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5:38-39).

 여기서 예수께서는 모세법에 나온 법규를 인용하면서 (21:24; 24:20; 19:21) 그와 더불어 그리스도인 삶의 지표를 밝히고 있다. 학자들은 모세법 규정을 두고 同害報復法(Lex Talionis)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현대 인간에게는 이 모세법의 규정은 야만적인 규정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동해보복법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그것은 사법질서의 큰 획을 긋는 진보적 규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법의 질서는 오늘도 이어져 가야한다.

 창세기 4:23-24에는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하는 자랑이 나온다.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4:23-24).

 라멕은 한 소년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상해를 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중상이 아니었다. 치명적인 중상이었다면 그 젊은이를 어떻게 보복 할 수 있었으며 자기 아내들에게 자랑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상해 정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상해를 입힌 소년을 살해해 버리는 보복을 감행하였다. 그리고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아내들에게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에게 77배로, 즉 무한대의 보복을 감행하겠다는 큰 소리를 꽝꽝 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그의 아내들은 남편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기보다는 기가 팍 죽어 사시나무 떨 듯 하였을 것이다. 무용담처럼 떠들어 대는 남편을 두고 무슨 끽소리나 낼 수 있었겠는가?

 고대 근동 사회 남자들은 자기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공격행위들에 대하여 잠자코 있는 일을 수치로 여겼다. 그들은 해를 끼치는 상대방이나 부족을 반드시 보복해야 하는 의무를 지면서 태어 낳다. 피의 보복이라는 宿怨으로 꼴 지어진 의식 구조 속에서 더 큰 보복 이외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폐쇄된 사회가 이어가는 참혹한 앙갚음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여기에서 모세오경은 피의 보복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공법 질서, 즉 재판을 통한 사법질서를 통한 동해보복제도를 정착시킨 것이다. 동해보복법은 가해 상대방이 끼친 정도와 평형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사회적 법적 제재장치이다. 이 제동장치는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장치도 된다. 누군가가 자기 눈을 하나 뽑으려고 하면 자기도 눈 하나를 뽑히는 일을 감내하여야만 하게 되어 있는 사법 질서는 폭력행사를 미연에 막아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확립하는데 그 초점이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실정법 질서의 원리이다. 실정법은 정의를 기초 원리로 하고 있다. Georg Jellinek가 말한 대로 법은 최소한도의 도덕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삶은 최소한도의 도덕인 법 규정을 넘어서 최대한도로 완전을 지향하는 존재들이다. 예수께서 산상보훈에서 가르치는 소위 반제관계 형식은 법을 폐지하라는 율법 폐기론을 주장한 것도 아니고 법과 도덕의 상충성을 지적한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법 깊은 곳에 담긴 기초이념인 사랑을 지향해야 하는 제자의 도를 밝혀 낸 것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보복의 세계에 머물면서 상처 받고 상처를 주는 세속인이 되지 말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길을 걷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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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