 나누면 그 하나는 이른바 구속복 이론(the strait-jacket theory)과 조정이론(The intervention theory)이다.
1. 구속복 이론(The Strait-Jacket Theory)
이 이론은 성령께서 예언자들을 감동하는 영감과정에서 그들을 엄정하고 빈틈없이 통제(control)하시어 어떤 유형의 과오이든지 그것을 사전에 차단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는 마치 야구선수가 평균 70-80% 이상의 히트를 치면 나머지 20-30%의 에러는 문가 안 되는 정도와는 달리, 성경 예언자가 100% 무 에러 히트를 해야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이런 시각에서는 영감의 무오(inerrancy) 이론이 주요 관삼사가 된다.
참 예언자는 예언의 적중률, 즉 예언정확지수(PAQ, prophetic Accuracy Qoutient)가 100%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언자는 그가 전에 말하거나 기록한 내용을 도무지 바꿀 수 없다고도 부가한다.
이런 영감 철학적 사상은 Rene Noorbergen의 작품에 나타난다. 그는 예언자의 의식이 “초자연적 존재에 의하여 지배 받아 어떤 에러나 인간적 계산착오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의 이론은 재림교회 내 일종의 근본주의 기류를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조정이론(The Intervention Theory)
이 이론은 하나님의 예언자가 그 인간적 요인으로 과오를 범한다면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교회 방향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어느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나 교리의 순수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의 성령은 즉각 개입, 예언자에게 감동을 주어 과오를 바로 잡게 하므로 항구적인 손상이 유발되는 것을 막는다. 이 입장은 성경과 엘렌 화잇의 저술의 객관적 실재성과 일치하게 한다. 그리하여 이 시각에서는 성경 영감의 무류 이론을 옹호한다.
진리 확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더 확실한” 구속복 이론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또 다른 사람들은 조정이론에 동조할 것이다.
우리는 질그릇에 담긴 보화를 지녔다(고후 4:7).
엘렌 화잇은 성경의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의 연합 모델을 제시하였다. 성경은 계시된 진리와 인간이 선택 활용하는 언어라는 질그릇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성경에도 존재한다. 계시된 진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들의 언어로 표현되고 인간의 필요에 적절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요 1:14)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불리신 것처럼 하나님의 책이라고 불리려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성경을 대적하는 하나의 논지(論旨)가 되기는커녕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을 굳게 해 주어야 한다.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신적(神的)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성경의 영감을 주장하지만, 반면에 다른 부분들은 인간적인 것이라 해서 거절하는 자들은 신성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접촉하시기 위하여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신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인간의 구속(救贖)을 위한 하나님의 사업에는 신성과 인성이 결부되어 있다”(5증언, 747).
보화는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 또는 메시지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류한 계시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을 기속하는 규범이 되는 권위성을 지녔다. 엘렌 화잇은 하나님만 무류하다고 하였다. “오직 하나님과 하늘만 무류하다(infallible)”(1기별, 37). 인간은 불완전하다. “인간은 무류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무류하다 (Man is fallible, but God's Word is infallible.)”(1기별, 416).
II. 예언자의 무오성 문제와 개인적 삶
예언자들은 죄인들로 인간적 차원에서 불완전한 점들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1. 아브라함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은 예언자라고 공표하였다(창 20:7). 신구약성경은 반복하여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벗도 되었다(약 2:23). 그러나 그는 되풀이 하여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하는 반쯤은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사라의 권고를 받아 들여 하갈을 둘째 아내로 맞았다. 이러한 일들은 그의 믿음의 결여를 나타낸 것들이다. 이런 시험들을 이겼더라면 모리아산에서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Spirit of Prophecy, 1:98).
2. 야곱
야곱 역시 예언의 선물을 받아 자손들의 미래를 통찰 전망하는 축복을 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아버지를 속였으며 후에 회심의 체험을 하였다.
3. 다윗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다(삼상 13:14; 행 13:22). 그리고 예언자였다(행 2:30). 그러나 그는 우리야를 죽였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았다.
4. 예레미야/요나/ 엘리야
예레미야는 주와 쟁론하며 불평하는 질문을 하였다(렘 12:1; 15:15-18). 요나와 엘리야는 의무의 길에서 도망하였다.
5. 베드로
베드로는 3회씩이나 예수를 부인하였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회식하다가 할례자가 두려워 물러가 피하는 외식을 범하였다(갈 2:11-14).
