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판의 목적

서론

하나님께서 하시는 최후 보편적, 궁극적 심판은 모든 인간과 세계를 포괄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 역사적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전개되어 왔다. 종말론적으로 이 심판은 조사심판, 언도심판, 및 집행심판 국면들로 전개된다. 성부 하님께서는 심판을 주재(主宰)하시고, 예수께서는 심판장으로 활동하신다(5:22). 아버지는 그의 아들에게 모든 심판하는 권세를 다 맡기셨다. 고후 5:10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이를 증거한다.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통치의 전개로 자기백성의 옹호도 있지만, 하나님의 공의를 옹호하고 만족케 하는 일도 중요하다(3;26). 심판이 인간 구원 차원을 넘어서 그리스도와 사단사이의 대쟁투 차원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심판은 그리스도의 갈보리 사건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사단과 그들의 원수를 파멸시키셨다.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 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다. 속죄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계시이다(5:9-10). 십자가는 사단, , 죽음에 대한 승리가 된다(16:33; 요일 3:8; 6:9; 딤후 1:10 ).

재림 전 심판 사건은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구속사의 전개과정에 속한다. 이 재림 전 심판은 우리를 갈보리의 십자가로 향하게 하며 또한 위에 계신 그리스도로 향하게 한다. 언도심판은 요한계시록 22;11에 나와 있다. 집행심판은 1,000년기 시작과 끝에 이중적으로 전개된다.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구원과 더불어 성소제도 의식의 표상에 잘 나타나 있다. 인류 역사의 최후의 메시지인 영원한 복음인 세 천사의 메시지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도래를 경고하는 기별의 핵심이 된다(14:6). 그리고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심판은 성경 전체에 맥맥히 나오지만 특히 다니엘서의 묵시문학과 요한계시록의 묵시문학의 기본구도에서 그 근간을 찾을 수 있다.

KooiBrink는 심판의 일반적인 목적을 대략 다음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들의 명제적 진술만을 활용하되 거기에서 놓치고 있는 심판의 목적을 추가하면서 그 각각의 설명은 필자의 견해로 대체하기로 한다.

I. 심판의 신학적 및 도덕적 목적

1. 하나님의 심판의 성경적 뿌리는 하나님의 의의 개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의로우신 분이시다. 의가 없는 자비는 무질서와 혼돈을 초래한다. 반면에 자비가 없는 공의는 냉혹한 두려움과 공포를 조성할 뿐이다. 심판이 없이는 불의, 불법 등 죄 문제가 영구적인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어 진실과 진리가 가려지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이 진실과 진리인지를 가려준다.

2. 하나님의 심판은 죄로 오염된 세계를 정결케 하는 길이 된다. 지상 성소봉사가 끝은 모든 것의 정결을 표상하였다.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봉사는 우주적 불 심판으로 이어져 이 죄악 세상을 정결케 한다(참고, 고전 3:13-18).

3. 심판은 하나님의 통치권의 행사가 된다. 이 통치권의 행사는 판결과 형벌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종국적으로 불의한 자에게 불의의 보응을 받게 하므로 하나님의 의(공의)로우심을 우주적으로 입증한다(3:25; 3:26). 그러나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행한 대로 받는다는 것은(고후 5:10) 두려움과 공포감을 조성하기 때문에 판결과 형벌이라는 어휘는 인기가 없다. 더 나아가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 악인을 형벌에 처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부조화되는 것으로 보기가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회개한 죄인을 용서하고 또한 의를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통치의 방법이 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4. 하나님의 심판은 지성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나타내는 법궤 속에 안치된 하나님의 율법은 의와 심판의 대 원칙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와 심판의 대 원칙의 구현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 위반자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그 율법 위에 속죄소가 있었고 그 위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났으며, 거기로부터 속죄의 공로로 말미암아 회개한 죄인에게 사유하심이 허락되었던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성소의 봉사로 상징된, 우리의 구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업 가운데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85:10).”(부조, 349).

자비가 공의를 제거하거나 배척하는 관계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비와 공의에 나타나 있다. 그리하여 긍휼 또는 인애(chesed)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tsedeq)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85:10)는 구절은 공의와 용서는 외견상으로는 서로 이질적인 것 같지만, 서로 분리 될 수 없도록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 (시대의 소망, 762).

사탄은 하나님의 자비가 그의 공의를 파괴시켰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기시켰다고 주장해 왔다. 이 주장의 거짓됨을 온 우주에 들어 내놓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이 입증으로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에서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가 확실하게 이루어진다.

5. 하나님의 심판은 구속/구원을 완성시킨다. 그리하여 이 심판을 통하여 우주와 인간 역사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역사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의 현상을 얼핏 보면 행위와 결과가 인과론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일 많다. 이 세상에서 일어난 불의와 불법이 권세를 발휘하여 보응 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세계사가 곧 세계 심판이다라는 쉴러의 말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불의한 자의 번영과 불법한 자의 기고만장을 묵과하지 않고 심판대에 세운다.

6.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에게 선택과 행위에 있어서 자유와 책임성 각성시킨다. 최후의 심판은 인간이 영원한 구원의 길을 선택하였는지, 의롭게 살았는지 아니면 불의하게 살았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용서가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상기시켜준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운 삶을 위한 동기를 제공한다. 보수하는 일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다. 그리하여 이 심판은 인간으로 하여금 보복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그리스도를 본 받아 용서하는 자가 되게 한다(12:19; 벧전 2:22-23).

7. 하나님의 심판은 복음 선교의 동인을 제공한다(33:11; 벧후 3:9).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에는 악인의 멸절 받지 않고 죄로부터 돌이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애절한 긴박성도 담겨있다(8:5, 6, 12:9-11). 심판은 파멸당할 운명의 인간들로 하여금 미래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속에서도 개인적이며 현재적 사건이 된다. 불신자들은 장차 있을 종말론적인 심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죄인으로서의 삶, 즉 정죄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진리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죄에 얽매여 죄에게 종노릇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회개를 결단하는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살고 있다는 점(3;18)을 일깨워 구원의 소망을 바라보게 한다.

'종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후 심판의 필요성  (0) 2021.10.05
심판 배척 신학 사상  (0) 2021.08.05
지배 종말론  (0) 2021.07.12
인간의 미래 전망  (0) 2021.05.03
뉴 에이지 운동  (0) 2021.04.29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