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뿌리
엡 2:1-10
Ⅰ. 뿌리의 뜻, 중요성, 종류 - 자기 존재를 지탱시키고 영양분 흡수한다. -인간 생존의 뿌리에는 혈통과 종족의 뿌리, 정신적인 뿌리, 문화적인 뿌리, 영적 뿌리 등이 있다.
2. 마가복음 4: 6.17 돌밭에 뿌려진 씨는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다. 신앙이나 기타 인간이 살아가는 전 과정에 있어서 뿌리의식이 약하면 그 인생은 흔들린다. 뿌리를 잘 내려야
II. 톨레돗 ’toledoth, Genesis
1. 창세기 원명은 베리쉬트 -> Genesis ; 톨레돗 10개
2. 마 1:1 ‘Βίβλος γενέσεως, γένεσις (generation), ‘시작 또는 세대’, ‘내력이나 족보’
3. Lk 3장 - 인간의 영적 뿌리를 찾아내 오늘을 사는 인간의 존재 의미를 밝혀준다.
성경은 창조와 구속의 뿌리를 보여주고 있다.
4. 육적 조상-선함과 허물 - 조상의 얼과 신앙을 배우고 감사. 그러나 육적 조상으로부터는 대개 참된 영적 생명은 얻지 못한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참 조상이 된다.
(1) 지나간 날을 생각하며 감사하라. 사람은 고통스런 과거를 잊으려고 한다. 괴롭고 눈물 나는 과거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다른 것은 잊어버려도 지금까지 어려움 속에서 키워주신 부모님과 지켜주신 하나님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날 우리 가정에 조상들을 통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일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흔히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지난날의 은혜를 생각해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앞날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과 사랑으로 돌봐 주실 것을 믿고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루터- “선한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은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한다.”
(2) 현재의 상황을 감사하자. 우리 조상들은 어렵게 살았다. 그러나 힘든 속에서도 묵묵히 견디어내면서 살았다. 그럼에도 이웃을 돕고 사랑하며 많은 자녀를 뒷바라지 하며 키우셨다. 그리고 우리들이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이제 어느 정도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지 않는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복을 누리며 살고 있으므로 우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소가 되새김질하듯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복을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III. 뿌리에서 단절된 존재 - 죄로 죽은 존재(1-3절)
마르틴 루터는 아담이 맞은 첫 안식일에 타락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시고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와 구속은 모두 이 관계의 진정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간 타락 이전에 하늘에서 루스벨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십을 퍼 트러 반란을 먼저 일으키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뱀으로 위장하여 하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의심하도록 유혹했다. 의심과 불신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파괴시켰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신의 위치로 향하도록 도전케 한 것이다.
우리는 지나간 날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음에의 존재가 되었다. 아니 현재 그리스도 없는 삶이 신자이든지 불신자이든지 그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 없는 사람은 죽은 존재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시체들의 군무, 함성들로 차 있다!
1. 존재의 뿌리에서 단절된 인간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육체의 욕심을 따름 ->불순종의 자녀, 더나가서는 진노의 자녀로 되었다. 이는 전적 타락이지만, 선택의 자유까지 망가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사탄의 장악 하에 놓이게 되었다.
2. “죄의 본질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인간은 아담으로부터 전수된 죄의 본질은 영적 관계의 단절이라는 점에 포인트가 있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죄나 그에 따른 도덕적 결과를 인류의 정죄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로 삼는 모든 입장은 하나님에게 책임을 지운 꼴이 되어 배격한다. (Gulley). 원죄란 말은 기피해야 할 말이다. 아담의 첫죄라고 하면 무난할 것이다. 이 첫 죄가 인간 존재를 존재의 뿌리로부터 단절시킨 것이다. 인간은 죄인으로 탄생한다(시 51:5).
3. 원죄
① 로마 가톨릭은 원죄를 성관계를 통하여 유전된다고 본다. RC는 롬 5:12을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고 번역하여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는 타락한 인간이 아담의 죄 선택에 책임이 있는 이론이 되어 버린다.
② 롬 5:12 -> 아담의 단절의 죄는 죄악의 홍수 문을 열어 제켰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은 죄인으로 전락되고 죽음의 존재가 되게 했다. 아담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구주가 필요한 존재로 탄생한다. 그리스도만이 그 단절을 회복시키실 수 있는 분이며 단절을 잇는 교량이 된다. 혹자는 아담은 타락의 과정을 시작했고 그 후손들은 자기들이 죄를 범하므로 죄인이 된다는 시각은 잘못이다. 그 이유는 죄를 범하지 않은 유아가 죽는 것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④ “원죄란 잘못행하는 것(wrong doing)이 아니고 잘못된 존재(wrong being)가 되었다는 것이다.” 원죄란 유전인자의 전달이 아니다. 단절로 물려받은 것은 영적인 자아중심적 삶이다.(Heppenstall). 인간은 죄를 범하기 전에 죄인이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관계 단절이 된 것을 통하여 죄인이 되었다.
