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9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8:8-12).

 

I. 서론회심의 서원

신앙은 하나님께 하는 서원이며 그것을 지켜 가는 생활이다.

1. Pascal 회심과 헌시

파스칼이 심각한 내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은 1654년 초. 그 때까지 파스칼은 점점 정신적 고뇌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사교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이런 생활에 대해 극도의 혐오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보고자 하는 하나님으로부터는 아무런 부름도 없었다. 그처럼 갈구하는 성령의 불길은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이 세상의 것을 혐오하였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침묵을 불안해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의 갈등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런 가운데서 그는 기도와 명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동생 자크린을 자주 방문하여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곤 하였다. 마침내 이 신음하는 고뇌자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 16541123일에 신음하며 갈구하는 이 메마른 영혼에게 은총의 단비가 촉촉이 내렸다. 아니 그의 영혼을 불사르는 성령의 불을 받은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감격적인 경험을 기록한 회고록(Memorial) 가운데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654년 은총의 해

1123일 월요일 (성 클레멘트의 날),저녁 10시 반경부터 12시 반경까지

 

철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3:6; 22:32)

확신, 확신, 느낌,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내 하나님, 너희 하나님 (20:17).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세상의 것을 잊은 날

그는 복음서에서 가르쳐진 방법으로만 발견될 수 있는 분이시다.

인간영혼의 위대함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줄 알았삽나이다"(17:25).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생수의 근원된 나를 버린 것"(2:13).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

하나님으로부터 나를 영원토록 분리시키지 마소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7:3).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침례 요한이 말한 대로 파스칼은 그리스도로부터 성령과 불 침례를 받았다(3:11).

파스칼은 자신이 체험한 성령의 불 역사를 양피지와 종이에 각각 한 장씩 써 놓았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몸에 지니고 다녔던 이 결정적 회심의 기록은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먼저 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만난 것이지 철학자와 과학자의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철학자나 과학자의 이성적 원리나 자연법칙을 통한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 속에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나타나셔서 축복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가운데서 구속을 완성하신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그는 확신하였다. 복음서의 유일한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복음서가 가르쳐주는 것은 참된 유일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러기에 파스칼의 그 날 밤의 불 체험 회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으로 초점이 모아진다. 그는 종국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이 놀라운 만남은 기쁨과 환희를 가져다 주었다. 이전에 이 생명의 근원되신 분을 떠난 데 대한 후회는 다시는 그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파스칼이 밀려오는 감격 속에서 즉석에서 적어나간 이 신앙고백과 서원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잘 말해준다. 죄로 오염된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한 은총의 상태로의 전환이 잘 그려져 있다. 그는 타락한 인간의 상태를 인간적인 힘으로 뛰어 넘으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애씀은 불안과 초조를 낳게 했으며 무력감만을 나타내었다. 그러던 중 인간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도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그 은총의 하나님을 불같이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적 체험의 핵심은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이나 자연법칙의 원리로서 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이라는 것, 그와 새언약 체결로 서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확실히 보여준다.

2. 신학을 공부하겠다는 서원기도

3. 서원은 언약행위

지나간 날 부조들은 이 언약의 서원을 행하였다. 서원은 언약갱신행위이다. 하루하루가 하나님과의 서원행위의 반복이다. 다윗은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61:8).고 하였다. 성경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는 배경에는 이 서원이 깔려 있다.

4. 서원의 유형들

(1) 지키는 서원진실한 서원

a. 입다의 이상한 서원

b. 아곱의 서원(28:20; 벧엘 서원 31:13)

c. 룻의 신앙적 서원(oath)과 노모 봉양하겠다는 서약(pledge) 1:17

d. 한나의 서원 (삼상 1:11)-아들 사무엘은 그 서원을 이루어 갔다.

