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GPS 송신에 따른 사람

 

현대는 통신 혁명의 시대이다. 그 중의 하나가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라는 위성 항법 시스템이다. 이는 본래 미국 국방부가 개발한 것으로 그 공식 명칭은 NAVSTAR GPS인데 NAVigation System with Timing And Ranging 이라고 하기도 한다. 현재 미국을 위시하여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들에서 무기 유도항법측량지도 제작측지, 시각 동기 등의 군용 및 민간용 목적으로 개발, 사용하고 있다.

 

GPS에서는 중궤도를 도는 24(실제는 그 이상) 인공위성에서 발신하는 3개 이상의 위성에서 송신된 신호를 GPS 수신기에서 수신하여 삼각측량 방식으로 위성과의 거리와 각 위성의 위치를 알아내는 위성항법시스템이다. GPS는 현재 보편화 되어 있는 기술이지만현대 과학기술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될 정도로 고도의 기술력이 집약되어 있는 현대 과학기술의 총아라 할 수 있다.

 

오래 전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이 없었던 시절, 미시간 주 베리언 스프링스에서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할 가족을 영접하러 갈 때 일이 생각난다. 서툰 초보운전에 초행길인데 교통량이 엄청난 시카고 고속도로들을 통과하여 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리를 잘 아는 분에게 가는 지리를 익혀 메모한 것을 운전대 앞에 부착하고 그것을 여러 번 숙지 한 후 간신히 오헤어 공항에 갔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 당시 약도와 주요 지점들이 표기된 메모지는 매우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나의 안전한 GPS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다가 GPS 지도가 장착된 핸드폰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시대로 바뀌었으니 놀라울 뿐이다. 한 번은 처음 찾아가는 교회를 핸드폰 GPS의 지시에 따라 가다가 사창가 골목으로 진입하게 되어 민망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예전 LA 어느 교회 갔을 때 담임 목사께서 두꺼운 지도책 어느 페이지를 펼치고 복잡하게 그려진 거리들을 지나가면서 연신 고개를 돌려 그 지도책을 살펴보며 목적지까지 능숙하게 운전하신 모습이 경이롭게 비쳐졌을 때도 있었는데, 그 시절 이야기는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이 되어버렸다.

 

GPS는 원하는 목적지에 확실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하는 능력을 지녔다. 내가 길을 잘 못 들어섰을 때 금방 다시 계산하여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그 능력은 경탄할만하다. 영적인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공위성을 능가하는 높은 곳에서 여러 가지 GPS로 송신하신다. 성경말씀은 그 분의 GPS가 된다. 여러 사상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는 가운데 인간은 늘 이 하늘의 GPS라는 등불을 켜고 빛이 비치는 것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119:105). 특히 예언적 계시(환상)나 꿈은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이 된다(12:6; 벧후 1:19). 성령의 세미한 음성(왕상 19:12)은 우리에게 음성으로 들려오는 하늘의 GPS가 된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30:21). 이 음성을 듣기 위하여서는 들을 귀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무엘, 예레미야 등 예언자들은 이 음성 듣는 귀를 지녔다.

 

하나님의 GPS 송신에 따르지 않으면서 자기 길을 가는 분들에게 자주 경종이 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은 방황하기 마련이다. 자기가 길을 잘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길이나 방법을 항상 잘 이해한다고 볼 수 없다.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自己의 길을 알 수 있으랴”(20:24).

 

하나님의 계획은 죄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아첨하는 사자들을 보내는 것이 아니며, 성화되지 않은 사람들을 세속적인 안전으로 달래는 평화의 기별들을 전하시지 않으신다. 그 대신에 그분은 행악자들의 양심에 무거운 짐을 두시고 예리한 회오(悔悟)의 화살로 그의 영혼을 찌르신다. 섬기는 천사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그에게 나타내고 부족하다는 느낌을 깊게 하며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16:30) 하는 고통의 부르짖음을 발하게 한다. 그러나 굴욕을 당하게 하시고 죄를 책망하시고 교만과 야심을 부끄럽게 하시는 손길은 회개하고 상한 자를 높이시는 손길이다. 징계를 내리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가장 깊은 동정심으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랴?”고 물으신다.”(선지, 435).

