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미래 전망
오늘날의 화두 중 하나는 생체 칩이다. 특히 인간 피부나 뇌에 데이터가 실린 생체 칩을 접합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전문적인 사전 데이터가 담긴 칩이 이식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인가? 우리 앞에 닥친 초지능·초연결 혁명이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오늘 우리 시대는 mRNA(전령RNA) 백신의 시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스파이크(돌기) 단백질을 인체 세포에 결합시켜 감염에 이르게 한다. 화이자 백신은 이 과정을 차단시킨다. 백신은 바이러스의 일부인 스파이크를 만드는 유전 정보인 mRNA를 인체에 전달한다. 그러면 몸 속에서 스파이크에 결합하는 항체가 생긴다. 이후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입하면 백신으로 생긴 항체가 바이러스의 스파이크에 먼저 결합해 감염을 차단시킨다.
생명체의 비밀스런 창조질서 영역에 침투하려는 적군을 물리치려는 싸움의 종점이 무엇이 될는지 예측키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유전학 메커니즘에 그 명운을 매달고 있는 형국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기 속의 유전자 변이나 조작이 가능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래서인지 미국 사람들 약 20%는 이런 mRNA 백신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그 접종을 외면하고 있다고 들린다. 미국 재림교인 약 25% 정도가 mRNA 백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 새로운 현대과학의 총아에 친화적인 사람들도 있고 멀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친화적인 사람들이 더 많아 그 방향으로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적응해 가는 흐름이다. 그 흐름의 끝은 무엇인가?
<트랜센던스(Transcendence)> 시대
<트랜센던스(Transcendence)>는 ‘인간의 뇌가 인공지능 컴퓨터에 업로드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공상과학(SF)영화다. 천재 과학자 윌 캐스터(조니 뎁)가 기술 발전이 인류의 멸망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반 과학단체 ‘RIFT'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다. 그의 연인 ‘에블린’(레베카 홀)은 윌이 죽기 전 그의 뇌 안에 있던 정보를 컴퓨터에 전부 옮겨버리고,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게 하므로 윌의 존재는 세상을 바꿀 힘을 키우기 시작한다. 나노 기술을 사용해 물질은 물론 인간의 신체와 정신까지 마음대로 조종할 힘을 얻은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런 공상적 이야기가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호모 데우스> 출현 예고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년생)는 동 유럽 세속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채식주의자이면서 게이로 알려진 히브리대학 교수이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발전하여 호모 데우스(homo Deus)가 출현할 것이라는 예고를 하였다. 유발 하라리는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에서 『사피엔스』를 자연선택의 법칙이라는 진화론의 입장에서 인류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되돌아보고, 진단하고, 조망고 있다. 그러면서 생물학적 존재인 호모 사피엔스가 생명공학적 존재인 호모 데우스로 대체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처음에는 생소한 그의 사상을 받아주는 출판사 찾기가 쉽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의 작품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있다.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는 그를 이 시대의 사상가로 보고 온라인 북 클럽에 올려 추천하였다.
