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초기 박해와 그리스도인 자세
그리스도교 초기 박해와 그리스도인 자세
I. 박해의 숙명을 안고 태어난 그리스도교
초기 그리스도교는 모진 반대와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살피면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반대 받았다. 갈릴리 여러 중요 도시들에서 외면 받았다. 결국은 유대의 주도세력들이 그리스도를 참람죄라는 종교적 이유와 반란죄라는 정치적 이유를 근거로 내세워 로마의 권력을 빌려 그를 십자가에 매달게 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불길 같은 성령의 권능을 받은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떠나실 때 주신 미션을 위하여 복음 전파의 강력한 역할을 해내가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박멸에 진력하였던 바울이 그 진멸을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중 그리스도를 만나는 진귀한 체험을 한 이래 오늘날 창궐하는 감염병처럼 천하를 소동 내지 소요케 하는 자로 지목 받았다(행 19;23; 24:5). 바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제자들이 결국에는 순교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선교자의 피는 복음전도의 씨앗이 되어갔다.
4세기에 이르러 콘스탄티누스의 밀란칙령과 데오도시우스의 그리스도교 공인으로 로마가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기 전인 1-3세기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증인(μαρτυρες, martyres)이 된다는 것은 순교(martyr)의 아이콘이 되었다. 모진 고문과 죽음의 위협도 결코 그리스도인들을 굴복시키지는 못하였다.
이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불길 같은 믿음은 서머나 교회 시대(AD 100-313)까지 이어졌지만, 그리스도교의 공인이 초래한 교회의 양적 확장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믿음의 질적 강도를 비례하여 왔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양적 확산은 질적 저하를 가져오는 반비례 관계가 그 특징을 이루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II. 박해의 이유들
왜 로마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는가? 이 박해의 종교적 이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철학적 이유들이 있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초기 그리스도교에 내려진 운명 같은 환난과 박해는 종말론적 환난과 백해를 내다보며 살아가는 재림 신도들에게 타산지석의 모델이 된다. I. 종교적 이유
1. 유일신 주의와 다신론주의 - 유일신 경배만을 신봉하여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그 하나님뿐이라고 믿었다. 이런 유일신 경배는 로마의 만신전이 말해주 듯, 로마의 온갖 신들에 대한 경배 체제 경배 체제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매도당하는 운명을 지녔다.
2. 그리스도인들이 무신론자들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로마의 종교는 다신교였다. 원칙적으로 로마의 종교정책은 각 지역의 고유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로마에는 각지에서 유래한 온갖 종류의 신전들이 즐비했다. 특히 헬라와 페르시아 등의 동방에서 유래한 온갖 밀교들이 성행했고 그 신들에 대한 축제가 열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제1계명을 이유로 그 신들에 대한 제사를 거부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무신론자들이라는 주홍 글씨를 매다는 대상이 되었다.
3. 그리스-로마 세계에서그리스도교는 새 종교로 여겨져 배척 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은 기성 종교 사상에 부조화되는 존재들이 되었다.
II. 철학적 이유
1. 그리스도교 사상은 최근에 형성된 종교 사상 체계이어서 고대로부터 내려온 선한 사상과 관행에 부조화 내지 파괴하는 사상 체계로 비쳐졌다.
2. 그리스도교 사상은 삼위일체, 성육신, 불가시적 신 등 애매성을 지닌 것으로 비쳐
졌다.
3. 그리스도교 안에서 일어난 신유 이적을 로마 철인들은 마술로 여겨 배척하였다.
4. 그리스도교의 열정적 신앙 태도가 당대 추앙 받고 있는 철인들이 충역을 받아 그리스도교를 광신 종교로 보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재위 161-180) 황제는 스토아 철학에 심취하였다. 그러나 그는 폴리갑(80-165)을 화형시키는 등 잔혹한 박해자라는 악명도 지녔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경배가 로마 신들의 분노를 촉발하여 흉년, 가뭄, 외국 침략 등 각종 재난을 불러 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성주의를 추구한 시대의 ㅅ너각자로 자처하던 철인들은 광기 어린 박해를 자행하여 자기들 철학에서 인생의 목표를 아파테이아(ataraxia)와 아타락시아(apatheia)를 추구한다던 철인으로서의 의 정신마저 팽개쳤다. 이들 지성인들은 이른바 ‘십일 동안 환난’(계 2:10), 즉, 10년 동안이라는 가장 혹독한 박해시대(303-313)의 발판을 깔아주었다.