 

우주적 GPS의 지시에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바꾼 이야기가 신약성경 첫 장 끝에 나온다(1:18-25). 신약성경 서두는 다윗 혈통을 소개 하면서 그 다음에 이어서 의로운 사람요셉이 자기 계획과 하나님 계획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요셉은 복음서에서 예수님 외에는 유일하게 다윗의 자손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20). 그는 자기와 정혼(약혼)한 여인이 자기와 관계도 없이 임신한 것을 알자 결별하기로 결심하였다. 요셉이나 마리아는 당대 남은 무리에 속하는 참 신앙인들 그룹에 속하였던 것이다. 요셉은 자기 신앙동지가 잘못을 범했다고 생각할 때 참으로 기가 막혔을 것이다.

 

고대 유대의 결혼 풍속은 3단계로 진행되었다. 먼저 양가의 동의로 약혼이 성립되고, 공적 선언으로 정혼이 성립된다. 정혼은 결혼과 동등한 법적 구속력을 가지므로 파혼하려면, 정식 파혼 증서나 이혼 증서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결혼을 할 때까지는 성관계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약혼자가 정절을 범하면, 간음으로 취급되며 죽음의 형벌에 해당하는 것이다(22:23, 24). 마리아는 이 정혼 단계에서 임신한 것이다. 그러나 의로운 요셉은 石殺刑 등으로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혹독하게 다루기보다는 사랑과 용서의 미덕으로 문제 해결을 지으려 했다. “의로운이라는 그의 품성에 비추어 요셉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살기로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율법의 근본정신에 더욱 충실하게 살아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에게 큰 피해가 돌아가지 않는 사소한 문제를 빌미로 두 사람의 증인 앞에서 그녀의 손에 이혼 증서를 가만히줌으로써 이 일을 조용히 묻어버리려 하였다(19). 요셉은 이렇게 함으로써 의로움과 율법을 무난하게 조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렇듯이 그의 인품은 율법과 사랑이 겸비, 조화 된 신앙 인품을 지녔다. 요셉이 이런 계획을 품고 고민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어 그에게 자기 계획을 포기하도록 주도적으로 지시하신 것이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使者現夢하여 이르되 다윗의 子孫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孕胎聖靈으로 된 것이라”(20).

 

하나님께서는 꿈이라는 GPS를 통하여 송신하신 것이다. 요셉은 두려워했다. 그 이유는 그가 처음에 다른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하늘의 GPS 지시를 받고 상황 파악을 바로 하게 되었다. 마리아의 몸 안에 神人이 성령으로 잉태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구속사적 사건이었다. 세계 창조 시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였듯이(1:2), 재창조의 성령께서 구속주 탄생에 개입하셨다. 상식의 대패로 밀고, 이성의 컴퍼스로 재어 거기에서 남은 것을 믿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GPS 송신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 위에 초자연도 있다. 초자연적 메시지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이지만, 하늘의 신비한 통보를 그대로 받아 따르면 축복이 된다. 우주적 GPS로부터 오는 지시야 말로 구원으로 향하는 가장 안전한 길이 된다. 요셉은 태어날 아들에게 예수라고 명명하므로 왕가의 법통을 이은 자손을 보는 사람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인성의 무죄 확보책이라고 할 수 있는 동정녀 성령 잉태를 과학적 이론으로 분석하고 비판할 수 없다. 그러나 당대 유대인들은 성령으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사건을 음란성 빌미와 배척거리로 삼았다(8:41). 자유주의신학자들은 동정녀 탄생 사건을 비역사적 신화나 전설로 치부하여 버린다. 칼 바르트 같은 신학자도 무용담(saga) 정도로 보아 버린다. G.C. Berkower 같은 조직신학자도 새로운 주권적 활동을 하는 사인(sign)이라는 추상적인 말로 피하여 간다. 이와는 차원을 달리하여 로마가톨릭 측은 마리아 무원죄회태설로 승화시켜 마리아론(Mariology)의 발판으로 삼는다. 재림교 내 그리스도의 인성을 아담 타락 후 인성이라고 핏대를 올리는 완전주의자들은 나실 바 거룩한 이”(1:35)를 깎아 내린다. 이런 여러 시각의 주장들은 하늘의 GPS 송신 메시지에 덧붙이거나 수정한 것들에 불과하다. 다만 요셉처럼 하늘의 지시를 받고 믿고 따라가는 것이야 말로 신앙인의 정로가 되는 것이다. 요셉의 신앙의 위대성이 돋보인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信賴하고 네 明哲依支하지 말라 6 너는 凡事에 그를 認定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指導하시리라“(3:5-6).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