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 종말론

종말 : 2021. 7. 12. 20:09

지배 종말론

1. 지배 이데올로기 지향 기독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AD 313년에 그리스도교를 합법화시키고 이어서 국교화해 나감에 따라 그리스도교 본질에 일대 변질이 일어났다. 박해와 억압을 받은 카타콤의 지하 종교, 순례자의 종교, 도피 종교 신분이 지상으로 올라 온 후 세속 정치권력과 결탁하므로 인하여 억압하는 종교, 지배자의 종교, 왕권 종교, 소유와 정착의 종교로 바뀌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크게 변질된 이 그리스도교는 자기의 주장을 정통의 옷으로 입혀 군림하면서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남은 무리들의 소리를 배척하고 이단으로 박해, 정죄하는 마성을 발휘하여 왔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칼뱅이나 루터의 종교개혁까지라도 권력과 결탁하여 그 엄호 아래에서 중산층 시민을 위한 국가교회를 만들어 내는 한계성을 면치 못하였다. 종교개혁자 측의 모진 박해를 받은 재침례주의자들은 교회와 권력의 제휴는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반대된다고 보았다. 교 분리의 시대에도 소위 정통으로 자처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교리의 틀에 맞지 않으면 서슴없이 이단으로 단죄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하여 권력의 비호나 그 장악을 소망하는 신학적 사고를 하여 왔다.

이러한 빗나간 교회에도 참된 신앙의 자유를 갈구하는 남은 무리가 있어 왔다. 그들은 권력자의 사냥과 덫을 피하여 새로운 피난처를 찾아야 하였다. 마치 알프스의 험산 준령이 박해받는 왈덴스 무리의 피난처가 되었던 것처럼 북미 대륙은 그리스도교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가 된 유럽에서 박해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피난처 성소가 되었다. 이 점을 사도 요한은 땅이 여자를 도와...”(12:16)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3장은 피난처 성소를 장악한 세력이 또 다시 세상을 지배하고자 온갖 힘을 쏟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2. 지배주의자들 등장

(1) 지배주의 의상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그리스도교 신학 유형은 1,000년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다는 소위 후천년론의 옷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하여 왔다. 후천년론은 복음이 확장되어 이 세상 대다수의 인간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이고 사회 제반 영역에 큰 영향을 주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이 세계가 거대한 그리스도교 세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이같은 주장은 1980년대 이후 재건주의(reconstructionism), 신율론(theonomy) 또는 지배주의(dominionism) 형태로 옷을 바꾸어 이고 등장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이를 종말론과 연계시킨 지배 종말론(eschatology of dominion) 또는 승리 종말론(eschatology of victory)의 형태로 발전하여 왔다.

(2) 지배신학의 목표

지배주의자들 또는 재건주의자들(David Chilton, Rousas J. Rushdoony, Greg Bahnsen )은 그리스도교 규범에 따라 이 세계와 역사를 재건하고 또 지배하는 지상천국 건설의 꿈을 꾸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神律, theonomy)이 세속 사회를 통치하는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신봉하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을 장악하고 악을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지배를 위하여 운명지어진 존재라고 한다. 악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시대의 징조로 보는 1,000년 전에 재림이 있다는 전 천년론은 패배의 종말론에 불과하다.

 

(3) 지배신학의 성서적 근거

이러한 지배신학은 성서적 근거로 창조 시 하나님께서 인간에 주신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1;28-30) 속에 이미 이 지배의 단초가 들어 있다고 본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 위임 명령(28:18-20)은 각 나라에 복음 전도는 말할 나위도 없고, 모든 나라를 장악하는 것과 전 가정, 직업, 학문 분야에서의 모든 인간 활동이 예외없이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한다. 복종치 않는 자들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는(고후10:3-6) 바울의 선언을 전 세계적 복종 가능성으로 본다. 특히 시편에 나오는 악한 자들에 대한 저주를 탄원하는 여러 저주시들(35; 55; 69; 79; 83; 109; 140)을 교회가 압제자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관한 청사진으로 보고 있다. 저주시에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여 원수가 회개하게 하던지 망하게 하던지 해야 한다. 더 나아 가서는 교회 지도자들은 압제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

주의 기도문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6:10)는 바로 신정적인 통치가 이 땅에서 구현되도록 함에 그 진정한 의도가 있다고 본다.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2:22)는 말씀은 사회적, 정치적 재건의 모델이 된다. Chilton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7:9)라는 말씀의 해석을 <한 세대 40 x 1,000=40,000>으로 하여 동 약속이 3400년 전에 한 약속이기 때문에 아직도 그리스도의 재림까지는 36,600년의 신정구현 기간이 남았다고 한다.