Atraxia(아르락시아)는 그리스어로 평정심(平靜心)을 뜻한다. 그것은 고대 에피쿠로스학파가 인생의 목표로 추구한 마음의 평온, 부동(不動)의 상태를 두고 한 말이다. 이런 마음의 상태는 자기 밖의 상태로부터 오는 것에 의하여 괴롭힘을 받지 않는 평은(平隱) 不動의 마음 상태이다.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내 마음의 동요를 없이하여야 평정심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생의 목표에 이르는 경지를 추구한 철인의 추구는 참으로 고상하다고 할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스토아학파는 아파테이아(apatheia)를 추구하였다. 즉, 자기 마음을 pathos에서 지켜내는 것이이다. 아파테이아는 타율적인 움직임뿐만 아니라, 자기 내적 본능의 욕정, 쾌고(快苦), 희로(喜怒), 호오(好惡) 등의 파토스를 억누르고 현인들처럼 자율 지배적으로 강한 의지와 이상에 의하여 극복해 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철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포악한 사자처럼 가장 적대적 이론을 구ᅟᅮᆨ한 것은 자기 철학의 파산을 스스로 내린 것에 불과하다.
II, 정치적 이유
1.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에 충성하지 않는 단체로 여겨졌다. 그리스도인들이 황제를 신으로 경배하는 것을 거부하여 반국가적 단체로 비난당하였다. 온갖 종류의 신들 중 로마의 황제는 태양신의 아들로서 마땅히 숭배의 대상이었다. 동시에 황제는 모든 사람들의 정치적인 황제였다. 누구든 유일한 황제와 황제의 나라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하였다. 재림의 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바라보고 예수를 만왕의 왕이라 믿었다. 황제도 예수의 나라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 국가와 교회의 연합을 강요하는 체제에서는 국가가 교회를 떡 주물 듯이 마음대로 지배하고자 했지만 그리스도교는 국가의 교회의 분리를 선호하여 제제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3. 그리스도교회가 비밀 결사체 및 반역 결사체로 낙인이 찍혔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시민권이 로마에 있지 않고 장차 도래할 예수의 나라에 있다고 공언했다. 이것은 로마를 전복하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한다는 음모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정치적 모반이 일어날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배후세력으로 지목되었다.
4. 말세 강조하므로 사회에 혼란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구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시민임에도 불구하고 군복무를 피하여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하층민(빈자, 소외된 자)를 모집하여 지배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단체로 몰았다.
5. 그리스도교 등장이 당대 사회의 각종 재난들, 지진, 군사작전 실패, 및 대화재 사건의 원인 유발 및 제공으로 여겨져 반체제 집단으로 매도되었다.
III, 사회적 이유
1. 라이프스타일의 차이 -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당대 사회에서 무용한 존재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배신, 불신, 이혼, 유아살해가 판치는 세상 풍조에 사는 사람들은 결혼의 신성성과 가족을 중요시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좋아할 수 없었다.
2.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 사회와 분리적 태도가 반(Anti)-사회적 집단으로 부각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싫어하는 무리로 비쳐졌다. 그리스도교가 이어져 내려오는 가업이나 산업체계를 무너뜨렸다. 예를 들면 에베소의 Diana 신상제조 영업 붕괴우려 사건(행 19장), 절제 운동 전개(고전 6장)로 사회 경제적 혼란을 부추기는 집단으로 여겨졌다.
3. 성찬예식을 인육 파티로 여기는 살인집단으로 여겨졌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밀 모임에서 혼음을 자행하는 부도덕한 무리들이란 지탄의 대상으로 곡해 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제제와 박해 대상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드러내 놓고 예배를 드릴 수 없었던 것을 이런 식으로 매도, 정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택한 장소는 자연히 은밀한 장소, 로마인들이 꺼리는 지하무덤, 카타콤이어서 더욱 오해 받는 대상이 되었다. 카타콤으로 숨어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음해는 그리스도인들이 무덤 속의 시체를 먹는다는 것과 은밀한 곳에서 남녀가 혼음을 한다는 것이었다.
4. 노예제 사회이었던 당시 모든 사람을 평등하다고 보는 그리스도교 인간관은 노예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배척 받았다. 그리스도교는 노동의 신성성과 모든 국민의 노동 의무성을 강조하였지만, 로마 사회 상류층은 노동을 노예에게 부과하는 체제이었다.