e.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맹약(삼하 21:7). 민수기 30장은 서원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f. 침례 요한은 일생의 성별 서원을 하였다. 부모의 서원을 아들로서 이루어 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부모는 사가랴에게 나타났던 천사의 말을 요한에게 자주 들려 주었다. 그의 부모는 어린 시절부터 요한에게 그의 사명을 계속 제시해 주었으며, 요한은 그 거룩한 책임을 받아들였다. 광야의 고독은 그에게 있어 의심과 불신과 부정(不淨)이 거의 만연된 사회를 피하는 즐거운 특권이 되었다. 그는 시험에 대항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으며 죄의 흉악성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죄와의 접촉을 항상 피하였다. 출생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으로서 그는 일생을 성별하기로 스스로 서원하였다. 그는 옛날 선지자의 옷인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 허리띠를 띠었다. 그는 광야에서 구할 수 있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산에서 나오는 맑은 물을 마시고 살았다.”(소망, 101-102).

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밝아진 통찰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특성을 연구하므로 하늘의 기별을 가지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알고자 하였다. 그의 사명의 짐이 그에게 놓여있었다. 그는 외로이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자기 앞에 놓여 있는 평생 사업을 위하여 그의 심령을 동이는 데 힘썼다.”(소망, 102).

 

(2) 안 지킨 서원

a. 삼손의 불이행-부모의 서원을 잇지 않았다.

b. 압살롬의 종교적 사기행위적 서원-부정직한 서원--종교적 사기행위 서원--

c.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일로 임한 3년 기근(21)-선대의 서약을 무너뜨린 일

400년 전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전 회중이 위장 항복한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보호하겠다고 엄숙한 서약을 한 일이 있었다. 이기적이고 편협한 민족주의 열성에 사로잡힌 사울은 그 서약을 어기고 그들을 죽이고 박해를 가하였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종교를 잘못드러낸 사건이 되었다. 그 결과 율법에 명시된 기근의 저주가 임하였다.

(3) 최대의 서원 --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다락방에서 새언약의 약속을 이행하는 몸과 피의 의식을 거행하였다 (22:19-20). 이는 구속언약에서 약속하신 대로 자기 몸을 우리를 위하여 내 놓으시겠다는 서원의식 제정이다.

 

II. 새언약의 메시지

A. 히브리서 8장에 나오는 첫언약과 다 좋은 언약의 관계

1. 언약의 의미: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성경에서 기본적으로 언약 관계로 나타나고 있다. 언약은 결속력을 가진 서원하는 약정이다. 언약(베리트)묶음,” “속박과 연관된 한 단어인 것으로 보아 본질적 의미는 결속(bond)의 뜻을 지녔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언약이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는 언약관계인 것이다. 이 관계는 마치 부모와 자녀 사이의 돌보고 섬기는 관계와 자기 목숨을 아내를 위하여 제물로 바친 남편 같으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온 마음을 다하여, 심지어 생명을 내 놓고 돌보고 사랑하며 그 백성은 온 마음을 다하여 그를 경외하는 엄숙한 서약관계이다. 언약은 온 마음을 다하여 믿고 사랑하는 서원관계의 성질을 띄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각성시키고 믿음을 강건하게 해 주시려고 은혜스러운 언약 장치를 마련하였다. 우리는 언약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 수 있게 하셨다. 언약에 나와 있는 분명한 약속들과 그 성취를 위하여 애쓰시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인간은 언약 장치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우리를 구원하고자하는 변치 안으신 서원을 확인한다. 언약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백성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과 계속하여 친밀한 교제를 한다. 성경은 언약서이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그리고 언약을 지켜야 하는 백성 -- 이것이 성경의 요약이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의지하며 순복하는 언약관계에서 신자들의 신앙은 언약의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면서 자라간다. 하나님의 서약이 있고 인간의 서약이 있다. 성경은 서원의 책이다. 서원 없이 성경을 읽으며 교회 다니는 신앙은 겉도는 신앙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옛언약과 새언약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약성경기자들은 옛언약을 깔보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옛언약을 폐기하고 새언약으로 대체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언약과 새언약을 거의 같은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 새언약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이 예레미아서 31:31-34과 히브리서 8:8-12에 나온다.