Rousas John Rushdoony는 재건신학의 근거를 10계명에서 찾고 있다. 그는 1600쪽의 방대한 저술에서 10계명을 구현하는 성서에 나타난 법을 해석하고 있다. 안식일 범하는 자 등에게 부과하는 18종목의 사형법을 국법으로 삼아야 된다고 하는 재건신학은 재림신학의 예의 주목 대상이 된다.

Greg Bahnsen은 그리스도인은 성서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이 성서의 법을 세속 사회에 적용하여야 한다고 강변한다.

Gary North는 국제적인 신정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 성서의 요청이라고 하면서 각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배신학은 지배를 위하여 성경상의 법을 국가의 실정법으로 재건 또는 회복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담이 에덴에서 실패한 것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실패한 것을 하나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이행하도록 위임받았다고 한다. 국가는 인간의 죄를 제지하도록 성서적 사형제도를 강화해야하고 국가를 그리스도교화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1987220일 자 Christianity Today17-23 쪽의 새 질서를 위한 하나님의 법이란 재건주의 특집란에서는 살인, 강간, 남색, 안식일 범함, 배도, 마법, 참람, 개선이 불가능한 자녀 등 구약성서의 15가지의 범죄에 사형을 부과한 법들을 오늘의 미국에 재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20).

 

David Chilton은 기독교 영성이란 세상에서 도피하거나 물러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성경은 지배 종말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종말론은 패배종말론이 아니라 승리 종말론이라고 하면서 교회는 이 승리의 재건의 중심이 된다고 역설하였다.

 

지배신학은 교회의 분열문제를 기독교의 수치로 여기고 이 분열상이야 말로 지상 천국의 도래를 막는 장애요인으로 꼽고 있다. 지배신학의 또 하나의 근거는 바로 이 교회의 연합에 있다. 이런 연합을 할 수 없게 하는 독특한 신학을 지닌 재림교회는 그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다.

 

지배주의자들은 흔히 화란을 이상적 기독교 국가 성공 모델로 보고 있다. 신학자 Abrahm Kuyper(1837-1920)1870-1920년에 이르기까지 당대 제일 큰 신문사를 장악 운영하면서 이 운동을 펼쳤다. 그는 암스텔담 Free University를 창립하여 이 기독교 국가의 모델의 이론적 뒷받침을 하게 하였으며 기독교 정당을 조직하여 수상을 역임하는 등 10여년 넘게 정권을 장악하였다.

 

(4) 지배신학의 마성

지배주의자들은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를 그리스도교가 장악하였던 17세기의 역사에 짙은 향수를 느끼고 있다. 이들은 오늘날 창궐하고 있는 범죄와 천연계에서 일고 있는 무서운 재난들은 일요일을 준수하지 않는 결과 온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며 주일 성수 재건만이 그 대비책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일을 위하여 구약성경에서 안식일을 범한 자에게 사형을 부과하였던 것 처럼 오늘날 일요일 준수를 거부하는 자들을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들은 지나간 역사에서 지배주의적 시대의 문제점이나 실패 역사를 망각하고 있다. 그들은 요한계시록 제13장의 교회-국가의 제휴와 지배 예언을 무시하고 있다.

이미 위에서 구약성경 시대의 사형제도를 현대 사회 실정법에 도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언급하였거니와 Howard Rand는 직설적으로 Destiny(운명)이라는 뉴스 레터(19837No. 4319864No 76)에서 미국 일요일 법 제정에 있어서 재림교회는 주된 반대자들로 이들을 투옥시켜서라도 일요일 법을 강행해야 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론으로 잠복되어 있는 지배신학의 마성은 미구에 현실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갈 것이 전망된다.

사랑이 생명이 된 그리스도교는 일단 지배자의 자리를 차지한 때에 무섭고 놀라운 괴물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이데올로기가 되어 자기 구미에 맞지 않는 예배를 드리는 양심적 신앙인 아벨들을 가차없이 죽여 버리는 가인의 길을 선택한다. 교회는 정치 권력을 장악하거나 그 결탁을 위하여 발람의 길을 간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복음으로 위장된 바벨론이 되어 간다. 지배신학은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AD 70년 이전에 다 성취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초점이 있는 책이 아니라고 하는 과거주의 해법을 채택하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흐리고 교회의 영광을 추구하는 가롯 유다의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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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