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대한 그리스도 중심의 경륜
하나님의 위대한 그리스도 중심의 경륜
- 에베소서 제 1:1-14을 중심으로 -
기억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
I. 펑화의 의논
하나님의 복음 비밀인 구속의 경륜은 거룩하신 은혜는 창세전에 받을 자격이 없는 타락한 죄인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사랑의 은혜가 창세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스가랴는 하나님의 위대한 그리스도 중심의 경륜은 이른바 평화의 의논(슥 6:13)이라는 표현으로 제사장과 왕의 이중적인 직분을 가졌던 멜기세덱처럼(눅 1:32, 33; 히 5:5, 6, 10; 7:1, 2, 15~17; 8:1, 2)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실 것이며 결국 “그 조상 다윗의 위”에 오르실 것을 함축하고 있다(참조 시 110:1~4). “평화의 의논” 시 ‘ 한 보좌 위에서 통일될 왕적 직능과 제사장적 직능, 즉 위해 메시아적 순이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을 완전히 조화시킬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에베소서는 “창세전,”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에서(ἐν τοῖς ἐπουρανίοις)”라는 표현을 통하여 구속의 경륜의 태동을 시사하고 있다.
코케이우스 이래 일단의 학자들은 이 평화의 의논을 성부와 성자 사이에 맺어진 구속 언약의 협정으로 이해하여 왔다. 엘렌 화잇도 인간 구원을 위해 성부와 성자 사이에 맺어진 합의를 묘사한다(8T 269; GC 416, 417).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엡 1:3)셨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복이 신령(pneumatikos, 헬라어)하다는 것은 그것이 성령을 통해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평화의 의논은 삼위 하나님 사이의 협정으로 비친다. 인간 구원은 거룩한 삼위가 모두 참여하였다. 그래서 “아버지, 아들 및 성령께서는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자녀로 삼기로 서약하였다“(Jan. 27, 1903)하여 삼위 공역으로 보고 있다.
평화의 의논에서 맺은 삼위 사이의 구속 언약 협정은 구원 사역에서 삼위의 공역으로 이어진다. 즉, 성부(3절)께서 그리스도 안에서(4절), 그리고 성령의 인과 보증(13-14절) 사역으로 전개된다. 에베소서 1:3-12에는 동 협정 내용이 요약되어 있다. 동 내용을 이끄는 엡 1:3에 라는 표현에 비추어 이런 추론을 해 보는 것이다. 바울은 “창세전,” "하늘에 있는"과 "하늘에"라는 문구는 하나님의 거처(엡 1:3, 6:9), 영적 능력이 있는 곳(엡 1:10, 20, 21, 3:10, 15, 6:12) 그리고 아버지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높임의 장소로서의(엡 1:20) 하늘을 가리킨다.
평화의 의논에서 삼위 하나님 사이에 결정된 구속의 경륜은 은혜로운 결정이며 약속이다.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에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엡 1:5) 탕자 같은 인간은 아버지의 집에 다시 돌아 갈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은 평화의 의논의 협정 내용을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엡 1:9)라고 하고 있다. 바울은 이 구속의 경륜의 비밀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롬 16:25-26).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II. 경륜(經綸, οἰκονομία, Plan, dispensation, economy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엡 1:9)교과 저자는 ‘plan'으로 말하고 있어서 번역자도 계획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틀린 것은 아니나 경륜은 계획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경륜이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거룩한 역사(섭리)인 구원의 계획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만물을 위하여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지배하며 관리하신다’는 의미로 사용된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따라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적으로 실행하시고자 한 구속의 경륜을 가리킨다.
이 구속의 경륜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1:3-14은 그 시작하는 말 “Εὐλογητὸς” (eulogētos)와 끝맺는 말 “ἔπαινος” (epainos) 이 모두 찬양/찬송의 뜻을 지녔다. 바울은 구속의 경륜을 경탄과 찬양하고 있는 찬양 신학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 백성은 구속의 경륜을 생각할 때 마다 마음으로부터 그 축복에 대하여 감사와 찬양이 울어 나온다.
이 구속의 경륜은 구속 언약은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온 인류를 위한 자원하신 구주와 대표되시는 성자와 성자를 구주로 주시는 성부와 인간 안에서 일하실 성령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협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III. 선택과 예정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엡 1:4-6).
