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은혜의 연속성
율법과 은혜의 연속성
“律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恩惠와 眞理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위 본문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이제 구약의 율법 시대와 신약의 은혜 시대의 대조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새 시대를 소개한 것처럼 된다. 본문은 율법에 대조되는 더 높은 차원의 은혜와 진리를 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모세의 율법은 예수의 은혜로 대체되었는가?
혹자는 <율법이냐, 은혜냐?>라는 대결 구도로 본문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니다. 율법과 은혜는 상반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함께 작용한다. 율법은 우리에게 필요를 보여 주고, 은혜는 그것을 채워준다. 은혜는 우리에게 용서를 제공하고, 율법은 우리의 의무를 가리킨다. 구약은 구원자의 도래를 예언하고, 신약은 이 예언을 성취한다. 요한복음은 예수와 모세의 율법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은혜와 진리의 근원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잘못된 해석에 반대하셨다.
Van Rooyen은 “The Covenants: A Developmental Approach" 논문(Ministry지 2004년 2월호)에서 하나님께서 인류와 체결하신 영원한 언약의 발전 과정에 나타난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분석 검토한 글이 오늘의 본문이해에 빛을 더 해 주고 있다. 도토리는 도토리나무 안에 들어 있다. 도토리나무가 도토리는 아니다. 요한이 복음서 시작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와 같은 개념이다.
“말씀이 肉身이 되어 우리 가운데 居하시매 우리가 그의 榮光을 보니 아버지의 獨生子의 榮光이요 恩惠와 眞理가 充滿하더라”(요 1:14). 요한이 여기 이 본문 끝 부분에서 증거하고 있는 사상을 “우리가 다 그의 充滿한 데서 받으니 恩惠 위에 恩惠러라”(1:16)로 확장시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은혜가 계속되어 결코 마르지 않는 점이 마치 엘리사 선지자가 제자 중 한 사람이 죽어 과부가 된 여인이 기아선상에서 호소하였을 때 남은 한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고 모든 그릇을 다 채우리만큼 계속 흘러 나오 듯 요한은 17절에서 은혜 언약의 발전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에게 주신 율법의 제사제도가 오실 구속자를 예표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구약에 은혜가 결여되었다는 주장은 정론이 아니다. 하나님이 친히 율법을 주셨다. 동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체현인 사랑이 배어 있는 것이다. 본문의 배경은 출 33-34자의 배경을 전제로 하여 이해함이 바람직하다. 이 배경이 되는 시내산 선포에는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인자가 많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宣布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慈悲롭고 恩惠롭고 怒하기를 더디하고 仁慈와 眞實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시인도 이 점을 다음처럼 노래하고 있다.
“主여 主는 矜恤히 여기시며 恩惠를 베푸시며 怒하기를 더디하시며 仁慈와 眞實이 豊盛하신 하나님이시오니”(시 86:15).
요한은 옛날 주신 율법 속에 담긴 의미를 연속선상에서 확장시켜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가 은혜의 인격화가 되어 은혜의 충만한 의미를 들어내시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공로 없이 은혜를 받아 용서 받고 죄악과 싸워 이길 권능을 받으므로 그 분의 은혜야 말로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되는 것이다. 은혜 위에 은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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