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적 목표(goal)를 좇아가는 새해가 되기를 소원하면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3-14).
부끄러운 과거, 억울한 과거, 못다 이룬 과거, 실패 또는 성공한 과거를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하여 전력 경주하는 사도의 모습을 상기시켜 주는 말씀이다. 크리스천은 목표지향형적 존재이다. 목표에 온 생명을 거는 존재 그가 바로 크리스천이다.
앞에 있는 목표란 인간으로부터 나온 어떤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평화나 행복 같은 개인적인 성취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이 지구라는 세계에 나라고 하는 존재가 존재하는 목적에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과 동떨어진 목표는 진정한 목표가 아니다. 이른바 무엇인가 성취하였다고 하더라도 우울하고 공허하며 두려움으로 차 있는 미래를 피할 수 없다면, 그 목표는 참 목표가 아니다. 영원을 지향하는 목표는 이 세상 것들을 향한 목표를 넘어선다.
영원이란 이승이 끝나는 시점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천국이 네 안에 있다는 메시지가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은혜의 나라 시간은 늘 영원한 나라의 경계선이다. 우리가 사귀고 예배하고 사랑할 수 있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다. 하루가 천년만큼 값질 수 있는 것도 시간 속에서다. 영원을 지향하는 삶 안에서 모든 순간이 하나님과 동시에 만난다. 요한복음의 영생 개념은 이런 삶의 질적 영생일 것이다.
사냥개가 토끼를 좇듯 우리는 푯대(목표)(skopov", skophos )필사적으로 좇아 가야한다( diwvkw, dioko). 바울의 이 메시지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메시지의 주석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영원한 목표를 흐리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오해 내지 곡해하고 있다. 영원한 진리는 하나밖에 없지만 그 진리를 오해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목표는 하나 밖에 없지만 그 목표에서 벗어나는 길은 여럿이 있다. 무엇보다도 고결함이 결여된 삶은 영원한 목표를 향하여 시간을 아끼거나 사지(redeem) 않는다(엡 5:16). 모든 시간의 운명이 이 한순간에 달려 있다는 심경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 현재는 죄스런 과거를 부정하게 될 것이고 불멸의 미래의 길로 이어지게 할 것이다.
인생을 경주로 보는 바울의 메시지에는 관람객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엘렌 화잇은 이 관람객들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양심의 계발과는 거리가 멀고 참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일지라도 시들어 버릴 월계관이나 군중들의 갈채를 받기 위하여 모든 소모성 방종을 끊어 버리고 금욕과 고된 훈련을 감수하고 있다. 하물며 “불사불멸과 하늘의 지존자의 인정을 받기를 희망하는 그리스도인 경주자들은 도덕성을 타락시키고, 이지력을 약화시키며, 고상한 능력을 동물적인 식욕과 정욕에 굴복시키는 비건강적인 자극제들과 모든 방종을 더욱 더 기꺼이 끊어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온 세상의 군중들이 이 생명을 건 그리스도인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우주의 대왕과 천천만만 천사들이 이 경주를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누가 승리를 쟁취하여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인가 마음 졸이며 바라보고 있다.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과 천사들이, 극기와 자아 희생과 그리스도인 경주에 참여한 자들의 피나는 노력을 채점한다. 이 대시합에서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그들이 발휘한 끈질긴 노력과 충실성에 따라 각자에게 보상이 수여될 것이다( The Monarch of the universe and the myriads of heavenly angels are spectators of this race; they are anxiously watching to see who will be successful overcomers, and win the crown of glory that fadeth not away. With intense interest God and heavenly angels mark the self-denial, the self-sacrifice, and the agonizing efforts of those who engage to run the Christian race. The reward given to every man will be in accordance with the persevering energy and faithful earnestness with which he performs his part in the great contest.)
세상의 경기에서는 상이 오직 한 사람에게만 보장되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경주에 대하여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불분명한 달음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고전 9:26 새번역). 우리는 경주의 마지막에 가서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명시된 조건들에 완전히 순응하고 또한 잘 균형진 정신과 건전한 도덕성을 소유하기 위하여 체력과 신체의 활동력을 유지하여야 할 책임감을 가진 자들에게는 이 경주가 불분명한 것이 아니다. 그들 전부가 상을 타고 시들지 않을 불멸의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될 수도 있다. …”(절제, 144-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