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유괴로부터 해방 그리고 안식

 

어맨다 베리(Amanda Marie Berry)10대 때 패스트푸드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 중 전직 스쿨버스 운전기사이었던 아리엘 카스트로(Ariel Castro)에게 유괴되어 10 년간을 보냈다.

베리는 집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창 밖에 있던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밖으로 나온 베리는 911로 전화를 걸었다. “도와주세요. 나는 어맨다 베리예요. 납치됐고, 10년간 실종상태였고, 나는, 나는 여기 있어요, 지금은 자유스런 상태에 있어요.”201356일 밤,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한 주택에서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이웃집에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이 집에 들이닥쳐 여성 3명을 구해냈는데, 놀랍게도 2002년에서 2003년 사이에 클리블랜드에서 실종신고된 사람들로, 23세 지나 디예수스(Georgina 'Gina' Lynn DeJuses), 27세 어맨다 베리, 32세 미셸 나이트(Michell Knight)였다.

카스트로가 이들 모두를 유괴하여 쇠사슬로 묶어 지하실에 가두고 선 노리개로 삼았다. 이들은 10년 동안 다섯 번이나 임신과 낙태를 반복했다. 베리는 딸을 낳기도 했다. 카스트로는 1,000 년을 더한 형무소 생활을 선고 받았지만 판결 후 한 달에 자살했다. 어떤 사람들은 유괴된 사람들이 그토록 장기간 지낼 수 있었던 이유를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위에 동조하거나 변호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렸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Ohio Woman Missing for Years Has daughter," NBC News, May 6, 2013). 어찌하였든지 베리의 심령과 육신은 긴 기간의 유괴에서 참된 쉼이 없었던 고달픈 삶으로부터 벗어났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이후 인간은 영적으로 유괴된 상황에 빠져 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고통과 상실의 쏘는 것에 찔림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본래는 평화를 지향하는 존재로 그리고 결핍이 없는 풍족한 삶을 살도록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죽음의 그림자도 얼씬 거리지 않는 존재이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永遠思慕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3:1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보실 때 좋았더라’(1:31).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사(1:27) 당신과 더불어 영원히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삶에, 그리고 삶의 주변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계속하여 우리 영혼을 괴롭히며 쏘아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이 내가 지향하는 본향이 아니고 순례자가 아닌가 하는 절박성을 감지하면서 살아간다. 순례자의 삶은 고단하다. 쉼이 없다.

우리가 여기에는 永久都城이 없으므로 將次 올 것을 찾나니”(13:14).

 

예수께서는 주신 말씀에는 쉼의 약속이 들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溫柔하고 謙遜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엘리자베스 탈보트(Elizabeth Viera Talbot) 목사는 무려 8년이라는 세월 동안 마태복음 11:28-30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히는 연구를 하였다. 그녀는 이 연구를 자기 PhD. 학위 논문의 주제로 삼은 것이다. 그녀가 2013The University of Gloucestershire에 제출한 210쪽 분량의 학위논문 제목은 "Rest and Sabbath in Matthew’s Gospel: An Investigation of Matthew 11:25-12:14 in the Context of the Gospel’s Theology and Setting (마태복음의 쉼과 안식일: 복음서의 신학과 배경 문맥에서 마태복음 11:25-12:14의 조사연구)" 이었다.

 

에 해당하는 ἀνάπαυσις (anapausis)가 구약 성경 번역서인 헬라어 70인 역에 137회 나온다. 그 용례들에 지배적인 의미가 안식일 쉼(sabatical rest),“ ”지혜의 휴식(the repose of wisdom),“ ”평화스러운 거주(a peaceful dwelling)“ 이다.

예수님은 지혜가 주는 휴식 대신에 복음으로 참된 휴식을 주신다. 12:43에서 아나파우시스는 '휴식처'를 의미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병행구, 11:24).

 

마태는 안식일 계명의 이해의 새로운 장으로 안내하고 인자가 안식일의 주가 되심을 선포하기 직전에(12:1-14) 그리스도 중심의 아나파우시스 해석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70인 역에 나오는 용례에 비추어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동격관계로 병용되고 있는 아나파우시스와 안식일 쉼의 상호적 조명을 발전시키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미래 다윗 왕이 되시어 치유와 쉼을 베푸실 종말론적 사명을 하실 것이라는 새 종교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28절의 쉬게 하리라는 약속에 대한 응답이다. 여기서 얻으리니’(εὑρίσκω)란 원래 찾다’, ‘발견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참 안식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안에 있었고, 또 그분이 주리라 약속한 것을 발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어구는 렘 6:16의 어구를 인용한 것 같다. 거기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고 하시면서 그러면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고 하셨다. 따라서 본문을 이 부분과 연관지어 이해하면 옛적 길 곧 선한 길로 행하려면 예수의 멍에를 메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멍에는 율법학자들이 뒤집어씌운 그런 무거운 짐이 아니라 안식을 가져다주며 평강을 가져다주는 쉽고도 가벼운 것이다.

 

매 주일 다가오는 안식일은 창조와 구속의 기념일이다. 따라서 그 안식()은 고난과 고통이 없는 하늘에 있는 영원하고도 완전한 평화에 향한 거룩한 욕구를 북돋는 축제의 맛보기가 된다. 오늘 소란스럽고 탈진실의 거짓이 난무하는 이 세상은 신자들의 본향이 아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고난의 길이다. 예수께서도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10:34~35)라고 하셨으며,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고 말씀하심으로 그분을 따르는 길이 고난의 길임을 암시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다는 것인가.

 

본문에 나오는 멍에는 내 멍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멍에이며 짐은 내 짐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짐이라는 사실이다. 수고스럽고 무거운 내 멍에와 내 짐을 홀로 지고 고통당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멍에와 짐을 지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멍에는 쉽고 그리스도의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그럼 그리스도의 멍에와 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멍에는 고대로부터 복종의 표시였다. 예수께서 주시는 멍에는 예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죄를 용서받게 하고 우리 죄의 무거운 짐을 벗겨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준다(8:36). 거기에는 영생의 약속이 있고 자원하는 사랑의 순종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멍에와 짐은 쉽고 가볍다.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께서는 다가오는 그 시대 (the age to come)를 지금 여기서 체험하는 것으로 시작하라고 초청하고 계신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그 영원한 쉼의 시대를 보증하는 제안을 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구속적 쉼, 승리와 회복의 대책을 수용하도록 초청하고 계신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