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 때 철학 교수가 철학은 놀람(wonder)과 의문(question)으로 시작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거린다. 합리적 놀람은 학문의 씨앗이 된다. 그러나 지식의 전주곡으로서 놀람은 현상의 원인이 밝혀지면 곧 사라진다. 전에 그렇게 놀라웠던 것이 문명의 급격한 발전과 더불어 더 이상 놀라운 것이 되지 못한다. 너무 신기한 것들이 범람하고 보니 인간의 마음은 무디어져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만다. 놀라움이 사라진 인간의 마음 밭은 썰물 때 갯가처럼 되고 만다. 오늘날 인간성의 큰 빈곤은 이 놀라움이 실종되어 버렸다는 점에 있다.
예언자들에게 놀람은 생각하는 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철저한 경탄은 지식의 지평선을 넘어선다. 하나님 앞에서 선 인간은 하나님의 광대하심, 무한하심, 장엄하심에 놀란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보면서 놀란다. 삶의 주변에서 다가오거나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놀란다.
고난의 연병장에서 몸부림치는 욥에게 하나님은 천연계 현상을 하나씩 들어가면서 경탄하는 눈을 일깨우는 질문들을 쏟아 놓으신다(욥기 37-41장). 이 땅의 의인이나 하씨딤(성도)이라 할지라도 하늘의 렌즈로 자기 주변이나 세상을 보고 놀라는 눈이 있어야 한다. 신앙의 길은 놀람과 경탄의 길이다. 시인들은 이 경탄과 놀라움을 시편 곳곳에서 표출하고 있다. 놀람과 경탄이 실종되어가는 세상에서 놀람과 경탄을 통하여 역사를 그리고 자기 삶을 보는 눈이 있어야 개인적으로 당면하는 고난의 연병장을 넘어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지평선 저쪽을 내 삶의 북극성으로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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