III. 마라나타 백성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대속의 주(Lord)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에 대한 사랑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는 강인한 믿음이 있었다. 초기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인사는 ‘마라나타’이었다. 이처럼 그들의 신앙은 부활과 재림에 대한 소망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차 있었던 것이다.
재림신도들은 마라나타 백성들이다. 아람어 마라나타(μαρὰνἀθα)는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전 16:22)로 번역되어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아람어가 통용되던 바울 시대 초기교회 신도들 사이에서는 이 아람어는 신앙 구호적 관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를 날마다 힘을 얻을 소망의 구호로 사용하므로 서로 격려하며 문안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마라나타’는 '우리 주'라는 뜻의 “마란” 혹은 “마라나”와 '오다'라는 뜻의 동사 “아타(athā)”의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이 마라나타(maranatha)는 띄어쓰기에 따라 그 번역을 달리합니다.
1. mārana thā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Our Lord, come!'(NKJV, 개정개역 한글성경) - 속히 오시옵소서 라는 재촉하는 명령법 형식. 우리의 삶의 현장과 교회 예배에 임하시고 주님의 파루시아를 재촉 간구하는 기도이면서 동시에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고 갈망하는 신앙 고백이다. 성경의 결론적 메시지로 나오는 요한계시록 22:20의 '주여 오시옵소서'나온다. 개정 개역판 한글번역이 이 마라나타의 진정한 의미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마라나 타’는 영광스러운 주의 재림의 소망의 긴박성을 표출한 그리스도인의 신앙 구호가 될 것이다.
2. māran ātha '우리 주님이 임하셨느니라(Our Lord has come.)' ‘우리 주님이 오십니다 (Our lord is coming.)'(개역 한글성경) - 말구유에서 비천하게 탄생하시고 낮아진 삶을 사시며 고난을 당하신 예수께서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표출하는 평서문 형식이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의 신앙을 표출한 신앙고백이다. 마라나타는 <디다케 10. 6>에서, 성찬과 관련된 기도에 나타난다. 이 경우 ‘마란 아타’는 '우리 주님이 임재하신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개역 한글성경은 고전 16:22의 문맥에 비추어 이러한 이해를 지지해 주고 있다.
이 아람어 단어는 두 가지 번역이 모두 가능하다. 하나님 백성의 삶의 모든 현장 국면 국면에서 그리스도의 임재의 확실성을 고백하면서, 성찬예배 시에 그분의 임재의 확실성을 고백하며 더 나가서는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시기를 바라는 열렬한 기대에 찬 소망의 고백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박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올곧게 신앙을 지키는 모습은 적대자들에게까지 감명을 끼쳤다. 이 시대 그리스도교 변증가들은 잔혹하기 짝이 없는 핍박에도 불구하고 빛과 소금으로 살아간 그리스도인들의 차원 높은 도덕성을 보면서 그리스도교의 존재 이유를 논리적으로 밝혔다. 이들 변증가들(Justin Martyr 등)은 그리스도교의 등장을 구약성경 예언의 성취로 보았다. 이들은 그리스도교의 신관, 그리스도관, 및 구속의 경륜을 이교도의 종교들과 비교하면서 그 정당성을 변증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 이교도들의 신앙체계와 철학에 비하여 월등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당대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적대적 주장들은 근거 없는 음해에 불과하다고 못 박았다.
신앙의 열성이 나약해지는 상황에서 엘렌 화잇 여사는 다음과 같은 권면을 하고 있다.
“이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냉(冷)에서 열(熱)을, 그들의 비겁에서 용기를, 그들의 반역에서 충성을 취해야 한다(At this time we must gather warmth from coldness of others, courage from their cowardice, and loyalty from their treason)"(5T 136).
도덕이 해체되고, 신앙이 흔들리는 종교적 다원주의와 해체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남은 무리는 그 흔들림에 아랑 곳 없이 기다리는 백성들이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이 진리를 버리고, 아니 심지어는 그것을 큰 소리로 짓밟으면서 떠나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오히려 그들의 냉에서 열을, 그들의 배신에 충성을, 그들의 비겁에서 용기를 선택하며 마라나타를 고백하며 기도할 것이다. 누더기를 걸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가 문 앞에서 안타까워하며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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