1. 선택 (ἐκλέγομαι eklego-“골라내다 pick out,” “선택하다 choose”)
‘택하사’의 헬라어 ‘엑셀렉사토’은 ‘선택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에클레고’의 단순 과거 중간태이다. 이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택하셨음을 시사한다. 즉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선택이 (1) 하나님 자신을 위한 사역이며(2)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아래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해 주는 표현이다(Wood).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됨을 시사한다(Lincoln). 한편 ‘창세전에’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이 영원 전에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공적이나 일시적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된 주권적 은혜임을 시사하며 동시에 ‘창세전에’는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나타낸다(골 1:15-17, Lincoln).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만민에게 거저 주시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멸망당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 선택해 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이 영생을 얻도록 택하심을 입을 수 있는 조건을 당신의 말씀 가운데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분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에 조화되는 한 인물을 선정해 놓으셨으며 누구든지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이 표준에 도달하는 자는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요 3:36; 마 7:21)고 말씀하셨다.
택함을 받은 자들은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로 나온다. 개인이 아닌 복음의 초청을 받아 들인 그리스도인들, 곧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자가 구원얻도록 택함받는 것은 합창단에 가입하는 사람이 노래 부르도록 택함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임의로 하는 선택이 아니다. 하나님은 구속주인 그리스도 안에 믿음을 두기로 선택하는 모든 자를 구원하려는 의도를 갖고 계신다. 우리가 구원을 잃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죄된 선택 때문일 뿐이다.
2. 선택 시기
창세 전, 곧 구원의 계획이 세워졌을 때 그 계획의 섭리를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자녀의 신분이 회복되도록 정해졌다. 모든 사람이 그 계획을 받아들이고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딤전 2:4; 벧후 3:9). 3. 이중예정론이 아닌 보편예정론
에베소서 1:5, 11과 로마서 8:28-29 ; 9:9-16을 피상적으로 읽는 자들은 어떤 개인들을 구원으로, 또 다른 개인들을 멸망으로 정해 두었다는 이중 예정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성경 본문을 왜곡하여 읽은 소치이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독재자로 오도한다(참조, 요 3:16, 17; 요일 4:8, 16). 성경은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또한 바울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의 은총의 시여를 받을 수 있도록 사전에 예정(proorizō, 미리 정해 놓으셨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ㅇ니간이 이 하나님의 이 구원 대책을 수용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
4. 이중예정론의 문제점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에서 칼뱅주의 예정론이 자본주의 형성에 기여 하였다고 분석했다. 예정론이 시장경제와 신용경제를 이루는 디딤돌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베버는 칼뱅의 예정론 프로테스탄티즘이 “예정론과 전지전능하고 인간이 알 수 없는 하나님 개념이 결합되자 운명론과 고독감과 극도의 불안감이 신자들에게 엄습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 허점을 짚고 있다. 베버는 당대 미국에 예정론 사상이 풍미하였기 때문에 인용한 것으로 보이고 사실상 미국 청교도 정신의 활성화된 뿌리에 있는 근검절약과 청교도 정신으로부터 시장경제와 신용경제의 발전에 역점을 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정론은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녔다.
(1) 성경을 왜곡, 하나님 품성을 잘못 나타냄-하나님의 품성에 금이 가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에 배치된다. 하나님을 불성실한 분으로 묘사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든다.
(2) 엡 1:4-6 집합적 예정- 구속의 경륜을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 ‘창세 전에’라는 ‘시간의 개념’이 강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사역을 직접 시작하였고, 선택한 자들을 아들로 삼으시려고 결정하셨음을 강조한다.
(3)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본문에 맞지 않다(롬 8:32; 11:32; 고후 5:14; 딤전 4:10; 2:4; 요 3;15-16).
(4)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회개하기를 바라며 참고 기다리신다는 메시지에 어긋난다(벧후 3:9).
(5) 하나님의 공의에 배치된다. 어느 누구의 구원을 임의로 선택함은 불공정한 처사가 된다.
(6) 복음전도와 기도의 필요성을 무력화시킨다.
(7) 일종의 운명론이며 결정론이다.