하라리는 인류 역사를 혁명이라는 시각으로 풀어가고 있다. 인지적(cognitive) 혁명이 약 만 년 전에 시작되어 농업 혁명이 일어났다고 보았다. 앞으로는 인간성 자체가 급진적 혁명(radical revolution)을 겪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우리 사회와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와 인지하는 정신도 생물공학 즉, 유전 공학과 나노기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 변형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다분히 자연선택의 법칙에 토대를 둔 진화론적 패러다임이 과학 혁명을 통하여 사피엔스가 돌연변이적 인지혁명의 미래로 진입할 것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하라리는 그 누구도 그 혁명적 변화의 실체와 전모 과정을 예측하기 어려울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는 소수의 국제적 전문 기업가와 엔지니어 같은 엘리트들이 인류와 생명의 미래 키를 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가 특히 ‘사이보그’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 이론의 초점을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 맞추고 있다. 사피엔스가 500 년 전부터 시작된 과학혁명을 거친 뒤 오늘날에 와서는 인간의 생명을 생물학의 DNA가 아닌 자연과학의 알고리즘으로 해독하고 유기체(인간)와 비유기체(기계)가 결합하는 사이보그(Cyborg, Cybernetic Organism의 약형)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 업그레이드가 가능할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호모 데우스라 불리는 전혀 새로운 종(種)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로서의 시각이고, 인간의 자유 의지를 거부하는 전자과학적 유물론적 시각이라는 문제성을 지녔다.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 등장을 통하여 진화론적 자연선택의 법칙을 따라 생존하던 시대가 끝나고, 지적설계의 법칙에 따라 성취되는 인간 내적 변화가 일어날 신세계를 조망하고 있다. 지난 세기까지 절대자의 주관아래서의 인간 개념이나 휴머니즘 같은 것을 탈피하여 신세계는 극단적으로는 ‘데이터교’ 또는 “데이터주의 교”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정보처리시스템이 주도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오면 인간 개인은 하나의 칩이 내장되어 인간끼리 온 라인으로 연결된 시스템으로 바뀐다. 그렇게 되면 사피엔스 시대에 누렸던 휴머니즘적 정체성을 잃게 되고야 말 것이다. 여기에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의 세상이 도래하더라도 인간이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행복을 잃지 않으려고 ‘의식없는 지능(non-conscious intelligence)’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가? 같은 도전을 하고 있다. 컴퓨터를 접한 인간은 예전에 누릴 수 없는 많은 데이터를 순식간에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상세계에서의 엄청난 분량의 체험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어서 인간의 지식과 능력이 가공하리만큼 확대된 상황이 되는데도 ‘의식없는 지능’에 휘둘린다는 것인가?
결국 인간은 죽음에의 존재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하라리는 테크노-종교들(techno-religions)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옛 종교들이 했던 모든 약속들, 행복, 정의, 번영, 영원한 삶 같은 것들을 약속한다. 하지만 이들 약속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언약적 약속의 성취가 아니다. 내세의 학교에서 그런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여기 지상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라리는 표면적으로는 반(反)종교적, 인본주의적, 생물학적, 생명공학적 인간 이해를 펼친다. 그러나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데우스로 치닫다가 도리어 또 다른 차원의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로 들어선다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하라리에게 전통적 종교관은 신화적인 것에 불과하다. 단지 시카고대학 엘리아데가 일찍이 사용한 ‘호모 렐리기오수스’ 이론을 사이보그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변질된 종교관은 러시아 사상가 베르자예프가 “인간은 태생적으로 종교적”이라고 한 말의 진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 3:11)은 데이터교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알고리즘과 상관없이 종교적이다. 처절하게 종교적이다.
20세기만 해도 상당 기간 정당들은 인류의 미래에 관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비전이 있었다. 공산주의, 파시스트, 자유주의, 페미니즘 등 갖가지 이데올로기들의 비전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삶의 의미를 제시하여왔다. 그러나 이들이 성공했는가? 아니다. 오늘날은 어떤 정당도 이렇다 할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앞서가는 리더이거나, 비전을 제시하는 (visionary)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인기나 표를 얻어내기 위하여 미래를 포기하고 있는 노회하고 이기적인 정략가들이나 행정가로 전락했다. 거의 모든 정치적 논쟁들은 전략적 딜레마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단기적 전술적 불일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들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런 흐름 속에서 하라리는 이 시대에 진정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가? 그는 호모 데우스 사상을 통하여 진정한 삶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는가? 아닐 것이다. 그는 세속적 시각에서 색다른 시각을 제안하고 있을 뿐이다.