 

B. 새언약에 들어 있는 영원한 복음의 DNA

사담 후세인은 암살 예방장치로 자기와 외모가 닮은 사람들을 두어 공적 활동에 나오게 하였다. 그래서 제2차 걸프 전쟁 시 미군이 그를 포로로 잡았을 때, 그의 DNA를 검사하였다. 각 사람의 DNA는 독특하다. 요즘 친자 확인의 수단으로 DNA 검사가 보편화되어 있다.

새언약의 DNA는 무엇인가? 세포핵을 열어 보면 '염색체'라는 것들이 있는데, 이 염색체는 유전자들이 실덩어리처럼 감겨 실뭉치를 이루고 있다. 한 세포 안에 23개의 유전자덩어리들이 들어 있다. 한 덩어리의 염색체는 2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짝은 엄마로부터, 또 다른 한 짝은 아버지로부터 온 것으로 서로 붙어서 한 쌍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23덩어리라는 말은 23쌍이라는 말이며 결국 46, 또는 46개의 염색체가 2개씩 짝을 지어 23쌍의 염색체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염색체들 중에 하나를 꺼내서 잘 살펴보면 꼬불꼬불하게 나선형의 실처럼 생긴 유전자들이 감겨진 실 뭉치처럼 생겼다. 이것을 잡아당기면 꼬불꼬불한 나선형의 실이 풀어져 나오는 것처럼 실 같이 생긴 유전자가 길게 늘어져 나오는데, 그 실 같은 것은 사실 알고 보면 수많은 '핵산(DNA)"들이 조립이 되어 2중 나선 형식으로 구성 되어 있는 것이다. 유전자의 구조는 이중 나선형의 두 줄이 있고 그 두 줄 사이에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이라는 4종류의 염기들이 둘씩 쌍을 지어 조립되어 있다.

줄은 토막난 당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토막 마다 한 종류의 염기들이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염기가 부착된 한 토막의 당분들이 여러 개를 서로 붙여서 연결시키어 긴 줄로 만들어 주는 것이 인산이다. 한 토막의 당분과 그 당분에 부착된 염기와 인산, 이렇게 세 가지 물질이 함께 조립식으로 결합하여 한 개의 핵산(DNA)을 형성한다. 바로 이 핵산들이 두개씩 한 쌍으로 조립식으로 결합되어 길게 나선형 줄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유전자이다. 하나의 세포에는 약 30억 쌍의 핵산을 이루는 염기들의 결합으로 유전자를 이루고 있다. 30억 쌍의 염기배열가운데 세포의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의 종류가 약 3만 여 종류의 유전자들을 과학자들이 마침내 해독하여 발견하고 있다. 앞으로 이 유전자들이 다 밝혀지고 나면 인체의 신비를 이해하고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데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으로 과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 조합 구성이 깨질 수도 있고 다시 회복될 수도 있는 가변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새언약의 결정적인 특징이 되는 DNA4가지로 말하고 있다. 이는 DNA(핵산) 의 기본구조가 4가지로 되어 있다는 유전학자들의 이야기와 같은 범주이다.

언약의 DNA는 칭의(J), 화해(R), 성화(S), 선교(M)라는 네 가지 하늘의 염기물질로 되어 있다.

 

1. 칭의(용서)(Justification)--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리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8:12; 31:34).

언약의 첫 번째 신학적 DNA는 칭의이다. 칭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이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주시어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 우리는 이 의의 신분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다. 하늘의 이 축복은 중생으로 이어진다. 인간편에서는 회심으로 이어진다. 새언약은 중생하는 공동체이고 회심하는 공동체로의 서원이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7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4:5-8).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3:9).

이 용서의 은혜가 창조 전 구속의 경륜 안에 들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DNA 약속은 창 3:15에서, 그리고 이어지는 성소봉사의 그림자와 표상 속에 강조되어 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가 넘치며, 1000대까지 베푸시는 언약적 사랑(인자)의 신실성을 친히 선포한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7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34:6-7)

출애굽기 34:6-7의 내용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반복되어 나타난다(14:18; 9:17; 86:15; 103:8; 145:8; 32:18; 2:13; 4:2; 1:3).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가 시내 언약에 충만하게 내재되어 있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7:19)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다(53:5-10; 9:19-26). 이 약속과 대책은 피의 언약의 핵심이 된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13:20).