⑤ 아담은 창조주의 무한 자원의 공급으로부터 자기를 제한 내지 차단시켰다. 그는 피조적, 의존적(dependent)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선언(independent)을 하였다. 그리하여 원죄란 자기를 하나님과 그 분의 무한자원으로부터 자기를 닫아 버리는 것이다.
3800km. 25개 섬을 거쳐 항공유 고갈로 불시착한 배의 절박한 상황 기도하는 무리에게 도착
독자적 행위가 죽음의 홍수문을 열었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들은 재난, 악, 불안, 증오, 투쟁이라는 죽음의 그림자들에 휩쓸려 살게 되었다.
⑥ 죄는 無(nothing)의 원리가 된 것이다.
⑦ 엘렌 화잇은 ‘원죄’라는 어휘를 삼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엘렌 화잇은 인류가 아담에게서 받은 것이란 죄책(guilt)과 사형 선고(sentence of death)밖엔 없다”(CG 475)고 진술하였다. 이는 원죄 사상을 수용한 것이 아닌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한 죽음의 존재로 전락한 것, 그리고 전 인류의 타락상을 표출한 것이다. 이런 통찰은 “마음의 자연적 타락성 (the natural depravity of the heart)"(In Heavenly Place 195, 196)을 두고 한 표현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 모두가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보편적 타락성)을 받은 것이다.
아이는 탄생 시부터 자아 중심적(self-centered) 존재가 된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 죽음이 모든 인간에게 임하게 되었다. 죄는 외적 행위 배후의 동기, 물려받은 내적 기질이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선적이 아니고, 탐욕적이요 탐심이 많으며, 자아를 위하여 살아간다. ”(5증언, 382)
“사람의 본성에는 악을 행하려는 성향 곧 인간이 자신으로서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 ”(교육, 29)
“사람은 죄로 인하여 매우 타락하였으므로 자신의 힘으로는 순결하시고 선한 본성을 가지신 분과 조화될 수 없었다”(부조, 64)
4. 인간은 바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는 육신의 죽음과 매우 유사하다. 육신의 죽음에는 성장과 활력에 필수적인 생명의 본질이 없다. 마찬가지로 이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성장과 활력이 없다.(엡 5:14; 요 6:53; 요일 3:14; 5:12; 계 3:1). 허물과 죄는 동의어적 표현이다. 허물(παράπτωμα)은 (1) 미끄러지는 것' (2) '진리나 정도에서 벗어남 또는 이탈함',(3) '실수, 잘못, 오해, 실책, 범죄, 잘못'을 의미한다. ‘죄 (ἁμαρτία’)는 목표에서 빗나간 것을 말한다. 인간의 삶의 목표에서 빗나가 우리가 되어야 하는 길에서 실패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불법이며, 불선, 불신, 불의다. 세상에 빗나간 삶을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스도 없는 삶은 세상 풍속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르고 결국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다. 불순종이 그 삶의 주 특징이 된다. 이런 삶은 욕망이 지배하는 삶.
5. 이 시대는 신 냉전 시대로 나가고 있다. 적대적 세력 어두운 구름이 온 세상을 덮고 있다. 권력 잡은 자의 도둑 정치가 횡행한다. 도둑정치(kleptocracy)는 관료와 정치인 등의 지배 계급이 국민의 자금을 횡령하고 개인의 부와 권력을 늘리고 부패한 정치 체제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 나라를 거머쥐고 있는 자들은 거의가 kleptocrat 들이라고 하면 잘못된 판단일까?
롬 8:13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 육의 열매는 갈 5:19-21에 나온다. 그리하여 인간은 엡 2;4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 되었다.
6.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저술한 스티븐슨은 10가지 학설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18가지 로 분류한 책이 나왔다. 대부분의 이론이 환경, 유전, 뇌 구조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예언의 신은 한마디로 인간 본질을 자기중심의 존재로 보고 있다.‘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를 들어내려고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여지려면 교만과 자만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영혼에 고요가 찾아오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이다. 그럴 때 성령께서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으신다. ,,, 자아를 죽이는 모든 영혼에게 하나님은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신다.“(Signs, April 9, 1902)
7. 죄와 죽음의 여정(2:1-2) -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인간의 여정을 두 갈레로 대비시키고 있다.