휴먼 컴퓨터 이야기
아마도 가장 괴기(傀奇)스러울 정도의 인간 컴퓨터를 든다면 프랑스의 샤르 그란드모즈(Charles Grandemange)일 것 같다. 그는 1835년에 팔도 다리도 없는 채 탄생하였다. 그것도 겨우 500g 정도 밖에 안 되는 체중이었다. 이러한 결정적 핸디캡 대신 이 아이는 어마어마한 지력을 품부(稟賦) 받았다. 그는 14 세에 자기의 계산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유럽을 여행할 정도이었다. 그는 30.48cm 너비의 나무 상자에 앉혀져 누군가 운반해주어야 하는 여행이었다. 그는 두 개의 100 자리 숫자들을 곱한 결과를 맞추고, 또한 스물셋 자리 숫자를 다른 숫자로 나누고 그 나머지가 얼마인지 단번에 알아 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어떤 빠른 계산기보다 더 빠른 번개 계산기로 일컫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련한 장애인인에게 탁월한 수학 계산 능력을 부여하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필빈(Regis Philbin)은 캘리포니아 샌 디에고의 스콧 프랜즈버그(Scott Flansburg)를 "인간 계산기"라고 불렀다. 이 미국식 지적계산기 인간은 그 놀라운 지적 계산속도로 인해 2001 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하였다. 스콧은 9 살 때 처음으로 놀라운 계산 능력을 구사했다. 수학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그 계산을 적지 않고 즉시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그는 가게에서 가족이 구입 한 식료품을 계산원이 기록하고 총액을 계산하기도 전에 옆에서 아버지에게 그 정확한 금액을 알려 주었다.스콧은 거의 즉시 암산으로 제곱근과 세제곱근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등 계산을 즉답할 수 있었다. 그의 계산은 항상 정확하였다. 그는 수학의 수준을 높이는 옹호자가 되었다. 그리고 텔레비전 쇼에도 출연했다. 그는 또한 어린이와 성인이 수학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권의 책도 저술하였다.순식간에 숫자를 머릿속에서 암산하고 저장하는 능력은 경이로운 자질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입력하는 것만 큼 더 좋은 것은 없다. 다윗은“내가 당신에게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당신의 말씀을 내 마음에 숨겼습니다.”(시편 119:11)라고 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위대한 능력을 이해시키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몇 가지 셈을 하게하셨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子孫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이 말씀은 장차 아브람의 후손이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고 창대하게 될 것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은 당시로서는 능히 상상하기도 믿기도 힘든 것이었지만, 오늘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는(롬 4:11) 영적 자손들의 수를 생각할 때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주님께 바칠 때 그분께서는 우리가 받을 복을 곱하기 법으로 증대시키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를 두고 히브리서 기자는 “내가 반드시 너에게 福 주고 福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plethuno, 증가시키다) 하셨더니”(히 6:14)라고 하였다. 인간 유기체가 무기체인 기계와 결합하여 이른바 ‘의식 없는 지성’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인생의 학교
창조 시부터 유한한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교제를 통하여 최고의 교육을 받게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모든 인류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유사한 능력을 부여 받았다”(교육, 17).
“창조주와 대면하여 마음을 열어 놓고 교제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큰 특권이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변치 아니하였더라면, 그 모든 특권이 영구히 사람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무궁한 시대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새로운 지식의 보화를 얻고, 행복의 새 샘을 찾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힘에 대하여 더욱 더 밝은 개념(槪念)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창조함을 받은 목적을 보다 완전히 성취함으로써 창조주의 영광을 더욱 잘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교육, 15)
“그러나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러한 특권을 잃어버렸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고 일그러져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의 체력은 약해지고, 지적 능력은 떨어지고, 영적 통찰력은 어두워졌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류는 소망 없이 버려지지 않았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구원의 경륜이 세워지고, 생명에 대한 유예(猶豫)의 은혜가 주어지게 되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도록 사람에게서 창조주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 다시 말해 지·영·체의 발달을 증진시켜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되던 당시의 완전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구속 사업이다. 이것은 또 교육의 목적인 동시에 인생의 위대한 목적이기도 하다.”(교육, 15-16).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이상은 사람의 생각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보다도 더 높다. 경건 곧 하나님과 같은 성품을 가지는 것이 도달해야 할 목표이다. 학생들 앞에는 끊임없는 진보의 길이 열려 있다. 학생에게는 이루어야 할 목표, 도달해야 할 표준이 있으며, 이 목표와 표준은 선하고 순결하고 고상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교육,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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