이 언약의 용서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중앙교회 신앙공동체이다. 이 언약공동체는 용서 받고 회심한 체험을 지니고 있다.

2. 화해(Reconcliation)--“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8:10; 31:33). 이 말씀은 언약 계시의 중심에 계속되는 후렴구로 나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모든 언약의 목표의 기저 선인 하나님과 화해를 말하고 있다. 관계의 변화와 회복이 이 화해 속에 담겼다. 소외관계, 분리관계, 적대관계가 끝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관계로 진입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영생을 아는 것과 연계시켰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안다는 것은 친근성을 말하는 단어다. 친근한 관계--이것이 영생의 첫 단계이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로봇들로 채워 아무런 생각도 없는 냉냉한 관계를 맺고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는 선택의 자유를 가진 인간과 사랑을 나누고 신뢰를 하며 충성을 받는 관계를 재구축하고 싶어한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45:2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레위기 26장은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26:3),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26:12)고 하여 화해 DNA를 푸는 열쇠를 주고 있다. 그러면서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모세로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니라”(26:46)고 하여 화해 DNA가 시내언약에 들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시내언약은 부조들과의 언약의 연속선상에 있다.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26:42)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열방의 목전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26:45. 여호와께서는 시내언약을 창조언약 에덴언약, 부조들과의 언약에 나와 있는 화해의 관계로 복구하는데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앙교회는 하나님의 친자관계에 있다. 중앙교회의 하나님은 이 친자서원을 하는 공동체의 하나님이 되고 그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3. 성화(Sanctification)--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8:10; 31;33). 하나님의 손가락이(성령께서) 불칼로 화강암 바위에 도덕률을 새겨 넣었던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이 DNA를 입력하여 두셨다. 그리하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설정하여 두신 목표는 사랑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반영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20:7-8).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베드로전서 1:15-16은 레위기 11:4519:2의 인용이다. DNA는 옛언약에 이미 있는 메시지를 인용한 것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19:2).

언약의 표징이 되는 안식일 메시지의 거룩하게하는 역할이 같다(2:3; 31:12-13).

옛언약에서 언약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넣게 되어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30:6)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15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30:11-16).

사도 바울은 이 신명기 30장에서 인용하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6-10).

옛 이스라엘은 모두가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10:16).

사도 바울은 믿음의의 기별을 신명기 30:11-14에 두면서 로마서 10:5-16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는 유대주의자들의 율법의 의 추구의 한계점을 부각하면서 신명기 30장의 배경에서 시내언약에 나오는 은혜를 들어내면서 시내언약을 갱신하고 있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본래 옛언약에서는 법을 마음에 내재된 것으로 피력하고 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40:8)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51:7)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으로 아담을 창조하신 때에 아담의 마음에 율법을 새겨 넣어두셨다(1:26-27). 이것이 창조언약이다. 아담은 본성적으로 하나님께 사랑과 순종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한 것이다(1:31).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그의 자손들은 죄 있는 본성을 물려 받았고 본성적으로 하나님께 적대적이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에 대하여 적대적이 되었다. 인간은 이런 본성을 스스로 변화시켜 원래의 본성으로 회복시킬 능력이 상실되었다(5:12; 8:7; 13:23; 3:10-18).

인간은 믿음과 사랑에 토대를 두지 않고 이런 일을 하려고 애를 써 왔다. 그것을 가리켜 율법주의적 순종이라고 한다. r

그러나 이런 결과는 화강암 같은 마음에만 새겨진 채로 남아 있고, 인간의 본성 안에는 입력된 것이 아니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딤후 3:5)라고 하였다. 외적 종교의식의 참여를 가지고 인간의 자기 변화의 방법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내부에는 죄 있는 본성의 변화가 없이 그대로 도사리고 있어 악질적인 불순종이 똬리를 틀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AD 1세기의 유대주의 실상이었다. 결국 율법주의 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 일을 자행하였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겨 넣어야 본성적으로 선 한일을 하게 된다. “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36:27).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2:14)

원래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이 일은 언약의 목표가 되어 첫 번째 순서로 나온다.