(8) 인간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
IV. 구속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복음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죄인들을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으로 값을 치르시고 구속하셔서 자유와 존엄성을 회복한 하늘의 시민이 되게 한다. 이 구속의 代價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이라는 값비싼 은혜다. 인간의 눈에는 그 대가가 낭비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1. 죄악의 사슬에 메인 인간 - “본질상 진노의 자녀”(2:4)
인간은 욕심, 탐심, 탐욕, 무절제, 육체적 정욕으로 꼴 지어진 에피투미아적 존재다.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인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대상이었다. ‘본질상’은 태어나면서부터 있던 천성적인 것을 나타낸다(Bruce, Lincoln). 즉, 이는 개종하기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태를 사실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본다(Mitton). ‘진노의 자녀’란 히브리적 관용구로서 ‘진노를 받기에 마땅한 자들’을 의미한다(Bruce, Wood). 이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며(God’s anger, JB),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죄악에 대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성을 증거한다(롬 1:18, 2:5, 8).
죄는 에베소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어둡고 지배적인 힘이다. 죄는 인간 존재를 無로 만들어 버린다. 바울은 그들의 이전의 삶에 대해 살았지만 죽은 자, 곧 "허물과 죄로 죽"(엡 2:1)은 자, 사탄의 명령대로 "따르"(엡 2:1~3, 흠정역)며 사는 죽은 자로 묘사하였다. 죄와 사탄의 노예인 그들은 그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구원이 절실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구원하셨고, 바울은 신자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두 가지 새로운 축복인 구속과 용서를 찬양한다. 노예를 얽어맨 차가운 수갑과 노예를 경매하는 상인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신약성경은 구속에 대해 논할 때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강조한다.
2. 참회하는 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하여 가납 받는 길
인간은 죄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과 죄 용서 앞에서 참회하여야 한다.
엡 1:7에서 "구속(속량)"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폴뤼트로시스(ἀπολύτρωσις, apolutro-sis, 구속 redemption, 구조 deliverance, 해방 release)로 원래 노예를 자유롭게 해주거나 포로를 풀어주기 위해 지불되는 돈(속전)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구속은 두 가지 시상으로 나타난다. (1)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현재에 누리고 있는 구속을 가리킨다(롬 3:24, 고전 1:30, 골 1:14). (2) 장래에 누리게 될 종말론적인 구속을 가리킨다(14절, 4:30, 눅 21:28, 롬 8:23). 본 절은 두 가지 시상 중 전자, 곧 현재에 누리는 구속을 의미한다(Lincoln). 그리스도의 피의 속량을 통하여 우리가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3. 하나님의 선택 목적: 품성변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거룩하고(ἅγιος, hagios)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말한다(벧전 1:16). 구원 계획의 목적은 사람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Ed 125). 성화는 한 평생의 과제가 된다. ”흠이 없게(ἄμωμος, amo-mos)는 히브리어 타밈(tamim)을 번역한 것이다. 타밈은 흠이나 점이 없어야 했던 완전한 희생제물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레 1:3 등). 노아는 당대에 완전하였다(창 6:9). 부조들에게 사용된 완전은 역동적 완전을 뜻한다.
4. 구속의 경륜의 궁극적인 목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 라”(엡 1:10). 만물이 예전에 죄로 말미암아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통일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시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고 하나님의 품성이 옹호 받을 때 이루어진다.
5. 참회하는 죄인들에게 주시는 신분: 양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 게 하셨으니”(엡 1: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4-7).
V. 성령의 인과 보증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
바울은 성령의 인과 보증이라는 은유를 사용하고 있다.
1. 먼저 인은 하나님의 소유권과 보호를 상징한다.
인은 법률 및 계약서 사본을 인증하거나, 용기 안 내용물의 우수성 또는 양을 확인할 때(겔 28:12), 거래(렘 32:10~14, 44), 계약, 편지(왕상 21:8), 유언장, 입양 등 다양한 용도에 사용되었다.
바울은 성령의 인이라는 은유를 통하여 신자들이 회심할 때 하나님께 속한 소유라는 점과 보호를 나타내고 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믿기 시작할 때에 바로 구원의 인을 찍으신다. 이 성령의 인을 받은 자들이 종말론적인 천사의 인을 받는다(계 7:1-4).
2. 성령에 관한 두 번째 은유는 성령께서 "보증"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의 유업을 보증하시는 분이시다. 즉, 유업이 왅너하게 주어질 때가 있음을 확증하신다(고후 1:22, 5:5). "보증"(arrabōn)이라는 단어는 신약시대 지불자가 내야 하는 금액 중의 "첫 번째 할부," "보증금" 또는 "계약금"이다. 그런데 신자들이 계약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는 점이다. 바울은 신자들의 삶에서 성령의 보배로운 임재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받게 될 구속과 구원의 완전한 유업의 그 첫 번째 지불금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 안에서 주어진 유업을 감사와 순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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