성령께서는 예언자들의 삶을 관장하시었지만 그들이 실수와 과오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과오로 인하여 그들의 예언적 선물이 무효로 되는 것도 아니었다. 베드로는 우리가 더 확실한 예언자들의 삶을 지닌 것이 아니고, 더 확실한 예언을 가졌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과오를 바로잡는 조정을 하시면서 그들을 통하여 확신한 예언의 선물을 맡겨 일하게 하시었다.
III. 예언적 말씀과 무오성(inerrancy) 문제
성경 시대의 예언자들이나 현대의 예언자의 진술들을 검토할 때 세 가지 범주의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곧 성취되지 않은 예언,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과오, 및 주요한 과오의 문제들이다.
1. 성취되지 않은 예언 문제
참된 예언자 여부를 측정하는 4대 지표 중 하나인 예언의 성취 여부(신 18:22; 렘 28:9)에 따라 평가한다면, 어느 예언자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은 경우 참된 예언자일 수 없다.
요나는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욘 3:4)하고 예언 하였다. 여기 이 예언에는 어떤 조건성도 나타나 있지 않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욘 3:5). 니느웨 사람들이 재앙으로 멸망당할 것을 전망하며 기다리고 있던 요나는 자기 예언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심히 싫어하고 노하였다”(욘 4:1). 외형적으로 요나는 거짓 예언자가 된 셈이다. 후에 니느웨는 다시 배도의 길을 걸어 후에 멸망당하였다.
예언에는 조건성 요인이 명시적으로 또는 함축적으로 내재하는 경우가 많다. BC 950년 아사랴의 예언에는 조건성이 분명하게 나온다.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 15:2). 예레미야의 예언에도 명시적인 조건성이 언급되어 있다(렘 18:7-10). 모세의 예언에도 조건성 언급이 나온다(신 4:9; 8:19; 28:1-2, 13-15). 어떤 경우에는 그 성취가 영적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도 한다.
EGW은 1856년 5월 23-26일 베틀크릭 집회를 마친 후, 27일(화)에 대부분 교역자들에게 말씀하는 중 계시를 보았다. 23-26일 집회에 참석한 회중 가운데 벌레 밥이 될 자들과 살아서 7재앙을 통과할 자들이 있다는 예언을 하였으나(1T 127-137), 그 불발은 화잇 여사의 예언적 진정성을 의아하게 하는 예로 사용되어 왔다. 그 당시 예언을 들었던 회중들 중 최후 생존자(William C. White)가 83세로 죽은 때가 1937년이어서 7재앙을 통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WCW이 예언 당시 팔에 안긴 갓난아이였었다. 후에 회중 명단을 제시하며 누락자가 있는지 묻는 인사에게 EGW은 그 명단을 때의 징조로 사용하지 말라고 응답하여 예언의 조건성을 시사하였다. EGW의 1856년 예언에는 요나의 예언처럼 조건성이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2.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과오(불일치)
(1) 성서적 예
은 30에 팔린다는 예언을 마태는 예레미야의 예언으로 언급하였다(마 27:9-10). 그러나 동 예언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아니고 스가랴의 예언이었다(슥 11:12-13).
빌라도가 마련한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붙인 십자가상의 죄 패 내용에 대한 복음서 기자들의 표기도 상호간 불일치한다.
마태가 묘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과 누가가 진술한 이적 사이에는 그 순서에 있어서 일치하지 않는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설교를 요약하고, 누가는 복음전도자 입장에서 예수께서 가르친 진리를 묘사하고 있다.
호밥이 모세의 처남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고(민 10:29), 모세의 장인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삿 4:11). 다윗이 이새의 여덟 째 아들로 나오기도 하고(삼상 16:10-11), 일곱 번 째 아들로 나오기도 한다(대상 2:15). 누가복음 3:36에 나오는 가이난은 창 11:12에 나오지 않는다. 히브리서 9:19에서 바울이 진술한 첫 언약 비준에 관한 설명은 출애굽기 24:3-8과차이가 있다.
(2) 이러한 불일치에 관하여는 성경난제 풀이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연구자들이 각기 다른 시각에서 조화롭게 설명을 시도 하여 왔다. 그렇지만 질그릇에 역점을 둔 인간적 불완전을 클로스 업하는 대상으로 남용되어 오기도 하였다. 질그릇 속에 담긴 보화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3. 주요 과오 문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성전 건축에 동의한 나단(삼하 7장, 대상 17장)의 잘못을 곧 바로 잡았다. 또한 바울이 그리스도의 즉각적 재림 신앙을 강조한 데살로니가전서와는 달리 데살로니가후서에서는 먼저 불법의 사람이 등장할 것을 예고하도록 교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구원에 관한 좁은 베드로의 시야를 넓히는 조정을 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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