4. 선교(Mission)--다 나를 앎이라. “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8:11; 33:34). 새언약의 마지막 DNA는 자기 백성을 온 세상에 영원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는데 있다(19:5-6). 이 시내언약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12:3)이란 아브라함 언약의 연속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 빛으로 우리에게 비취사 (셀라) 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67:1-2).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사명에 실패하였다.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26:18).

베드로는 이 사명이 영적 이스라엘에게 옮겨진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이스라엘은 시내언약 체계 아래에서 하나님의 이름, 곧 그의 품성을 만방에 드러내 여호와를 알게하여야 했다.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36:23).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45:22)

인간과 체결한 하나님의 언약적 사명은 종말론적 성질을 지녔다. 서원하는 공동체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백성들이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21:3).

이 소망을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는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이라는 약속이 아직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 궁극적인 성취는 그리스도의 재림 시, 왕국의 건설 때에 있을 것이다. 그날 까지 서원공동체는 영원한 복음의 선교 사명을 다하여야 한다. 언약 백성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온 세상 인간들에게 나누어 주는 백성들이다. 새언약은 하나님의 축복인 영생을 이방인들에게 나누는 사명에 자기 힘을 다 바치겠다는 서원을 한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14:6)

서원하는 공동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꽉찬 공동체이다. 사상, 언어, 행동에 하나님의 지식이 가을 열매처럼 들어 있는 백성의 선교의 동력은 역사의 마침표가 되게 할 것이다.

 

D. 옛언약과 새언약의 차이점

1. 예언약과 새언약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서원자의 차이이다.

오히려 시내언약은 소위 은혜언약이라고 하는 아브라함 언약보다 더 진한 내용이 들어 있다. 시내산의 장엄한 계시 광경은 아브라함언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을 능가한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8:9).

위 성경절에서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가 문제의 차이점이다. 예레미야 31장에서는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31:32)고 하였다. 시내언약에서는 귿이 신실하지도, 진실하지도 거룩하지도 못하였다. 새언약의 수령자는 언약의 서원에 신실하고 충성스러웠다.

2. 사랑의 계명에서 차이가 아니다.

신구약에 나오는 사랑의 메시지는 같은 내용이다. 차이가 있는 점은 예수께서는 거의 새 율법인 것처럼 사랑의 법을 새로운 찬란함으로 들어나게 사셨다는 점이다. 사랑이 언약의 중심이다.

(1) 시내언약: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6:5-6)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19:18)

(2) 새언약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요일 2:7-8)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이 1:5-6).

3. 안식일 표징이 같다(2:3; 31:12-13).

 

III. 호소

교회는 하나님의 서원하는 공동체이다. 세천사의 메시지를 안고 출발한 교회가 출범시의 서원을 되돌아보면서 다시 힘을 얻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갱신하는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주셨다. 그것은 새언약과 같은 것이고 부조들이나 예레미야 31장에 나오는 새언약보다 오히려 진한 형태로 주셨다. 그런 하나님께 그대로 살겠노라고 서원을 하고서는 압살롬 식으로 반역하는 것이 옛언약의 모습니다. 옛언약과 새언약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하나님 백성이 믿음으로 진실하게 서원하였느냐와 그 진실성 대로 따랐느냐하는데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주었다하여도 인간은 그것을 짓밟을 수 있다.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19:8).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24:3)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28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의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5:27-28).

그들의 3회에 걸친 준행 서원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옳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서원한 것을 짓밟았다. 하나님에게 뻥치는 일이 곧 옛언약이다. 새언약에서는 이 뻥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내 개인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또한 교회 공동체의 신앙의 구성원으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옛언약처럼 성원한 것을 뭉개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회심 때의 서원을 되살려내 새언약의 일군들이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