우리는 지난 날 육체의 욕망에 따르는(2:3) 죄와 죽음의 여정을 걷는다, 이 길은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길,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길(2:2)이다. 이는 소망 없는 길, 악의 영들의 군주 마귀를 따르는 길, 악을 따르는 길이다. 이 여정에서 어둠의 자녀들은 불순종으로 미움과 증오의 길을 악령을 따르는 길을 걷는다.
IV. 영적 참 생명 구원의 뿌리-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지닌 존재로 옮겨진 존재(4-6절).
1. 그리스도는 참 생명의 뿌리와 연합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은혜 구원, 그리스도의 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다(4T 596). 하나님과 함께 앉게 하신다는 것은 영적 부활이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를 맛보는 환상적 체험이다.
복음은 죄로부터 치유 받고 회복되기를 추구한 삶의 매 국면마다 능동적으로 활동하신다.
2. 하나님의 선물이신 구원의 뿌리
(1) 사랑: 에로스는 천상을 향한 영혼의 동경과 갈망, 아름다움, 덕, 선에 대한 동경과 그 소유를 지향한다. 즉, 에로스는 대등한 평행관계에 있으면서 동시에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는 동기적 사랑, 헬라 철학적 인간중심적 사랑개념이다. 고차원적인 에로스는 가장 높은 가치를 통하여 자신을 완성시키고 이데아의 경지에 도달함에 있다. 그래서 에로스는 신적인 것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이 에로스는 필요의 사랑이다.
이에 비하여 하나님의 아가페는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 아래를 향한 사랑,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아가페는 선물의 사랑이다. 즉, 아가페는 루터의 이신칭의와 십자가라는 관점을 통하여 잘 드러난다.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어도 베푸는 무동기적 사랑이다. 인간은 이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이웃에게 전하는 사랑이다. 이 아가페 사랑은 구원의 뿌리의 주축이 된다.
(2) 자비: womb 자궁 רַחוּם 라훔, 동정심이 많은; ἔλεος, 자비하시 하나님은 생명싸개가 되신다.
(3) 은혜: חַנּוּן 한눈,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절하는 것; χάρις, 값없이 베푸신 은혜로 우리는 구원 받는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느니라(롬 5:20).
로맹 롤랑 Romain Rolland은 인생이란 15분 늦게 들어간 영화관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놓쳐버린 15분의 줄거리를 찾기 위해 신앙을 가지고 철학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 이어령 박사는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그 15분 놓친 것을 영성으로 찾아내 하나님의 사랑, 자비, 은혜에 접속했다.
3. 구원의 여정(7-10절)- 그리스도인은 삶이란 여행이다. 2절과 10절에 나오는 “행하여 peripateo(περιπατέω)"는 ”돌아다니다(”go about)“ ”걷다(walk),“ ”행하다“의 뜻으로 어느 방향으로 걷는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생명의 여정-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그리스도아 함께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게 하셨다. “함께 살리고, 일으키시고, 함께 앉게 하신 것에서 (συνεζωοποίησεν, συνήγειρεν καὶ συνεκάθισεν )(2:6, 7), 하나님은 행동의 주어가 되고, 그리스도 예수는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며, 함께 앉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증인, 그 은혜의 현현, 은혜의 시여자와 집행자가 되신다.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가 살 수도 없고, 죄에서 일으킴을 받을 수도 없으며 하늘에 앉을 수도 없다. 우리는 그의 은혜의 작품이 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은혜의 피조물로 만드신 분이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바울은 구원의 원리를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우리 믿음은 구원의 원천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적극적으로 반응케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 피조물이 되게 하신다는 것(엡 2:10)에 그 강조점이 있다. 구원의 뿌리는 하나님의 사랑, 자비,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에 있다.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새 피조물로 만드신 것(ποίημα, poie-ma, “작품”, “피조물.” “시”)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한 길(2:10)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명의 소망의 여정이고 빛의 자녀들의 길(5:2)이 된다. 그 길은 선을 행하는 길, 성령을 따르는 길, 순종의 길, 아가파오의 길(5:2)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뿌리를 찾아 나선 이들을 위하여 무한한 자원의 보고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누구든 몸과 혼과 영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신체적, 정신적, 영적 능력을 끊임없이 받게 된다.”(1T 306).
건강한 삶은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사회적 건강, 영적 건강이다. 이것이 WHO가 말하는 진정한 건강이다. 얼마 전 뉴스맥스에 나오는 건강기사에 따르면 아침 운동은 온 종일 혈압을 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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